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이 꿈이라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성장해 가는 우리네 삶을 표현한 것이지 싶다. 나 역시 끼니도 걸러야 하는 가난한 집의 존재감 없는 둘째 딸로 태어났지만,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게 만났던 사람들을 통하여 좌절도 하고, 아픔과 상처도 경험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성장도 하며 매일매일 부족한 나를 채워 왔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까지 나와 만났던 사람들로 인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부당함 앞에서 이겨내려 애썼고, 인내를 배우며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안에서 씩씩하게 견뎌왔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혼자여도 함께여도 약육강식의 세계처럼 살아남기 위해 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달리기를 잘해서 가족들을 기쁘게 해 드리며, 볼품없는 몰골에 착하고 공부라도 좀 해야 그나마 관심을 가져주기에, 일찍부터 사회라는 것에 눈을 떴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알길 없는 권력 앞에서 공순이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사회의 쓴맛을 제대로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 자신을 단단하게 해 주었고,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알게 해 주었다.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볼 때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이 있다면,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다닌 실업고 3년이다. 작고 어린 나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폭언과, 열악한 환경, 방직기계 앞에서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다음의 삶이 마냥 버겁지만은 않았다.
비록 희망 없는 삶을 박차고 무적정 결혼을 선택했지만 그 속에서 사랑하려 애썼고, 칠 남매의 맏며느리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늘 놓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없이 시작했기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엔 없었고, 노력하지 않는데 그냥 주어지는 것은 일도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였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의 인생도 괜찮은 날이 올 거라는 작은 소망을 품고 살았기에, 쌀이 없어 결혼패물을 팔았을 때도 결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가족들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의 바둥거림으로 소망을 꿈꾸고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늘 내 곁에는 함께 해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완벽을 추구하며 자존심 강한 사람이기에 부족한 나를 더 뛰게 만들었고, 언제나 든든하게 가정을 지켜주었으므로 무엇이든 당당하게 할 수 있었다. 가끔은 그 완벽함과 강한 자존심이 감성적인 나를 슬프게도 하였지만, 그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사랑도 노력이라 되뇌며 살아왔다. 이제 노년의 삶을 걸어가는 우리 두 사람, 그깟 사랑이 뭐다냐! 그저 손잡고 마주 보며 의지하며 미운 정 고운 정 쌓인 정으로 살아간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분신들, 두 아이가 내 인생에 들어와 주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꼬물꼬물 태어나며 기쁨과 희망을 주었고, 새록새록 크는 모습에 행복을 느끼고, 또 다른 소망을 담으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큰 아픔 없이 잘 자라주고, 좋은 짝을 만나 자식을 낳아 잘 살아주니 그보다 더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어디 있으랴. 더구나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손주들을 안겨주었기에, 나의 삶을 더욱더 행복밭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슬픔, 좌절 앞에서 괴로운 시간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이겨내고 우뚝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이 온통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언젠가는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날들이 있음을, 또 다른 삶을 엿보며 용기가 될 수 있는 글로 남겨지고 싶다. 대단하고 특별한 건 아니지만 이러한 나의 인생스토리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아픈 손가락처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계신 시어머니,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현재의 이 행복은 오르지 내 가족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있어 가능했기에 앞으로도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더 힘든 역경 속에서도 당당히 이겨내고 행복을 찾은 분들도 많겠지만, 혹시 나와 같은 소소한 행복이 꿈이라면 그들 삶의 여정에 미력하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리고 그 소망이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되길 간절히 염원해 본다.
긴 여정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