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장애 일기
※아주 조심스럽지만, 나의 공황장애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야기의 공유를 통해 혹시나 많은 고민을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의 투고입니다. 조금이라도 글을 읽으며 불쾌감을 느끼거나 공감을 느끼시는 분들,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을 느끼는 분들, 혹시 나도? 하는 분들, 기분이 가라앉는 분들 모두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추천합니다.※
어느날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그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멋대로 찾아와서 멋대로 스며들었다, 나를 숙주 삼았다는 표현이 가깝겠다.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남동생 있는 장녀로 살아온 나는 인생의 목표가 해외 도피였다. 해외 취업이라는 당위성을 가지고 나가야 집착이 심한 집안에서도 순순히 내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혈혈단신 친구도 없는 도쿄나 오사카도 아닌 외딴 외곽지역에 뚝 떨어졌다는 거다. 회사에 암암리에 있는 권력형 괴롭힘, 성희롱 성폭력에 털어놓을 곳 없이 고립된 좁은 원룸에서 나는 한껏 곪아 들었다.
평범하고 귀한 휴일 아침, 이유 모를 가슴 통증과 과호흡에 잠이 깼다. 공포스러웠다. 하필이면 가슴도 왼쪽 가슴통증이어서 정말 큰 일이 난게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도 금방 잦아들었다. 근처에 있는 심료내과에 찾아가려 했지만 당일은 가지 못해서 다음 휴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리는 중에도 계속해서 통증과 과호흡, 경련으로 정말 죽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다음 휴일에 찾은 심료내과에선 심전도까지 찍으며 진찰을 했으나, 특별한 이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하필 또 그날 밤 가슴이 아파 잠들지 못해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도 특히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아플 때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또 이런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공황장애라고 깨달은 건 3개월정도 후의 이야기였다.
결혼을 전제로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고, 매일밤 발작하고 제대로 잠에 들지 못 하는 나를 보고 정말 문제가 없다면 없는대로 큰 일 인거라고 꼭 병원을 가보라고 해줬다. '정신과' 라는 타이틀에 갈지 말지 많이 고민하던 내 뒤를, 뭔가 있으면 자기가 다 뒷바라지 하겠다고 꼭 가보라고 등을 밀어줬던게 남자친구였다.(실제로휴직중 수입이 적은 중 생활 전반을 다 뒷받쳐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
문제는 애초에 정신과는 초진을 잘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런 외곽 시골 동네에 정신과는 두군데밖에 없어서 두 군데에서 다 거절당하면 병명이고 진료고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한 곳은 혹시나가 역시나, 초진은 받지 않는다고 전화 10초만에 거절당했으나 다행히 한 곳에서는 초진이 가능하다며 증상을 물었다.
병원에 처음 가서 보건증과 보건 번호를 등록하고, 현재 심리에 대한 설문지를 받았다. 단단한 판에 꽂힌 재생용지에 빼곡하게 적힌 일본어를 읽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취조 당하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해야 했기에 눈을 부릅 뜨고 옆에는 사전 앱을 열어두고 어려운 한자는 검색을 해 가며 설문지 응답을 했다. 그래, 치료 하려고 온 건데 솔직해야지. 질문들의 안좋은 것들은 다 매우 그렇다이고, 좋은 것들은 매우 그렇지 않다에 체크를 하는 기분이란. 언제부터 이렇게 쓰레기 마냥 구깃구깃 구겨졌었나. 속이 많이 상했다.
첫 상담을 하며 많이 울었다.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다 큰 어른이. 진료실에 있는 휴지를 한 곽 다 쓸 정도로 울면서 상담을 했다. 새삼스럽게 힘든 이유들을 하나하나 말로 끄집어 내는 과정이 너무 괴뢰웠다. 이것까지 얘기 해야 하나 싶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다 끄집어 내 보니 아주 특정한 이유가 됐다. 그 아주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곪아들어가 이 사단을 만든 거 였다.
사실 우울증은 당연히 있을거라 예상했다. 지난 번 심료내과에서 진단 받았을 때도 '스트레스가 원인' 이라는 말에 아, 우울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구나! 하고 지레짐작 했었으니까. 환경 자체가 우울증이 없을 수가 없는 환경에 평생을 노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므로.
진단은 우울증을 동반한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제가요? 전 일반인인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공황장애란 '연예인들이 걸리는 병' 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기에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막 사람 앞에 서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던지 하는 극단적인 감각은 없어씩 때문에 의심했다. 과잉진료 아냐? 외국인이라고 등쳐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한참을 의심했다. 그만큼 믿을 수가 없었다.
일본어로는 パニック障害(패닉장애) . 특정한 환경에 노출되면 순간적으로 패닉이 오고, 신체적 반응이 동반하는 증상.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과 일본어의 직접적인 표현에 보다 현실이 와닿았다. 공황장애가 맞구나. 이유 없이 아픈게 아니었다는 안심과 이걸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눈앞이 캄캄해짐이 동시에 나를 덮쳤다.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처음엔 병원을 향한 불신 뿐이었다. 그 불신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매일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탓에 하룻밤에 열 번 이상 깨버리다가 아침이 온다. 출근 시간 사람으로 꽉 찬 전철에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 아침부터 지독한 사람 땀냄새에 환기도 못하고 절여지다가, 사람들에게 밀려 회사에 쓸려갔다가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일에 치여 시달리면 저녁 9시. 집에 도착하면 10시, 밥먹고 씻으면 11시이니 또 잘 시간. 삐걱거리며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하루를 일상이라 채우고 있으니 바른 말 해주는 사람을 꿈꾸는 얘기나 한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삐딱한 시선과 생각이 깊어질수록 '바로 그겁니다! 그게 증상이에요!' 하고 나와 공황을 가르키고 있었다.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처방전을 받고 허망한 기분으로 약국에서 약 수첩을 만들었다. 이 나이에 통원 환자가 되다니. 나중에 보험 가입하기 엄청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우울증을 동반한 공황장애가 맞았고, 약물치료와 상담, 그리고 제일 문제였던 직장에서 이직을 거쳐 휴직계를 내며 '상당히 많이 호전됐다'.
이직과 휴직에 대해선 차차 이야기를 해내가겠지만, 병원에서의 상담과 진단, 약물의 적절한 복용은 아주 효과가 있으니 처음엔 신뢰하기 어려워도 속는셈 치고 믿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가라앉고 유튜브에서 정신학 관련 강연을 찾아보고 있는 당신, 이 글을 읽고 혹시 나도? 하는 당신, 글을 읽으며 이유 모를 불쾌함과 답답함을 느낄 당신에게도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아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