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흰 분필로 쓰인 다섯 글자가 있었다.
WATER.
영어 선생님은 교과서를 턱 밑에 받치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자, 이번 단어는 누가 읽어볼까?”
교실 공기는 잠깐 고요했다.
아이들은 서로 눈을 피하며 바닥을 보거나, 책상 위를 두드렸다.
누구도 선뜻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순간, 몇 명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또 저거야?”라는 작은 속삭임도 들렸다.
나는 무시했다. 선택지는 단 하나.
정답을 말하는 것.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을 바라보았다.
분필로 쓰인 알파벳 W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지만, 형태는 명확했다.
내 눈에는 단어가 음성 기호로 바뀌어 보였다.
/ˈwɔːtə/.
길이, 강세, 모음의 장단. 모두 이미 머릿속에 정리돼 있었다.
입술을 오므려 첫음절을 준비했다.
혀끝은 정확히 잇몸 뒤에 닿았다.
나는 기계가 버튼을 눌린 것처럼 발음을 시작했다.
“/wɔːtə/.”
억양은 교과서 테이프와 동일했다.
처음 모음의 길이를 0.4초 늘렸고, 끝 음절의 ‘r’은 약화시켜 소리 없이 삼켰다.
발음 과정 전부가, 수학 공식을 대입하듯 계산된 결과였다.
나는 확신했다. 정답.
하지만 교실은 0.5초간 침묵했다.
그다음, 미묘한 소리.
처음엔 킥킥거림.
뒤이어 터져 나오는 웃음.
“뭐래ㅋㅋㅋ”
“와타르 와타르~”
누군가는 과장된 억양으로 코를 막으며 따라 했다.
“워터↘! 워터↗!”
다른 아이는 장난스럽게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헤이, 브리티시 보이! 유 노우?”
순식간에 웃음이 교실을 덮었다.
책상들이 덜컹거렸고, 발을 구르는 소리가 섞였다.
내 귀에는 데이터로 정리되지 않는 음성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정답을 말했는데, 결과는 조롱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머릿속이 계산에 들어갔다.
“발음 = 교과서와 동일.
검증 = 사전적 정답.
주변 반응 = 웃음.
논리적 불일치 발생.”
영어 선생님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어… 발음은 좋네. 응, 그래. 잘했어.”
그러나 목소리에는 애매함이 섞여 있었다.
칭찬이 아니라, 분위기를 얼버무리는 듯한 말투.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정답인데 왜 틀린 것처럼 취급되는가?
이건 내 공식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끼어든 상황이었다.
뒤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천재야, 다시 해봐라~ 와타르~!”
“워~터 보이! 하하!”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퍼뜨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칠판 위 단어가 여전히 /wɔːtə/로 보였다.
논리적으로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웃음이었다.
나는 펜을 잡아 공책 귀퉁이에 메모했다.
“정답 발화 → 웃음 발생.
원인 불명.
효율과 무관.
오류 기록 필요.”
그러나 글씨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쓰였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까지 함께 적고 싶어졌다.
“쓰기 속도 저하.
손의 안정성 흔들림.
상태 이상 감지.”
나는 눈을 들어 다시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표정 속에 내가 있었다.
어색한 미소, 과장된 흉내, 장난스러운 손짓.
그들은 내 발음을 소재로 삼아 놀고 있었다.
정답인데, 틀린 것처럼 웃기는 상황.
나는 아직 이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틀린 게 아닌데도— 내가 웃음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종이 울리자 교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는 과자를 꺼냈고, 누군가는 공책을 덮으며 옆 친구와 떠들었다.
그런데 내 주위만 묘하게 집중됐다.
내가 발음한 “/wɔːtə/”는 이미 끝났는데, 아이들의 입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야, 천재야. 한 번만 더 해봐라. 그거. 와타르~!”
민석이 내 옆자리에서 큭큭 웃으며 팔꿈치로 툭 쳤다.
뒷자리 아이가 곧바로 이어받았다.
“헤이, 브리티시 보이~ 워터!”
과장된 억양, 일부러 혀를 꼬아 발음을 흉내 내며 몸까지 흔들었다.
앞줄에서 듣던 애까지 돌아보며 손을 입에 대고 속삭였다.
“와타르~ 와타르~”
그러자 또 다른 애가 폭소를 터뜨리며 책상을 두드렸다.
교실의 소음은 국어사전에는 없는 이상한 발음들로 가득 찼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그리고 로봇처럼 차갑게 말했다.
“저는 정확한 발음을 했을 뿐입니다. 비웃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내 말은 더 큰 불쏘시개였다.
“하하하! 들었어? 얘 또 말 봐라. 근거가 뭐래.”
“와타르~! 하, 진짜 재밌다.”
아이들의 웃음은 더 크게 번졌다.
나는 곧장 다시 정리했다.
“정확성 = 보장.
발음 = 교재 테이프와 동일.
주변 반응 = 조롱.
웃음의 이유 = 발음 정확성과 무관.
원인 불명.”
