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 가루가 공기 중에서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이 칠판에 긴 문제를 적었다. 복잡한 수열 공식, 조건이 여러 개 얽혀 있었다.
교실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저 하겠습니다.”
분필을 집자,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칠판에 ‘a₁, a₂’라는 글자를 쓰며 계산을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규칙성이 정리돼 있었다.
항 간의 차분, 불필요한 경우의 수 제거, 가장 효율적인 연산 순서.
손은 논리대로 움직였고, 분필은 기계적으로 ‘칙칙’ 소리를 냈다.
“따라서 일반항 an은—”
마지막 줄에 식이 완성되자, 나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잠시, 교실이 조용했다.
선생님이 팔짱을 풀며 내 풀이를 한 줄씩 눈으로 따라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건 정말 깔끔하다.”
그리고 아주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재답다.”
교실 뒤쪽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몇몇 아이들이 박수를 ‘탁, 탁’ 치며 웃었다.
누군가는 옆에서 “역시 천재네”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칠판 옆에 놓인 지우개를 정렬했다.
항상 그렇듯, 마무리는 정돈이어야 한다.
하지만 손끝에 묻은 분필 가루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흰 가루가 피부에 붙어 남아 있었다.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귀 안쪽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 천재답다.
실제 소리는 이미 사라졌는데, 머릿속에서는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등줄기가 스스로 펴졌다.
가방 끈이 어깨에서 조금 덜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도하지 않은 자세 변화였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손끝의 분필 가루를 내려다보았다.
지우려 했지만, 여전히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방금 들은 말처럼.
지워지지 않고, 묘하게 남아 있었다.
자리에 앉았지만, 등이 의자에 닿지 않았다.
척추가 평소보다 곧게 펴져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등 근육이 긴장된 채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목을 한 번 움직여 자세를 교정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똑바로 세워졌다.
방금 전 들은 말이 귀 안쪽에서 여전히 맴돌았다.
— 천재답다.
물리적으로는 소멸했을 소리인데, 내 안에서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언어 잔향’**이라 명명할 수 있다.
손가락을 비벼 분필 가루를 털었다.
그러나 하얀 가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피부에 달라붙어 남아 있었다.
이상했다.
가루의 잔여감과 말의 잔향이 같은 성질처럼 느껴졌다.
정보는 사라졌는데, 감각은 남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정리했다.
“문제 해결 → 정답 확인 → 사실 확정.
칭찬 = 사실의 재출력.
효율적으로는 불필요한 문장.
그러나 신체 반응 발생 = 오류.”
실제로 팔꿈치 피부에 미세한 돌기(소위 ‘소름’)가 돋아 있었다.
귀 끝이 평소보다 뜨거워졌다.
호흡 간격도 0.3초가량 짧아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속삭였다.
“… 자율신경계에 이상 반응.”
주변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소곤거렸다.
“오~ 진짜 천재네.”
“선생님이 칭찬한 건 처음 본다.”
웃음소리 몇 개가 뒤섞여 퍼졌다.
나는 그 말들을 정보로만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귀 안쪽에서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울렸다.
“천재답다.”
나는 공책 한쪽 귀퉁이에 작게 메모했다.
“칭찬: 사실의 반복.
그러나 잔향이 남음.
감각적 흔적 발생.
분류 불가.”
글씨는 평소보다 곧게, 일정한 간격으로 나왔다.
손목의 힘이 흔들림 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변화조차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으로만 말했다.
“칭찬은… 정보가 아니라, 신호일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책상을 옮기는 소리, 간식을 꺼내는 비닐 소리, 군데군데 웃음소리.
나는 방금 적은 메모를 덮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옆자리 민석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씩 웃었다.
“야, 천재야. 선생님이 아까 네보고 진짜 천재답다고 했지? 좋겠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건 단순히 제 이름을 사실적으로 변형한 것뿐입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천재 = 천재답다’ 정도. 사실의 반복입니다.”
민석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야, 너 진짜… 그런 말투까지 천재 같냐?”
앞줄에서 듣던 다른 아이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야, 너 오늘 멋있더라. 칠판에 식 줄줄 쓰는데 완전 프로 같던데?”
나는 대답했다.
“풀이 과정은 누구든 동일한 절차를 밟으면 가능합니다. 특별할 것 없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냐, 아냐. 우리가 하면 10분 걸리는 걸 넌 1분 만에 하잖아. 그게 다르지. 와, 선생님도 인정했잖아.”
“그건 단순히 연산 속도의 차이입니다. 기계식 계산기와 인간 계산의 속도 차와 유사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주변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야, 얘 말하는 거 봐. 진짜 로봇이야.”
“그래도 선생님이 칭찬했잖아. 나 같으면 하루 종일 기분 좋을 듯.”
나는 웃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웃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입가에 미세한 긴장이 생겨,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곧장 손으로 턱을 괴어 움직임을 가렸다.
내 안에서 작은 의문이 일었다.
“왜 이들은 ‘칭찬’을 가치 있는 사건으로 해석할까?”
사실로 보면 중복이고, 정보로 보면 불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는 확실히, 나를 부러워하는 빛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수치화했다.
웃음 빈도: 5회 이상.
긍정적 언어: 3건.
내 시선에 대한 집중도: 평소 대비 120% 증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었다.
그들의 반응 속에서, 내 몸이 다시 한번 반응하고 있었다는 것.
