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실의 공기는 묘하게 눅눅했다. 알코올램프의 불빛이 작은 파동처럼 흔들렸고, 시험관 속 액체가 투명에서 연한 푸른빛으로 천천히 변색되던 순간이었다.
나는 스톱워치를 확인했다.
“27초… 28초…”
계산한 대로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정확히 35초 후에 침전물이 형성될 것이다.
모든 과정은 완벽했다.
시약의 비율, 불꽃의 온도, 교반 속도.
효율적인 결과를 위한 최적화였다.
그런데— 옆에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터졌다.
누군가의 팔이 탁자에 부딪혔고, 노란색 용액이 흘러넘쳤다.
액체는 실험대 위를 타고 흘러내려, 내가 준비해 둔 시약까지 번졌다.
뚜렷한 냄새가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범인은 장대한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쏟아진 용액을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아, 흘렸다. 에헤헤.”
그 옆의 아이들도 킥킥대며 따라 웃었다.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당신의 비효율성이 전체의 결과를 망쳤습니다.”
내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여러 계산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준비 시간 12분, 시약 혼합에 쓴 용액 25ml, 예상 반응 35초 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졌다.
실험의 목적은 결과 확인인데, 지금은 그 과정 자체가 오염되었다.
장대한은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며 나를 흘끗 봤다.
“야, 미안. 그냥 손이 쓱 닿았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오히려 더 올라갔다.
나는 순간, 목 안이 뻣뻣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차분히 답했다.
“실험은 정밀해야 합니다. 당신의 우발적 행동은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켰습니다.”
그 말에 장대한은 비죽 웃으며 옆아이를 툭 쳤다.
“봐라, 얘 또 시작이지? 로봇 같다니까.”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동조했다.
나는 시선을 다시 시험관으로 돌렸다.
반응은 이미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용액은 탁해졌고, 침전은 예정보다 빨리 형성됐다.
실험의 가치, 0.
나는 마지막으로 기록했다.
“실험 결과 무효. 원인: 장대한의 장난. 손실: 12분 + 25ml.”
효율은 완전히 망가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분노는 효율을 해친다. 따라서 나는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짐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장대한은 쏟아진 용액을 대충 휴지로 닦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 또 뭐야. 맨날 효율, 효율. 로봇 새끼 같아.”
그의 말투에는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즐기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답했다.
“문제를 일으킨 쪽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이해 불가입니다. 지금 실험은 무효가 되었고, 우리 조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책임은 분명히 당신에게 있습니다.”
순간, 주변에서 킥킥거림이 퍼졌다.
장대한은 비웃듯 고개를 기울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하, 책임? 여기 과학 경연 대회라도 하냐? 그냥 수업이잖아. 네가 그렇게 빡빡하니까 애들이랑 못 어울리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을 즉시 인지했다.
“사회적 유대와 실험의 정밀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효율적인 시스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무책임한 변수입니다.”
“변수? 너 진짜 말하는 꼬락서니 봐라. 맨날 어려운 말로 훈수 두고. 그래서 애들이 너 싫어하는 거 몰라?”
장대한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주변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폭소가 터졌다.
“얘 또 시작이네.”
“로봇 천재, 강의 중ㅋㅋㅋ”
“와, 말 진짜 재미없다.”
나는 그들의 웃음을 분석했다.
그것은 사실 논리적 동조가 아니라, 분위기적 동조였다.
한 명이 조롱하면, 나머지가 웃는다.
웃음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다수의 웃음은 사실을 변경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시약을 쏟은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 말은 더 큰 조롱으로 되돌아왔다.
장대한은 나를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야, 진짜 사회 문제다. 감정 없는 사이코. 인간인데 왜 기계처럼 말해? 너 사람 맞아?”
그 말에 주변 아이들 웃음소리는 한층 커졌다.
“사이코라는데 인정각?”
“로봇 천재, 감정 칩 필요함ㅋㅋ”
“야, 이거 유튜브 찍어서 올리면 조회수 나오겠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사이코.’
낙인 단어. 의미의 왜곡.
나는 단순히 사실을 진술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내 침착함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실험대 위에 놓인 비커의 흔들림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액체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 안에서 무언가 작게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분노는 효율을 해친다. 따라서 나는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짐을 되뇌는 순간에도, 장대한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서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나를 향한 도발이었다.
장대한은 내 앞에서 일부러 소리 높여 말했다.
“너 같은 애는 사람 아니야. 그냥 기계지. 버튼 누르면 대답만 나오는 로봇.”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졌다.’
심장이 불필요하게 빠르게 뛰었다.
목구멍이 막힌 듯 답답했고,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분노는 효율을 해친다.
그러므로 나는 분노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내 규칙이었다.
그러나—
“그만하세요!!”
내 목에서, 내 의지보다 먼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큰 울림이 과학실 공기를 찢었다.
그 순간, 교실이 얼어붙었다.
모두가 내 쪽을 바라봤다.
웃음을 터뜨리던 아이들의 입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나는 그 정적 속에서 손의 감각을 느꼈다.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무언가.
유리 비커였다.
‘쨍!’
투명한 파편이 바닥에서 터졌다.
