말랑한 발바닥
강아지를 키운다. 이름은 유즈(한국말로는 유자), 한 살.
동물병원에서 임시보호 하던 유기견의 자견이었다. 모두 입양을 가고 혼자만 너무 마르고 아팠어서 울타리에 홀로 갖혀 남아있었다. 비쩍 말라 바들바들 떨던 아이가 겁도 없이 처음 본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온 몸을 부벼왔다. 우리는 첫 눈에 반했다. 강아지를 잘 모르는, 처음으로 안아보는 동거인 품에 꼭 안겨 들어오는 온기가 우리를 반하게 하기는 충분했다.
아기는 우리집에 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 바들대던 다리로 넓은 집안을 뛰어다니고 신이나서 왕왕 짖기도 했다. 새끼손가락 만큼 쪼끄만 목소리로 신이 나서 짖으며 눈을 반짝이며 웃는 걸 본 순간, 너의 평생을 행복하게 해 줄 나의 의무를 느꼈다.
우리집에 와서 함께한지 1년, 그리고 한 살 강아지. 강아지는 여전히 사람이 너무 좋고 집에 너무 좋고, 엄마아빠가 너무너무 좋다. 늘 엄마아빠가 출근하면 혼자 열심히 장난감을 갖고 뛰어 놀다가 지쳐 잠들고, 퇴근 할 즈음 일어나 함께 산책하고 우다다 집안을 몇바퀴나 돌며 놀고. 신나서 헥헥거리며 웃으며 잠드는 모습을 보면 나는 피곤해도 네가 행복하면 그게 전부지, 싶다.
최근엔 생각한다. 너의 생애는 나의 남은 생의 반의 반 정도겠지. 그럼 나의 남은 4분의 3의 생, 너 없는 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네가 있는 동안은 이렇게 행복하고 해야 할게 많고,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는데.
가끔 삶이 힘들고 많이 지칠 때는 네가 자는 틈을 타서 꼬옥 껴안고 발바닥 냄새를 맡는다. 고소하고 콤콤한 냄새, 몃 개로 갈라진 육구 사이사이로 자라난 잔털이 간지럽다. 자고 있을 때만 맡을 수 있는 특권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하늘이 뚫린듯 비가 내려 천둥번개가 온 집을 흔들든 강아지의 단잠은 고요하다. 가끔 뒷밧질을 하며 뛰어 노는 꿈을 꾸기도 하고 고단하신 산책에 지친 듯 코를 골 때도 있지만. 강아지는 좀처럼 깨질 않는다. 반가운 현관 여는 소리 외엔 강아지를 깨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새 고기가 오면 건조기에 말려서 육포를 만들어 줘야지. 강아지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뭐였더라.
장을 볼 때 마다 네 생각을 한다. 네 잠이 쉬이 깨지 않았으면 좋겠고, 잠을 잘 땐 기왕이면 내 어깨에 동그랗게 얹혀 잤으면 한다.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힘이 들 땐 통통하게 오른 배를 팡팡 두들기다가 겨드랑이에 코를 파묻는다. 가느다란 털이 간지럽고 강아지 살냄새가 난다. 강아지에게도 살냄새가 있다. 우리 내일도 끝내주게 산책하자, 그리고 같이 낮잠 자자. 사랑해,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