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이었을까? 추운 겨울이었고, 그해 따라 유난히 감기를 심하게 걸리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내과에 갔다. 나보다 몸집이 크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니를 온몸으로 부축하며 검진을 받기 위해 힘들게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한참을 청진기를 들고 진료를 마치신 후 어머니 연세를 확인하셨다. 그리고 누구에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힘드시겠다!"는 말씀을 뒤로하고,약국에서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계속 속이 안 좋았던 나도 다시 그 병원을 찾았다. 나의 증상들을 확인하시며 며칠 전 그분이 시어머니라는 것을 아시고는 긴 말씀이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한적도, 나 자신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본 적 없었지만 위로가 되고 감사했다. 차마 그 앞에선 울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내내 아군이 생긴 것처럼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느새 눈물이 줄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의사 선생님말씀은 단호했다. 나라에서도 특별한 시설을 허락해 주는 이 좋은 세상에 왜 당신만이 그 개고생을 하며 몸도 불편하시고 치매까지 있으신 분을 미련스럽게 돌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본인 몸이나 챙기지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본인이 살고 싶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며 거침없이 내 가슴을 후려 때렸다. 그저 말없이 꾹꾹 참으며 듣기만 하다 진료실을 나왔다. 신경안정제와 위장약을 한 보따리 들고 울며불며집으로 돌아온 그날이다.
그날 이후로 한 가지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건소에 치매검사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과 진료를 거쳐 정식으로 공단에 치매등급신청을 했다. 일은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차마 보내드릴 수 없어서였다. 공단 직원이 집을 방문했고 시어머니와 인터뷰를 하고 얼마 후 치매 4등급이 나왔다. 일단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 걸 권해서 지인들을 동원하고,마땅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집에서 주간보호센터차로 이동이 편리한 곳으로, 그리 멀지 않은 센터에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지하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후에는 이른 저녁을 드시고 귀가를 하셨다. 집에서 무료하게 계시는 것보다 그곳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배우시고, 운동도 하시고, 그 편이 훨씬 어머니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그 시간만큼은 신경 안 쓰고, 내가할일을 할 수 있었기에 서로에게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도 길게 가지 못했다. 목욕시켜 드리는 것이야 벌써 몇 년째 이어오고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차츰 대소변 실수를 하시고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했고 마음 아프다는 말로는 다할 수도 없다.모셔보지 않은 형제들의 서운함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되어야 했다.결혼과 동시에 함께 했던3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뒤로 한채,보내드려야 하는 그심정을헤아려주기는 커녕, 본인들만 서운타 하니참 많이도 아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친정아버지께서도 지병으로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 다녀온 것이 다였기에 죄송함이 늘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엄마께서도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요양병원을 다시 중환자실을 전전하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먼 길을 떠나셨다. 이제 6년째 요양원에 계시는 97세 되신 시어머니마저 병원을 오가며 숨 가쁘게 콧줄을 달고 먹기를 거부하고 계시다.그럴지라도 세분이 내 인생에 있으셨기에 헤아릴 수 없이 행복했고 감사했다.
환갑, 진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부모님들 가시는 길을 보며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38년을 함께 한 시어머니께서 가시는 마지막까지 내손길이 필요하고 잘 보내드려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소임을 다하고, 내가 가야 할 길도 살펴야 되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세상은 돌고 돈다. 가는 이 가 있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이 있듯이 한때의 어려움도 지나고 나면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조금은 더디게 오더라도 인내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 힘들다고, 당장 행복하지 않다고, 일희일비하며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공평하지 못한 세상일지라도, 나 자신이 굳건하게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며, 부단히 물속에 오리처럼 자맥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소소하게나마 작은 행복을 꿈꾸고, 그 소망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되리라.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맛있는 음식에 미소 웃고.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에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슬픔과 행복이 공존하는 인생길에서 나의 곧음으로 우뚝 서며, 이도 잘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