액체가 흩어지며 비린 화학 냄새가 퍼졌다.
잔해들이 빛을 반사하며 교실 바닥에 흩어졌다.
내 숨소리가 커졌다.
내가 낸 고함과, 내가 떨어뜨린 파편의 울림이 뒤늦게 귀를 때렸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분명, 스스로 감정을 제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은—
이미 반응해 버렸다.
내 가슴은 빠르게 오르내렸고, 목은 화끈거렸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데이터에도 없는, 낯선 상태였다.
아이들은 놀란 듯 나를 보았다.
누군가는 웃음을 삼켰고, 누군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정적이 교실을 눌렀다.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유리 파편이 아직 바닥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과학실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내 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 울렸다.
쿵, 쿵, 쿵—
너무 크게 뛰어, 마치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장대한이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일부러 크게 말했다.
“뭐야. 너도 결국 소리치네? 하하하. 와, 별것도 아닌데 진지충 로봇도 터지네?”
그의 웃음은 도발이 아니라, 승리의 선언처럼 들렸다.
몇몇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눈치를 보다가, 억지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전처럼 크게 웃지는 못했다.
분위기 속에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렸다.
목구멍은 답답했고,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분노’라는 단어가 내 안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대한은 가볍게 웃으며 실험대를 떠났다.
“야, 너 그냥 사람 아니고 기계라며? 근데 결국 별 수 없네.”
그렇게 말하고,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내디디며 과학실을 나갔다.
남은 아이들은 조용히 나를 흘끔거리다,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낮게 속삭였다.
“야, 천재도 화내네…”
“처음 봤다, 저렇게 소리치는 거.”
나는 의자에 앉았다.
몸을 지탱하는 근육들이 전부 긴장해 있었다.
내 손바닥은 축축하게 땀이 차 있었다.
책상에 올려놓은 손을 보며 중얼거렸다.
“… 비효율적이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여전히 잔향이 맴돌았다.
고함을 지른 순간의 울림, 떨어지는 비커의 소리, 친구들의 멈칫한 표정.
그 모든 장면이, 마치 화면에 고정된 것처럼 뇌리에 남았다.
나는 처음으로 **‘감정의 여운’**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행동은 끝났는데, 반응은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멈췄지만, 몸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도, 그 여운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과학실을 떠났다.
나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여전히 부서진 비커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내 안에서도 무언가 산산이 부서진 듯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 선생님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이미 교실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듯했다.
잔잔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천재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가 소리쳤다고 하더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눈만 깜빡였다.
선생님은 내 옆에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니? 오늘은… 좀 화났겠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화…라는 단어를 제가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단순히 체온 상승,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의 합산 반응일 뿐입니다.”
내 목소리는 기계적이었지만, 스스로도 그 안에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음을 느꼈다.
나는 곧장 시선을 책상 위로 돌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다 들었다.
“그래, 네 방식대로 정의할 수도 있지.
하지만 천재야,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네가 오늘 소리친 건…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였을 거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지킨다?’
그 개념은 계산에 없었다.
선생님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사람이 화를 내는 건, 그냥 상대를 향한 공격만은 아니란다.
가끔은 ‘그만해’라는 경계선이 필요한 거지.
네가 너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도 있어.”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목이 여전히 뜨겁고, 손끝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 효율은 망가졌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효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어.
그게 바로 감정이야.”
그 말이 내 안에서 낯선 울림처럼 번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 어딘가에 조용히 저장했다.
‘분노 = 효율을 해치는 오류? 아니면… 자기 보호?’
집에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방 안은 여전히 어두운 것처럼 느껴졌다.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낮의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지른 순간.
비커가 깨진 순간.
그리고, 아이들의 멈춘 얼굴.
나는 수첩을 펼쳤다.
펜촉이 종이 위에 닿자,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
오늘은 기록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작성자: 이천재 (13세)
주제: 분노
1. 사건 기록
과학 수업 중, 장대한의 장난으로 실험 오염.
지적 과정에서 조롱 및 언어적 도발 발생.
나의 반응: 예상외의 고함 + 유리 비커 낙하.
2. 신체 반응
얼굴 열감 상승.
목과 가슴의 답답함.
심박수 증가, 손끝 떨림.
근육 전반의 긴장.
3. 분석
나는 분명 ‘분노는 효율을 해친다’고 반복해서 계산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이 계산은 무용지물이었다.
감정은 계산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결과: 의도하지 않은 고함, 물체 낙하 → 시스템 통제 실패.
4. 의미
분노는 단순한 ‘효율 저하’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자기 보호’의 기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위험 요소다.
분노는 나의 주도권을 빼앗아 갔다.
5. 결론
감정은 오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장치일 수도 있다.
오늘 나는, 비효율적인 존재가 되었다.
나는 펜을 잠시 멈췄다.
내가 적은 마지막 문장이 눈에 남았다.
“비효율적인 존재.”
그 단어는 낯설었지만, 어쩐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덧붙였다.
“사람이 된다는 건, 비효율을 감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수첩을 덮자, 방 안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내 안은 여전히 고요하지 않았다.
분노의 잔여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나는 이불속으로 몸을 누였다.
오늘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감정은 논리보다 빠르고, 효율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