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엄마 오늘부터 이제 봄이야?,
그럼 어제도 봄이야?”
“그럼 계속 계속 봄이면 겨울은 언제 끝났어?”
“어제랑 오늘이랑 똑같은데
왜 오늘부터 갑자기 봄이야?”
어릴 적에 자주 했던 질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절기며, 기온변화 같은 다양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고등학생때까지도 납득하지 못했고, 누구하나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도 못하는 나만 없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어른이 돼서는 더이상 궁금하지는 않았다. 계절은 옷가게와 뉴스 안에 있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다른 옷일 뿐이었다.
산책길에서 잊었던 인생의 궁금증을 해결했다. 실처럼 올라오기 시작한 달래가 오늘부터 봄이라고 알려주고, 솜털이 사라지면서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쑥이 봄이 끝나간다고 알려준다. 그것을 젤로, 마루와 산책하면서 배웠다. 봄을 걸을 때는 달래를 캐야 하니까 호미를 들고 나갔고, (달래는 연해서 호미가 없으면 뿌리까지 캐기 힘들다. 우리 동네는 유독 달래가 많이 나서 다른 동네사람들도 캐러 온다.) 쑥을 뜯을 때는 봉지를 가지고 나갔다. (달래는 길어서 한줌만 들고와도 충분하지만, 퐁실퐁실 짧은 쑥은 봉지 없이는 한주먹도 들고 있기힘들다.)
여름 태풍 뒤에는 건천을 오랜만에 채운, 한라산에서 내려온 얼음장 같은 물을 첨벙첨벙 건너갔고, 가을에는 길가 가득 핀 부드러운 억새를 한없이 쓰다듬다보면 산책길이 끝난다. 새눈을 밟으면서 뛰어다니다가 수확을 마친 밭에서 차가운 무를 주워 먹다 보면 겨울도 끝이 난다.
소나기
어릴 적 읽은 소나기가 생각나서 나도 흙을 털고 겨울 무를 한입 먹어보기도 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랑 있는 게 아니어서인지, 시원한 겨울 무가 그렇게 달았다.(소나기에서는 도시 여자친구가 맛없다고 던져버리자 주인공도 맵다면서 던져버린 것 같다.) 어쨌든 산책길은 우리들만의 ‘소나기’였다. 다만 좋아하는 아이 대신에 개랑 함께였을 뿐.
우리 개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봐주는 법이 없어서, 온전한 사계절을 알려줬다. 어제랑 똑같은 오늘은 단 하루도 없었다. 아름다운 순간은 소나기처럼 잠시 스쳐갈 뿐이었다.
“계절을 잘 모르겠다면,
잠깐,
멈춰야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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