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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pr 03. 2024

육십 중반에 읽는 니체

망각과 기억

육십 중반에 읽는 니체


아프다. 자주 아프다.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아프기도 했다. 왜 이런 아픔을 반복하며 살아갈까. 철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건강한 삶을 위한 자극이 될 것이라는 솔깃한 문구에 니체에 관한 을 선택했다. 철학이라면 몇 줄 읽기도 전에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기도 힘들었는데 제법 읽을만하다. 벌써 절반가까이 읽어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잠언이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명언들이다.


주관적 견해로는 그가 평생을 병과 고통 속에서 살다 갔기에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니체는 인간의 몸과 마음의 건강문제를 다룬 최고의 의사이자 심리학자라 했다. 자신도 평소에 건강이 온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심한 편두통, 만성적 위장 장애 등 건강과 병의 경계를 오갔다 하니 그가 추구했던 삶의 철학이 더 궁금해졌다. 우리는 누구나 몸 안에 병과 고통을 이길 힘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지금 병에 걸려 몸이 아프거나 건강이 나빠졌다면 다시 건강해질 시간이라 했다. 이제 나도 그만 건강해질 시간이다. 건강해지길 간절히 원한다.


더 이상 현대의학에만 기대어 수많은 알약들을 약해진 위장 속에 마냥 들이밀 수가 없었다. 한방치료를 잘한다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전기자극치료와 부황을 뜨고 곳곳에 생전처음으로 침치료를 받았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플 만큼 아파서였는지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극도로 싫어하는 죽을 먹지 않아도 되고, 신선한 야채와 부드러운 순두부로 소중한 내 몸을 달래는 중이다. 니체는 병과 고통은 삶을 비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건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한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으니 나도 할 수 있다.


플라톤은 몸을 영혼이 갇혀있는 감옥이라 했지만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몸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났고, 몸은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처음 받는 아름다운 선물이고 죽을 때까지 입어야 할 마지막 옷이니 스스로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필자는 말한다. 그러니 비록 약해진 몸이지만 다시금 일으켜 세우며 나의 하나뿐인 영혼이 선택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리라. 화사해지는 봄길을 걸으며 싱그러운 에너지 활짝 핀 꽃들이 전해주는 향기로운 봄날을 마음껏 즐기 나를 사랑으로 건져 올리리라.

건강한 내 몸을 되찾기 위해서....





망각과 기억


요즘 자주 깜박깜박하는 경향이 늘어간다. 도대체 왜?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데 아니 아니어야 하는데 자꾸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과학적인 접근으로 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그에 대한 내용들은 방대하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보는 순간 머리까지 지끈지끈해져 온다. 그냥  때가 되어 나타나는 건망증이라 치부해 버리고 싶던 차에 이 책의 뒷부분에 '망각과 기억'에 관한 내용들이 성실하게 쓰여 있으니 반갑기만 했다.


망각은 우리가 선별하고 선택한 것만 받아들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저지능력이라며 육체적인 소화능력에 비유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할 때 그 전체과정을 의식하지 않듯이, 망각도 우리가 과거에 경험하고 받아들여 기억된 것들을 소화해서 의식에 떠오르지 않게 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그 모든 일들을 잊지 못하고 일일이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그 삶들이 원만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 단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망각이란 것에 의하여 잊힐 수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 하늘이 노랗고 너무 아파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보지만 어느 결에 그 다짐들은 어디 가고 둘, 셋, 그 이상을 낳기도 한다.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망각이 갖는 세 가지의 효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 번째로 우리가 잠시 휴식할 수 있도록 한다. 말 그대로 좋은 일이든 아니든 간에 그 순간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기억에 매달려 산다면 우리는 잠시도 그 기억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은 지쳐갈 것이다. 잊을 건 잊어줄 때 잠시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망각은 조형력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준다. 조형력은 형태를 만들어 이루는 힘으로 망각에 의해 어린 나이에 친구의 죽음이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경험들로부터 벗어나 일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들의 트라우마에 평생을 그 아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녹록지 못할 것이고 아픔으로 점철된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망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에 빈자리를 만들어 준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허망하고 그 슬픔 속에서 도저히 나만의 삶을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하기에 하루하루 일상을 찾아가고 새로운 날들을 꿈꾸며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망각은 우리가 좀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한 형식이라고도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문득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지난날의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던 그 순간들. 왜 나만 이런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까, 그 비참하게만 느껴졌던 기억들로 불면에 밤을 보내며 마음 아파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아무리 힘든 순간일지라도 행복했던 그 기억들을 소환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희망의 등불로 삼기도 한다. 기억은 망각과 반대능력으로 니체는 기억을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경우처럼 망각을 제거하고 오히려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능동적인 의욕 상태'라 하였다. 기억은 아픈 상처처럼 반드시 지워야만 하는 대상인 것만은 아니며, 긍정적인 의지의 작용으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억보다는 망각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보았으며 "가장 작은 행복에서나, 가장 큰 행복에서도 행복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억보다 망각할 수 있는 힘이 인간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며 수단이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제때 기억할 줄도 제때 잊어야 할 줄 알아야 하고 망각과 기억은 우리가 건강하고 좋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행복한 삶이 이어질 수 있다 한다.


어느 때부턴가 기억은 안개처럼 희미해져만 가고 망각은 더 빨리 내 곁에 와 있곤 하다. 흐른 세월만큼 그 횟수는 잦아지고 다양한 영역까지 넓게 전염되어 왜 기억이 안 나는 걸까. 왔던 자리 다시 가보고 모든 기억회로를 되돌리며 찾아낼 때면 그 기쁨은 더없이 크면서도 왜 이럴까? 낙심을 하며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은 주위 지인, 친구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들어오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오히려 망각이 이루어질 때 행복하다니 너무 연연하며 자책하지 말자.


우리들의 기억은 아직도 철통 같은 방어로 몇 시간이고 떠들어 댈 수 있는 자원들로 가득하다. K아줌마의 수다는 이 집 저 집 아주 오래된 기억들까지 끄집어내며 별도 달도 잠재울 만큼 그 능력은 하늘을 점령하고도 남는다. 다만 그 기억에 깊이를 더해줄 때 좋은 글이 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쓰여질 것이다. 나를 브런치스토리 작가라 한다. 작가라는 그 경계 어디선가 서성이며 부끄럽고, 자신의 성에 안 차 낙심하고, 때로는 나아갈 길마저 찾지 못해 헤매기도 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아 좋은 기억들로 남겨질 수 있도록 이 순간을 기록한다. 부끄러웠던 기억은 망각이라는 것에 욱여넣어 버리고 말이다.



본 글은 <마흔에 읽는 니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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