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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l 27. 2023

내 분신들도 부모가 되었다.

내 삶의 활력소가 되는 손주들

두 아이의 결혼으로 두 번이나 혼주석에 앉아 보았다. 그때마다 촛불을 밝히기 위해 사돈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설렘과 급한 마음으로 채워졌다. 너무 빨리 걸었을까. 사돈이 내 손을 잡는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서운함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예식을 무사히 잘 치루워 낼까? 축하를 위해 바쁜 중에도 먼 길을 와주신 분들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 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오늘만큼은 혼주로서 아이들 혼례에만 집중해야 하건만 7남매 맏며느리로 살아온 탓에 어김없이 마음은 하객들 속으로 달려가곤 했다.


내 자식들에 앞서 시동생들을 모두 결혼시키며, 결혼식준비부터 오신 하객분들 신경 쓰느라 결혼식을 여유롭게 본 기억이 없다. 식이 끝나고 집으로 오실 분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고, 사돈댁에는 가족들이 모이셨을 때 드시라고 미리 준비한 이바지음식도 잘 챙겨 보내야 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다행히 제때에 모두 결혼을 했고, 착하고 예쁜 동서들이 들어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큰아이인 딸은 캠퍼스커플이다. 4년간의 연애를 거쳐 별무리 없이 결혼에 골인했다. 딸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두 아이 모두에게 결혼을 결심했을 때만 서로 얼굴을 보기로 했었기에 기다렸다. 오며 가며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사귄다고 모두 결혼까지 가는 것은 아니기에 좋은 기억만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 딸이 먼저 취업을 하고 상대는 대학원을 나와서 좀 더 늦게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도 4년이 다되도록 지지부진 결혼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성격 급한 우리 부부는 두 사람을 불렀다. 결혼을 하던지 헤어지던지 결정을 하라는 통보를 다. 그러지 않아도 주위에서 호시탐탐 내 딸을 탐내는 분들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 마음이 우선이기에 또 기다렸다. 결국 사위는 경제적으로 준비가 덜 된 상황이었지만, 서둘러 신혼집을 마련하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딸이 미리 취업하여 자동차도 사고, 그동안 알뜰하게 모아 온 돈으로 결혼준비도 하고 나머지도 살뜰히 챙겨 들고 시집을 갔다.




일찍 결혼을 하고 싶어 했던 아들 역시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쓰기를 좋아했던 아들은 두 사람이 반씩 모아 양가에 도움 없이 결혼식을 하겠단다. 대신 불필요한 형식은 배제하고 간소하게 하기로 했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 해서 외국까지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만 했는지,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던 똘똘하고 야무진 여자 친구를 만나 결혼까지 한 케이스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좋은 짝을 만났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며 2세들이 태어나기 시잣했다. 내 나이 50대에 큰 외손자기 태어났으니 참 급하게도 할머니가 되었다. 뒤이어 작은 외손자, 손녀딸까지 줄줄이 태어나며 3명의 손주를 둔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다. 물론 너무 이른 나이에 할머니가 되다 보니 시샘반 축하반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러든 말든 꼬물꼬물 귀엽던 손주들도 부쩍 자라 나보다 손도 발도 크고 수시로 안겨주는 에피소드에 웃는 날이 쌓여간다.




현재의 나를 주위에서는 많이들 부러워한다. 적령기에 결혼해서 바로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들도 30전에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다 낳았으니 자식농사는 훌륭하게 잘 지은 셈이다. 더구나 모두 안정된 직장에서 각자의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그러다 보니 남보다 좀 더 일찍 모든 일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상담교사를 그만두면서 자주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손주들이 하나둘씩  태어나면서 내 도움도 필요했기에 11년간 했던 학생상담자원봉사자활동도 그만두었다.


물론 시어머니의 흐려져가는 정신이 가장 큰 몫을 차지했지만, 늘 바쁘게 밖을 향해 있던 모든 시선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삶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 열심히 살아왔다.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고. 쌓여온 모든 순간들의 감사함에 봉사라는 이름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달려온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동료였던 샘들과 후배샘들은 교육현장에서 봉사를 이어오며 헌신하고 있다. 학생들이 현재의 나를 소중히 여기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길에 조금이나마 빛이 되고자 애쓰는 분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하다. 혼자서 이 모든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없기에 서로 도와주고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도 손주들과 감정나누기를 하고, 버츄카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우리 꼬맹이들도 마음 건강한 어른이 되어, 힘든 이들에게 기꺼이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오늘 이 시간 작은 소망의 씨앗을 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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