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
길고 날카로운 이명이 반복되다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명 뒤로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가 가끔 들리다가 사라졌다. 그러면, 삐—-- 하는 이명이 더 깊고 커졌다. 오늘따라 빌라 복도에서 들리던 사람이 드나드는 소리도 없다. 어떤 소리도 없는 텅 빈 공간에 홀로 있었다.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하던 어떤 마음의 소리도 없이 높고 날카로운 소리만이 남았다.
이명을 들을 정도로 정적 속에 남겨질 것을 어머니는 알았을까. 모르셨을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에도 못 오게 하셨을 테지. 한동안 소파에 기대 바닥에 반쯤 누워서 찌르는 듯한 이명을 듣고만 있었다. 할 일도 갈 곳도 없다. 어머니가 뿌려진 아버지 무덤에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힘들게 시내버스를 타고 뒤늦게 혼자 온 아들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화해도 못 했다. 도서관에도 갈 수 없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지금 기대어 있는 이 소파조차도 얌전히 사용해야 할 남의 것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짐을 정리해서 더 휑해진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불편한 어머니와의 동거가 두려워 알리기를 차일피일 미뤘는데, 차라리 어머니 집에 들어가겠다고 일찍 전화라도 했다면, 화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원망해야 할지 나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어머니는 한순간도 나를 믿은 적이 없을까? 여동생은 순진하던 어릴 때조차 단 한 번도 내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고 믿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도 그랬을까? 나는 그저 어느 집안에나 있는 다 알지만 쉬쉬하는 비밀이었을까?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아들이 미쳐 날뛰는 꼴을 보기 싫었던 것일까? 그냥 잘난 아들이 아니면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평소 하던 대로 어머니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 것일까?
지금 내 생각들은 원망일까? 슬픔일까? 좌절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텅 빈 집을 보고,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 이명을 듣다가 견딜 수가 없어져,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 한 번도 마시지 않았던 술을 사러 갔다.
편의점까지 가는 길은 비 온 뒤 공기를 가득 채운 밀도 있는 햇빛으로 달궈져 눈이 부시고 뜨거웠다. 한여름 매미는 이명을 대신하는 듯 반복해서 맹렬하게 울고 있었고, 거리에는 몇 사람 지나다니지도 않는데, 더위에 지쳐 짜증이 난 사람들의 맹렬한 마음의 소리로 시끄러웠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몸을 무기력하게 움직여서 몸에서 살짝 어긋나서 반쯤 빠져나가려는 정신을 부여잡고, 빌라에서 잽싸게 쥐새끼처럼 기어나가서 더 커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에 대답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간신히 소주 몇 병을 사서 돌아왔다.
삐이---이
하는 이명만 남은 집으로 돌아와서 바닥에 투명한 소주를 한잔 따라서 내려놓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술을 사랑하는지 알겠다. 가슴에 먹먹한 그것이 뜨겁게 올라오기 전에, 딱딱하게 굳어져 체하기 전에, 이 투명하고 찌르르한 소주가 내려가면서 녹이고 식히는 것이다. 맹렬한 화나 슬픔 때문에 무기력해져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몸에 갇혀버린 정신도 술이 녹여준다.
소주 몇 잔을 비우자 심장이 다시 박동하는 것이 느껴지고, 몸 구석구석 알코올이 전달되면서 반쯤 나갔던 정신이 손끝과 발끝까지 퍼진 알코올의 열을 느끼면서 마침내 몸의 감각을 다시 찾고, 살아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기억하게 된다.
어제 전화를 받은 이후로 감각을 잃고 무기력하던 몸에 찌르르하게 소주가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지며 이명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정신을 붙잡아 오려고 마시는 것이고, 살아있음을 기억하려고 마시는 것이었다. 슬픔 대신 혈관을 찌르르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마 술뿐일 것이다.
술은 집안을 가득 채운 이명도 거둬들여서, 마침내 평화로운 고요 속에 있게 해주었다.
술은 삶의 감각을 돌려주고, 불필요한 것들은 희미하게 만들고, 중요한 것들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말하고 또 말하게 된다. 잊어야 할 것은 잊어지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고, 미워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사랑이 기억난다.
