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 빵을 뜯으며
낮이 긴 파리는 아침이 늦게 열린다. 6시 반이 넘었지만 창 밖은 아직 어둡고 도시는 조용하다.
특별한 계획 없이 호텔을 나섰다.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높은 첨탑 두 개가 있는 오래돼 보이는 성당이 나타났다. 동네 성당의 클라쓰가 이 정도라니. 원준이가 성당입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성당 안으로 들어가 짧은 기도를 드렸다. 특별히 무엇을 소망하지 않았다.
성당을 나와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 빵을 하나씩 사서 커피와 함께 뜯었다. 바게트 빵은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갈비 뜯듯이 뜯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아침 겸 점심을 그렇게 먹고 이 십분 정도 걸어서 바스티유 광장으로 갔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근처 카페에서 칵테일과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바스티유에 대해 검색했다.
보통은 공부하고 오는데 우리는 보고 공부했다.
오후엔 ‘파리 핵심지역 도보투어’라는 3시간짜리 가이드투어를 했다.
그리스 신전 같이 생긴 ‘판테온’을 구경했다. 18세기 시민혁명 당시 죽은 위대한 시민들의 묘가 있는 일종의 국립묘지 같은 곳인데 이곳엔 퀴리부인과 빅트로위고 등 과학자와 예술가 들도 잠들어 있다고 하니, 우리의 순국선열의 개념이 너무 제한적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파리의 대학가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여자 주인공이 배회한 파리의 골목과 그 계단을 보고,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에밀리 인 파리’의 촬영지와 주인공이 산 아파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뤽상브르 공원’이 나타난다. 프랑스식 대칭의 정원과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나타낸다는 사격형으로 이발한 것 같은 가로수들이 즐비한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지하철 한 정거장을 타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갔다.
노트르담 성당은 가장 오래된 파리, 시테섬의 중심에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 성당이다. 거의 200년에 걸쳐 134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혁명 때는 레지스탕스들의 기지로 사용되었고, 이후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여기서 했다고 한다. 2019년 화재로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고 성당 정면에 설치해 둔 계단 좌석에 앉아 두 개의 기둥과 온전한 반쪽의 성당을 바라본다. 성당 주위에는 온전했을 때의 모형과 화재당시의 사진과 화재로 소실되고 유실된 잔해 곳곳을 찍은 사진들을 바리케이드 벽면에 붙여 두었다. 아직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아내에게 줄 에펠탑이 수 놓인 티셔츠 하나를 샀다. 가격표에는 12유로라고 적혀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10유로만 달라고 한다.
기념품가게와 카페가 줄지어 있는 작은 골목길을 지나 시청으로 걸어갔다. 시청으로 이어진 쎄느강의 다리 위에서 멀리 펼쳐진 강과 파리의 전경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보니 중세풍의 건물과 어우러져 막 찍어도 엽서라 된다. 배경에 내가 들어가면 엽서에서 사진으로 전락한다.
투어 가이드와 헤어지고, 한참을 걸었더니 지치기도 하고 화장실도 갈 겸 빵집에 들어갔다. 작은 케익과 카푸치노 한 잔을 하고 나니 기운이 난다. 노트르담 성당에 갈 때 산 일일권으로 화장품과 영양제며 원준이가 서울로 들고 갈 귀환선물을 사기 위해 ‘몽쥬약국’으로 갔다. 8유로면 살 수 있는 일일패스권을 몰라 버스에 탈 때마다 5유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며 원준이가 놀렸다.
‘몽쥬약국’을 끝으로 오늘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오늘도 약 15,000보쯤 걸었다.
저녁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원준이의 청을 받아들여 평점 좋고 현지화 안된 한국식당 ‘부산식당’을 찾아갔다. 내일이면 서울 갈 텐데 파리에서 어설픈 한식을 먹어야겠냐라고 물으니 파리에서든 서울에서든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좋지 않냐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 우버를 부르자는 아들과 전철을 타자는 내 주장이 맞서다 전철을 탔다. 약간 뚱해 있어 서먹한 공기를 바꿀 겸 싫다는 녀석을 달래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아스파라거스와 추천 와인을 두 잔을 하며 어색한 화해를 했다.
원준이가 싫었던 건 지하철을 타서 싫은 게 아니라 우버를 타기로 했는데 내가 말을 바꿔서였다고 한다. 변덕스러움과 다른, 최선의 선택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지만 온전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원준이는 예측한 것과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경향도 있지만 아빠에게서 일관성 있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