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계단
우리 집은 근처에서 가장 높은 1층 주택이다. 1층이지만 지붕을 덮지 않아 옥상이 있다. 우리 집 근처의 집들은 다 옥상이 없어서 강아지들과 옥상에 올라오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리는 옥상 끝 마지막 계단이었다. 주택의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그렇듯이 한 사람이 앉기도 비좁은 자리에 앉아서 마루랑 어깨동무를 하고, 젤로는 무릎에 얹고 음악을 들었다. 달이 없는 밤에는 별도 보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우리는 넓은 옥상을 놔두고 그 좁은 계단에 앉아서 바라봤다.
버스정류장
앉아있는 것이 지루해지면 차들이 다 사라진 집 앞을 산책하러 나갔다. 우리 집 대문을 바로 열고 나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아무도 없는 밤의 버스정류장 벤치는 산책루틴이었다. 산책을 시작할 때 버스정류장에 앉아, 산책 전 흥분을 낮추기 위해서 '앉아', '기다려'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출발하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역할극을 하고 놀았는데,
“어디 가세요?, 저는 코타키나발루 가는 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이렇게 실없는 대사를 주고받았다. 코타키나발루는 가본 적도 없고 계획도 없었는데, 아마 ‘코타키나발루’라는 노래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그 발음이 뭔가 신비한 곳으로 떠나는 것 같았고, 밤의 버스정류장은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에서 돌아올때 버스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코타키나발루로 가자!!”면서 버스정류장에 뛰어와서 앉아있다가, 실없는 대화를 하다가 돌아갔다.
내가 장기여행을 계획하면서 버스정류장에서의 대화는 약속이 되어갔다.
“ 나 이제 언제 올지 모르니까, 버스 타고 코타키나발루로 와 거기서 기다릴게”
“버스탈 줄 알지, 마루는 똑똑해서 혼자서도 잘 찾아올 거야 그렇지?”
그날그날 기분 따라 달라지는 상황극으로 조금씩 이별을 연습했다.
그 뒤로 4년 동안 긴 여행을 떠났다. 가끔 한국에 돌아와서 집에 머물다 갔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다.
시작할 때 말했지만, 우리 집의 개 고양이들은 내 개도, 내 고양이도 아니다. 나는 그저 잠깐 더부살이로 살고 있는 참견쟁이였을 뿐이다. 같이 있을 때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짧은 출장으로 집을 비웠다. 내가 캐리어를 열면 곧 떠나는 줄 동물들도 알았다. 항상 내 곁에 붙어 있는 젤로는 캐리어를 펼치면 잠들 때까지 그 안에서 들어가서 시위를 했고, 마루는 돌아올 때는 항상 먼저 뛰어와서 나를 반겼지만, 캐리어를 들고나갈 때는 배웅하지 않았다. 그때는 잘 쓰지도 않는 개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집까지 찾아가서 깊숙이 들어앉은 마루에게 가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도 이별을 안다. 평소와 다른 행동들은 쉽게 알아채고, 몰라서 그렇지 생각보다 많은 단어를 알아듣는지도 모른다.
내가 떠난 뒤에도 마루는 혼자 좁은 옥상 계단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아 있었다고 했다. 강아지는 기억도 하고, 추억도 한다. 마지막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 마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락다운된 도시에서 겨우 항공편을 구해 돌아왔지만, 버스 정류장에도, 옥상 계단 끝에서 내려다보는 마루도 이젠 없었다.
다시 만날 곳을 정해둬서 다행이다.
기다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