그 순간 나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정답 여부가 아니라, 내가 웃음의 소재가 된 상황.
내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내가 “웃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팔을 꼬았다가 풀고, 다시 꼬았다.
가만히 있으면 더 노출되는 것 같아 괜히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귀에는 여전히 따라 하는 소리들이 쏟아졌다.
“와타르~ 와타르~”
“헤이, 잉글리시 보이!”
나는 다시 대답했다.
“당신들은 정답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웃음은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민석이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야, 이 말투 좀 봐. 와, 진짜 로봇이야.”
다른 아이가 덧붙였다.
“그래서 더 웃긴 거야. 얘는 틀리지 않았는데 이상해.”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틀리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이건 내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나는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논리적으로는 오류가 없는데,
현실은 내가 대상화되어 조롱당하는 중이었다.
공책 한쪽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정답 여부 ≠ 사회적 반응.
웃음은 논리와 무관.
나 = 대상. 타인의 흥밋거리로 소비됨.”
글씨가 삐뚤어졌다.
평소라면 일정한 기울기로 정렬된 활자처럼 적혔을 텐데, 이번엔 선이 흔들렸다.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내 발음을 흉내 내며 장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자각했다.
정확성과 상관없이, 타인의 웃음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닌, ‘웃음거리’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나는 다시 책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공책 위에 적힌 단어들—어제 풀던 수학 문제의 풀이 흔적—을 억지로 따라 읽었다.
그러나 뒤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은 여전히 귀를 때렸다.
“와타르~ 와타르~!”
“영국 신사~ 워터 플리즈~!”
나는 속으로 분명히 선언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사전과 교재, 그리고 교사의 확인까지.
모든 데이터는 내 발음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감정이라는 변수를 계산식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현상이 계속 이어졌다.
귀 뒤가 따끔거렸다.
뒷목이 간질거렸다.
마치 누군가 계속 시선을 꽂아 넣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본다’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손은 공책 위를 맴돌다, 글씨를 쓰지 못하고 멈췄다.
손바닥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지워버리려는 듯, 허벅지 위에 손을 문질렀다.
그러나 축축함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나는 자세를 고쳤다.
평소처럼 허리를 곧게 세우려 했지만, 등은 자꾸만 굽어졌다.
의식적으로 펴면 3초 만에 다시 구부정해졌다.
책상 위로 상체가 조금 더 기울었다.
나는 그 사실을 감지하고는 다시 한 줄 적었다.
“자세: 축소.
몸집이 줄어드는 듯한 반응.
원인 미상. 감정 아님.”
나는 내 말투를 더 기계적으로 만들었다.
누군가 다시 “헤이~ 와타르!” 하고 부르자, 나는 곧장 대답했다.
“나는 정답을 말했을 뿐입니다. 웃음은 의미 없는 반응입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그 사실을 내가 가장 먼저 감지했다.
낮은 목소리는 내 의도와 달리, 마치 스스로를 숨기려는 듯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웃었지만, 나는 속으로 강하게 되뇌었다.
“나는 감정이 없다.
내게 남은 것은 데이터뿐이다.”
그러나 몸은 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어깨가 평소보다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손가락은 책상 모서리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내 시선은 교과서 한 구절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조금이라도 고개를 돌리면, 또다시 웃음의 대상이 될까 두려운 듯.
나는 그 사실까지 기록했다.
“감정 없음 = 의식적 선언.
그러나 몸의 반응 = 위축.
명칭 불가.”
수업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에서까지 ‘와타르~’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따라왔다.
나는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뒷목의 간질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교문을 나섰는데도 그 소리가 계속 따라왔다.
“와타르~!”
“헤이, 브리티시 보이~!”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귀 속에서는 여전히 잔향처럼 그 소리가 맴돌았다.
마치 운동장에서 울린 공의 울림이 담장에 부딪혀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조롱은 내 안에서 반복 재생됐다.
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말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나는 평소처럼 간단히 답했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문장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와타르.”
그 단어가 내 대답 뒤에 붙어 다니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거울 앞에 섰다.
나는 입술을 천천히 모으고, 다시 발음을 해 보았다.
“/wɔːtə/.”
발음은 완벽했다. 사전과 교재, 테이프의 원어민 음성과 동일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wɔːtə/. /wɔːtə/.”
혀끝과 목구멍의 울림까지 점검했다.
논리적으로 오류는 없다.
그런데도, 거울 속의 내 표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정답을 말하고 있는데,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눈썹이 조금 찌푸려지고, 턱선이 경직돼 있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된 내 모습 같았다.
나는 거울 속 나에게 말했다.
“부끄럽다는 건 틀렸을 때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틀렸다고 여길 때 생기는 거다.”
그 문장은 계산식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오늘 교실에서 내가 느낀 이상한 간질거림의 정체가, 어쩌면 이와 관련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책상에 앉아 공책 한쪽에 적었다.
“부끄러움 = 오류 때문이 아님.
타인의 시선 속에서 발생.