허리가 조금 더 펴졌고, 손목이 공책 위를 매끄럽게 움직였다.
나는 조용히 결론을 메모했다.
“칭찬은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신호.
타인의 표정과 억양이 나의 자세와 근육 반응을 변화시킴.”
그리고 아주 작게,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아직 미숙한, 그러나 자발적인 미소였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가방을 메고 뒤따랐다. 발걸음의 간격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가방 끈이 어깨를 눌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복도 창문으로 햇빛이 기울어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빛을 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또렷하게 들렸다.
— 천재답다.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단어는 여전히 내 귀 속에서 반사처럼 되살아났다.
언어의 주파수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중얼거렸다.
“칭찬은 사실의 중복인데… 왜 이 감각은 계속 남아 있지?”
허리가 펴진 상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어깨가 평소보다 뒤로 젖혀져 있었고, 고개는 높게 들려 있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몸은 스스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방 끈이 어깨 위에서 덜 파고들었다.
발걸음은 약간 더 경쾌했다.
나는 즉시 의문을 기록했다.
“정보라면 즉시 소멸해야 한다.
그러나 칭찬은 기억에 잔류.
결과: 자세, 호흡, 근육 반응에 지속 영향.”
나는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잠시 보았다.
눈높이가 평소보다 약간 위에 있었다.
허리가 곧게 세워진 상태.
그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곧장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마음 한쪽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그 감각은 분명 효율과 무관했다.
복도 끝에서 친구들이 장난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머릿속에 들려왔다.
“천재답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가방 끈을 고쳐 메며 혼잣말했다.
“… 이건 단순한 사실의 반복이 아니다.”
그러나 그다음 문장을 이어서 정의하지 못했다.
정의하려 할수록, 단어는 더 선명해져 귀 속을 울렸다.
나는 단지, 허리를 곧게 편 채 복도를 걸어갔다.
저녁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엄마가 국을 퍼주며 물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나는 숟가락을 들다가 잠시 멈췄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선생님이 저를… 천재답다고 했어요.”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진짜 천재가 맞네.”
그 말은 농담처럼 가볍게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신문을 넘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래, 우리 아들 잘했네.”
그들의 말투는 특별히 분석할 가치가 없는 평범한 격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안에서는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허리가 펴지고, 호흡이 부드러워졌다.
입가에 미세한 긴장이 생기더니— 이번에는 내가 막지 않았다.
작게 미소가 번졌다.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부정하지도 않은 미소였다.
나는 숟가락을 다시 들며 중얼거렸다.
“… 칭찬은 사실의 반복인데, 왜 따뜻하지?”
엄마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응, 뭐라고?” 하며 반찬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숟가락을 국에 담으며 마음속으로만 정리했다.
“칭찬 = 중복 정보.
그러나 잔여감 + 자세 변화 + 자발적 미소 동반.
분류: 정보 아님. 새로운 영역 필요.
이름: 아직 없음. 단어 후보 – 따뜻함.”
식탁 위의 김이 내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귀 안쪽에서 다시 울렸다.
— 천재답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단어를 굳이 지우려 하지 않았다.
가만히 두었다.
마치, 뜨거운 국물처럼 천천히 퍼져 나가도록.
방 안은 조용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원형의 영역만 밝혀주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펼쳤다.
오늘 기록하지 않으면, 단어가 밤새 내 귀 안쪽을 맴돌 것 같았다.
펜을 잡고, 제목을 썼다.
작성자: 이천재 (13세)
주제: 칭찬
1. 사건 기록
수학 문제 풀이 후, 선생님이 “깔끔하다, 천재답다” 발언.
교실 내 일부 학생 박수 및 감탄.
이후 복도 이동 중, 해당 언어가 반복적으로 떠오름.
귀가 후, 부모의 발화: “잘했다, 진짜 천재다.”
2. 신체 반응
허리 펴짐, 어깨 각도 변화.
팔꿈치 피부에 소름 발생.
귀끝 열감 상승.
호흡 주기 단축 후 안정화.
미소 발생 (억제 실패, 자발적 발현).
3. 분석
‘칭찬’은 사실의 반복 진술로 정보 가치는 낮음.
그러나 뇌에서 삭제되지 않고, 잔향으로 남음.
잔향이 자세·표정 등 신체 변화를 일으킴.
따라서 칭찬은 정보가 아닌, 신호로 분류 가능.
이 신호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전제함.
4. 결론
칭찬 = 불필요 정보 → 그러나 정서적 흔적 발생.
‘기분이 좋다’라는 현상 보고됨.
아직 명확히 정의할 수 없음.
새로운 단어 후보: 따뜻함.
나는 펜 끝을 오래 바라봤다.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수첩 위에서 낯설게 빛났다.
온도 개념일 뿐인데, 오늘은 단순한 열이 아니었다.
목 뒤와 귀 끝에서 퍼져 나온 그 감각은, 분명히 물리적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줄을 적었다.
“따뜻하다는 건, 데이터가 아닌 감각이다.
잔여감이 아니라, 머무는 감각.”
수첩을 덮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나는 불을 끄고 눕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들은 그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 천재답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 단어가 내 안에서 조용히 퍼졌다.
논리로 정의할 수 없는, 그러나 확실히 존재하는 잔여감.
아니, 이제는 잔여감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으로 느낀 따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