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털집
골든리트리버는 털이 풍성한 개다. 일 년 내내 털이 빠진다. 마당에는 뭉쳐진 털뭉치가 항상 굴러다니고, 바람 부는 날에는 우리 집 주위로 하늘하늘 털이 떠올라 하늘로 올라간다. 본격적으로 털갈이를 하는 시즌에는 잔디 위에 마치 거미줄이라도 친 듯 얇게 털이 코팅되어 있고, 사막에 굴러다니는 덤블처럼 동그란 털뭉치가 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이런 사정이 동네 새들에게 소문이 났는지 우리 집마당은 온갖 새들이 몰려들었다. 평소에 좀처럼 보기 힘든 종의 새들도 잠시 몰려와서 털뭉치를 주워갔다. 가끔 날이 좋아서 새들의 활동이 왕성한 날에는 마당의 털들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을 정도로 새들은 마루 털은 새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앉아서 카메라를 들고 어떤 새들이 털을 훔쳐가는지 몰래 찍으면서 감상했다. 동박새, 직박구리 참새, 박새 같이 주변에 흔한 새들뿐이었지만, 그전에는 나는 절대 이 새들의 이름을 몰랐다.
새들 덕분에 우리는 젖어서 더러워져버린 털뭉치 만 치우면 됐다. 새들은 깔끔해서, 더러워진 털은 절대 주워가지 않는다.
새들은 마루 털뿐 아니라, 사료와 물도 노렸다. 마루 덕분에 우리 집에는 언제 와도 사료와 물이 있다는 것을 새들도 알았다. 나중에는 간이 커져서 마루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물도 먹고, 사료도 먹고 사료통에 똥도 싸놓고 갔다. 그래도 마루는 새들을 쫒거나 위협적으로 굴지 않아서 새똥 치우는 일은 우리 일이 되었고, 똥 묻은 사료는 밭에 사는 참새들 차지가 되었다. 새들과 마루가 말이 통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 대충 해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았던 것 같다. 새는 자주 들락거렸지만, 마루가 애타게 사냥하고 싶어 하던 고양이는 절대 오지 않았으니까.
털뭉치를 새들에게 헌납하는 것 외에도 새들과의 추억은 종종 생겼다. 지붕 틈에 살던 참새 새끼가 떨어지면 짖어서 알려주기도 하고, 얄미운 까마귀가 가까이 와서 놀리기도 했다. 까마귀는 얄밉게 왔다 갔다 하면서 ‘깍깍 ’거리면, 마루는 뭐가 그렇게 약이 오르는지 까마귀한테만은 미친 듯이 짖어 댔다. 까마귀는 심심하면 와서 마루를 놀렸다. 그런 것을 보면 마루와 새들은 말이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 통하는 것 같았다.
새들의 소문
새들이 항상 만만하게 생각했던 마루가 사라진 것은 금방 소문이 났다. 봄마다 찾아오던 동박새도, 신기한 종류의 새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루를 놀리던 까마귀도 항상 앉아서 내려다 보는 전봇대가 있는데, 마루가 있을 때처럼 ‘깍깍’ 시끄럽게 울지 않고 그냥 조용히 앉아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우리집 지붕 아래는 이전과 다르게 봄가을 마다 참새 똥 범벅이 되었다.
우리집 지붕 아래에는 참새가 거의 100마리쯤 살고 있는데, 마루 밥과 물을 그렇게 먹으면서도 새끼를 키울 때 똥을 멀리 물어다 버렸었던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 마루가 없으니 새끼들의 똥을 그냥 바닥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순해도 새끼들을 위협할지 몰라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었다.. 마루는 도둑한테는 집을 못 지켜도 새똥으로부터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새들은 겨울을 나면서 따뜻한 마루의 온기를 그리워 했을테고, 나는 봄마다 새똥을 치우면서 마루가 그립다.
”뒤늦게알게되는 것들이 있지.
그리움은 뒤늦게 이해하는 사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