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고슴도치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까끌까끌한 것에 몸을 비비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고슴도치를 따라다니며 몸을 비비는 고양이 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있다.
고슴도치와 고양이
양갱이와 우리 가족은 천생연분이었다. 우리는 고슴도치 같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20살이 되기도 전에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했는데, 그 짧은 시절동안 우리 가족은 매우 유기적으로 서로에게 생체기를 내고 타박했다. 서로 살갑지도 않고, 큰 문제가 있지도 않은 평범하게 불행한 가족이었다. 서로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가까이 가면 찔릴 줄 알기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법을 익혔다.
나 때문에 예정에도 없이 고양이 양갱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덕분에 대화도 늘고, 가끔 웃기도 했을 것이다. 양갱이는 우리 가족 사이에서 가장 보드라운 존재였다. 가시에 생채기가 나지도 않고, 가까이 가도 누구도 찌르지 않았다. 계속 만져도 더 만지고 싶은 보드라운 온기를 가운데서 나눠줬다.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상처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양갱이 덕분에 처음 알았다.
동물은 아무도 혼내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른이 돼서 처음으로 다시 함께 살게 된 제주도에서는 처음부터 양갱이와 마루와 함께였다. 아기 강아지였던 마루는 하루에도 몇 가지씩 사고를 쳤고, 우리는 아이디어를 짜내서 함께 해결해야 했다. 마루와 양갱이는 우리에게 함께하는 훈련을 시켰다.
사람사이는 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기가 힘들다. 그러나 마루와 양갱이는 대문을 한번 나섰다 돌아올 때마다 더 축축하게 더 보드랍게 반겨주었다. 온 세상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다.
이유 없이 그리운 것
나는 진짜 가족의 의미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가끔 보는 서먹한 사이의 사람들이며, 엄마는 부모형제도 다 필요 없다고 항상 말했지만, 그래도 적과 대항할 최후의 보루, 우리 편이었다.
그러니까 가족은 사랑이었다.
서로 걱정하거나 안부는 전했지만, 빨리 돌아가서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돌아갈 곳이니까 돌아갔고, 별일이 없으면 안 봐도 됐다. 마루랑 양갱이와 함께 살게 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고, 이유가 없어도 보러 갔다. 가족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고 이유 없이도 함께하는 사이인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보드라운 온기는 딱히 중요하지는 않지만, 만지고 있으면 끝없이 평화로워지는 이유 없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동물을 가족처럼 대한다는 말은 동물을 키워보기 전에는 헷갈렸다. 동물을 사람처럼 비싸게 입히고 먹이라는 말로 들려서 거북하기도 했다. 이제는 가족의 의미를 마루와 양갱이 덕분에 이해하게 되었다. 가족 같은 동물이 힘들어도 왜 노숙자 주인과 함께 사는 것이 나은지, 동물을 키울 여건이 안되는데도 가진 것을 다 털어서 동물과 함께 사는 불합리한 선택을 이해했다.
함께하는데 이유나 필요가 필요 없는 것이 가족이었다. 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처음으로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