술김에 전화기를 들어서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오랜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가닥 남은 거미줄에 대롱대롱 위태롭게 달려서 버티는 것이 지쳐서, 다시 튼튼한 가지를 찾아서 집을 지으려는 희망으로 어딘가와 연결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박경민입니다.”
“나야. 잘 지내냐?”
“야~ 이 자식 전화할 때는 안 받더니 웬일이냐? 무슨 일이야.? 급해?”
“아니, 그냥”
“무슨 일 있는 거는 아니지?”
“어. 별일 없어.”
“알았어. 진짜 별일 없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
“알았어,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이 새끼 수상한데, 이따 퇴근하고 전화할게. 전화 받아, 임마! 니가 먼저 전화해 놓고 전화 안 받지 말고!”
“알았어.”
“그래 끊는다.”
전화를 끊고는 마치 친구와 전화라도 하는 듯이, 술잔을 비우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별일…. 있지. ”
살아있는 감각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연거푸 술잔을 비우다가 잠이 들었다. 저녁 무렵 일어나 어지러워진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경민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다. 무슨 일인데? 뭐 하고 지내길래 연락 한 번이 없어?”
“너도 잘 지내지?”
“나야 잘 지내지. 너 무슨 일 있지? 이 자식 무슨 일 있으니까 전화한 건데... 맞지? 무슨 일인데? 무서우니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멍해서 말할 사람이 필요하더라고.”
“그래, 무슨 일이 있는 줄은 알았다만, 아니 어쩌다가……. 그럼 내일 바로 갈게, 아까 낮에 이야기했으면….”
서둘러 경민이의 말을 잘랐다.
“아니야. 장례식도 다 마쳤어, 고맙다.”
“아니, 이 새끼 웃기는 놈이네, 아니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해.”
“가족끼리 조용히 치렀어.”
차마 어머니 장례식에 망자 본인의 뜻으로 초대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례는 언제 끝났는데?”
“엊그제”
“고생했다. 나한테 전화한 거 보니 진짜 힘들었나 보네. 괜찮냐?”
“어. 모르겠어, 아직 그냥 멍해.”
“그래서 넌 어딘데 한번 보자.”
“성산에 있어, 아직은 정리할 것도 있고,”
“아~~ 이 새끼! 지가 먼저 전화해 놓고, 또 안 본다고 하네, 알았어, 그 회사 때문에 성산 내려가 있는 거지 회사 일은 잘되고?”
“한참 전에 그만뒀어.”
“그럼, 왜 아직까지 성산에 있는데? 다른 일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쉬고 있어.”
“뭔데? 이 자식 수상한데, 안 괜찮은데, 이거….”
“괜찮아.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멍해서 그냥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서 전화한 거야. 별일 없어.”
“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어쩌다 돌아가셨는데?”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혼자 계신 바람에 병원으로 옮기는 시간이 늦어져서 손도 못 써보고 돌아가셔서 그런가. 답답하네.”
“아니~ 너는, 잘 나간다고 건방 떨지 말고, 나처럼 결혼해서 어머니랑 가까이 살면서 건강관리라도 좀 잘해드리지 그랬냐! 너희 어머니가 잘난 아들 뒀다고 얼마나 자랑하셨는데, 잘난 아들 두면 뭐해, 제대로 치료도 못 해보고 돌아가시고, 갑자기 경황이 없기는 없겠다.”
“뭐, 그렇지.”
“우리 아버지도 풍이 올 뻔했는데, 우리 와이프가 빡빡 우겨가지고 비싼 건강검진, 있잖아. 그거는 병원에서 며칠 자야 하더라고, 그거 받다가 큰일 날뻔했다고 하면서, 의사가 일찍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하더라, 우리 아버지가 그때부터 와이프 업고 다니라고…….”
경민이가 이럴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하고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녀석은 모처럼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위로인지 타박인지 모를 제 가족의 건강 자랑을 한동안 늘어놓았다. 친구의 자랑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집을 정리하다 한쪽에 잊고 있었던, 고급 위스키를 땄다. 타는 듯한 위스키를 털어 넣었는데도, 친구를 향해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냐, 차라리 욕을 해 이 자식아.’
이렇게 진심을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았어, 너는 잘사는 것 같네.”
“나도 이제 집 정리 좀 해야겠다. 들어가라.”
“왜 내가 성산으로 언제 한 번 갈까?”
