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들
마루에게는 새들 말고 진짜 강아지 친구들도 있었다. 제주에는 한동안 주인없는 개들이 많았다. 제주는 개를 키워도 잘 묶어놓지 않는 집도 많았고, 묶어놔도 개 무리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놀자고 꼬시면 쉽게 집을 나갔다.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마당에 드러누워서 며칠이고 버티면 결국 집주인이 밥을 준다. 그러면 그 집개로 살기도 하고, 맘 바뀌면 떠나기도 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제주도는 강아지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지만, 2010년만 해도 작은 동네였던 우리 마을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육지사람은 아프거나, 돈이 많거나, 개 키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제주도에서 애완동물은 양식장이나 외딴 창고를 지키는 개가 대부분이었다.
강아지 친구들
우리 마루는 젤로가 있었지만 너무 작은 젤로는 항상 조심스럽고, 까칠하게 혼내도 져줘야 하는 동생같은 언니였다. 친구랑은 엄연하게 다르다. 마루에게 친구가 되어 준 것이 길에서 사는 강아지들이었다. 얘네들은 아침저녁으로 무리 지어 산책을 다녔는데, 개가 있는 집마다 들어가서 인사하고, 담 사이에서 우리 마루도 구경하다가 갔다. 저녁때 강아지들 무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부리나케 마루를 데리고 나가서 친구들과 놀게 해 줬다. 덩치 큰 마루를 처음에는 경계하더니 이내 동네 친구들이 됐다.
이 개들 무리에는 아침저녁에만 따라다니는 집 있는 개들도 있고, 길거리 생활이 한참 된 강아지들도 있었다. 웃긴 건, 인간들과 사는 노하우를 서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때는 개들이 횡단보도에서 파란불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는 광경을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개들의 유전자에도 유행이 있었다. 한참 유행했던 허스키 머리에 숏다리 강아지가 동네에 넘쳐나더니, 다음에는 삽살개처럼 덥수룩한 털의 강아지들로 평정되다가 마치 유행 따라 어디서 머리라도 하고 다니는 것처럼 비슷한 외모의 강아지들이 동네를 휩쓸고 다녔다. 해질녘마다 오늘은 어떤 멤버들이 놀러오려나 기대하면서 마루와 함께 기다렸다.
몇 년뒤 제주도 개 트럭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불법으로 포획한 개들을 육지로 팔러 가는 트럭이 크게 이슈가 되었고, 몇 년 뒤에는 중산간 들개무리가 너무 커져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제주도는 원래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개를 등록하고 인식칩을 심어주는 사업을 매년 시행해왔다. 동물병원이 부족한 제주에서 광견병 주사도 맞히고, 유기견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유기동물을 대청소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
사람의 힘은 놀라웠다. 사업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돌아다니는 강아지 무리들이 전멸하다시피 사라졌고, 그나마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중성화의 표시로 귀가 잘려 있었다. 마루도 이제는 없지만, 친구들도 이제 없다.
강아지와 고양이만 인간의 친구라고 불쌍히 여기는 것도 문제다. 우리 양갱이만해도 쥐 나 새들을 가끔 선물로 잡아왔는데, 제주도 고양이들은 안 그래도 개체수가 적은 새들을 재미 삼아 사냥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가지고 놀다가 활력이 사라지면 버려둔다. 물론 제주도의 자연환경의 특성상 개와 고양이들이 쉽게 야생성을 찾고 공격성을 가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밤에 사나운 개를 만나면 내가 제일 먼저 화를 내고 민원을 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굴 골라서 누구로부터 지켜야 할까? 길에서 사는 개들과 고양이, 캣맘과 야생동물 사이에 답을 우리는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를 또 하나 발견했다
”우리의 운명을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