정답이어도, 모두가 웃으면 틀린 것처럼 느껴짐.”
쓰는 순간에도 손이 떨렸다.
이상했다.
오늘 하루의 단어와 웃음은 이미 끝난 사건인데, 왜 나는 여전히 그 순간에 갇혀 있는가?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잔상.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상.
나는 펜을 내려놓고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낮의 교실처럼, 작아져 있었다.
다음 날, 다시 영어 시간이 찾아왔다.
칠판에는 새로운 단어가 적혀 있었다.
TOMATO.
선생님이 말했다.
“자, 이번에도 읽어볼까? 어제처럼 원어민 발음으로 해도 좋고, 그냥 편하게 해도 된다.”
나는 즉시 손을 들려다가 멈췄다.
어제의 장면이 떠올랐다.
웃음, 흉내, 조롱.
귀와 뒷목을 타고 흐르던 간질거림이 되살아났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터-메이-토.”
정확히는 **/təˈmeɪtoʊ/**가 교재의 발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음 길이를 줄이고 억양을 평평하게 눌렀다.
교재 테이프가 아니라, 교실에 맞춘 발음.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잘했어.”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박수도, 장난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넘어갔다.
나는 곧장 공책에 적었다.
“정답 발음 수정 = 반응 없음.
효율적.”
하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틀리지 않았는데도, 나는 일부러 정확하지 않게 말했다.
논리적으로는 ‘효율적’이라 기록했지만, 어딘가에 작은 문장이 스며들었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건 새로운 계산식이었다.
정답 여부가 아니라, 반응을 피하기 위한 자기 조정.
나는 스스로도 낯선 이식(移植)을 발견했다.
수업이 끝난 뒤 복도를 걸으며 혼잣말했다.
“정답을 말해도, 모두가 웃으면 틀린 걸까?”
그 문장은 머릿속에서 계속 회전했다.
정답과 틀림의 경계는 분명해야 했다.
그러나 어제의 사건과 오늘의 반응을 나란히 놓으면, 공식은 달라졌다.
정답 발음 (/wɔːtə/) → 웃음 발생 → 사회적 실패.
수정 발음 (터-메이-토) → 웃음 없음 → 사회적 성공.
논리로는 모순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작동했다.
나는 다시 공책 귀퉁이에 적었다.
“정답 = 조롱.
수정 = 수용.
옳음 ≠ 받아들여짐.”
글씨를 적으며 이상하게 손끝이 차가워졌다.
나는 책을 덮고 가방을 메며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옳은 것은 반드시 환영받지 않는다.”
그 순간, 가슴속 어딘가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이건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어제의 웃음이 아직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원형의 섬처럼 빛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기록하기 위해 수첩을 펼쳤다.
펜을 잡는 순간, 손끝에 아직도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작성자: 이천재 (13세)
주제: 쪽팔림
1. 사건 기록
영어 수업 중, 단어 WATER 발음을 정확히 함 → 친구들의 웃음과 조롱 발생.
이후 쉬는 시간, 지속적 흉내와 비웃음.
몸의 반응: 귀 뒤 따가움, 뒷목 간질거림, 어깨 움츠러듦.
저녁에도 해당 발화가 귀 속에서 잔향처럼 반복됨.
거울 앞에서 재확인: 발음은 정확했음.
그러나 다음 날, 발음을 의도적으로 덜 정확하게 수정 → 반응 없음.
2. 분석
정답을 말했음에도 조롱당함.
오류 없음에도 ‘틀린 자’로 취급됨.
원인: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사람들의 웃음은 발음 자체보다 ‘나’를 대상으로 삼음.
따라서 감정은 논리적 결과가 아닌, 사회적 반응에서 발생.
3. 신체 반응
손바닥에 땀, 자세 위축, 목소리 음량 저하.
논리적 사고는 “부끄럽지 않다”라 선언했으나, 몸은 반대로 반응.
즉, 의식 = 부정 / 무의식 = 반응.
이 불일치가 새로운 불편감(감정)을 생성함.
4. 결론
이름 없는 감정이 발생.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잔류.
나 스스로 작아지는 경험 동반.
추정 명칭: 쪽팔림.
공식적 정의는 불가하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와 현상 일치.
나는 펜을 내려놓고 수첩을 오래 바라봤다.
‘쪽팔림.’
이 단어는 평소 내가 잘 쓰지 않던, 다소 가벼운 일상어였다.
하지만 오늘의 경험에는 그 말이 가장 가깝게 붙었다.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정답인데 틀린 것처럼 취급되는 순간,
내가 아니라 남들의 눈 속에서 ‘틀린 나’가 만들어졌다.
그 나를 보는 순간, 내 몸은 스스로 작아졌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나는 그 순간, 작아졌다.”
책상을 덮고 불을 끄자, 방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귀에는 여전히 잔향이 남아 있었다.
와타르~.
낮의 웃음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나는 이불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쪽팔림이란 건, 아마도… 틀린 게 아니라, 웃음 속에서 내가 줄어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