“아니, 여기 곧 정리할 거야. 나중에 연락할게.”
“알았어, 걱정 안 해도 되지? 힘들면 연락하고.”
“알았어.”
대답하면서 위스키를 다시 스트레이트로 털어 넣었다.
“나중에 연락할게.”
“연락해라. 알았어. 끊는다.”
삐-------------
전화를 끊자마자 잠들기 전보다 더 크게 이명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사이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 믿어주지 않을 것을 염려한 것일까 왠지 경민이에게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을 털어놓지 못했다. 나는 어릴 때 잘한다는 말만 듣고 자라서 기고만장한 철부지였지만, 경민이는 천성이 착하고 사려 깊게 타고났다.
그런데, 그놈의 공부, 집, 차 같은 것 때문에 어쩐지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치 형제들이 경쟁하듯이 어느 순간부터 경민이는 세상 말고 나와 경쟁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배배 꼬여서 가끔 고향에서 명절 때 만나는 그 잠깐 사이에도 유독 내 앞에서는 잘난 체를 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것을, 아이와 행복한 가정을 자랑했다. 그에게는 내가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였겠지, 왜 세상에 함께 맞서 싸우기도 힘든데, 알량한 자존심으로 우리끼리 비교하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나는 또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그래도, 부고 앞에서 위로해줄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건방 떨지 말고 건강관리나 잘해드렸어야 한다니…. 단돈 몇십만 원이 아까워 부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다니, 먹먹했던 가슴이 이제는 쓰려온다. 경민이 잘못만은 아니겠지, 우리가 같이 변한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잘못을 해야 모은 돈을 모두 잃고, 살던 집에 돈을 다 내고도 쫓겨나고, 직장도 잃고, 삐----------------- 어머니에게 장례식에서 초대받지 못하고, 삐이---------- 부고를 알렸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욕보일 만큼 잘못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삐---------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때문인 걸까? 어머니 말처럼 그저 미쳐서 환청을 듣기 때문인 걸까?
삐------------------
삐삐------------------------------------
삐------------------
삐-------------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명이 커져서, 연신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소주가 이명을 사라지게 해준 것처럼 이 날카로운 이명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연거푸 위스키를 마셨다.
이명이 사라지면서 술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오직 세상에 나만 아는 비밀, 마음의 소리를 듣는자. 나는 어머니 말처럼 정말 환청을 듣는 것이 맞다. 세상에 나만 가진 능력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친 것일 수도 있고, 미친것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주변 사람이 모두 등을 돌리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나다. 친구도, 가족도 회사도 나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모든 것을 설명이 가능하게 만들려면, 나만 무너져내리면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 미친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만 다른 이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능력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라는 것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사실이라는 말인가. 미친것이라면, 평생 동안 가족과 친구,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비밀을 가진 단 한 사람이 바로 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사업도 해보고, 일용직도 나가보고,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쓰디쓴 실패를 맛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는 괜찮다. 실패에서는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그저 이제 나는, 돈도 떨어지고, 아무 연고도 없는, 그냥 미친 딱한 사람일 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 어디와도 연결되지 않은 가장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버텨야 할 이유가 남지 않았다. 나와 연결된 세상도 더 이상 없었다.
영원히 차갑게
술김에 아이스크림 체험하던 날이 떠올랐다. 차갑고 위험했으나 행복한 기체, 질소가 떠올랐다. 인터넷으로 액화 질소를 검색해서 샀다. 어머니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아직도 계좌이체가 될지 조마조마했는데, 장례식에 오는 것은 반대하셨지만, 액화 질소 구입은 반대하지 않으시는지 다행히 결제가 됐다. 동생이 사망 신고를 하면 곧 이 계좌도 쓸 수 없게 될 것이 뻔하다. 위스키를 부어 넣어서 외로움과 원망, 자책으로 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차갑게 식혀 줄 질소가 절실히 필요했다.
다음날 오후까지 자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배달이요! 액화 질소 배달입니다.”
“네 질소요? 아! 네,네. 맞습니다. 금방 오네요.”
“여기서 별로 안 멀어요.”
“감사합니다.”
‘집에서 액화 질소 주문하는 사람은 또 첨보네.’
배달원이 돌아가면서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지난밤 질소를 주문했던 것이 기억났다. 질소는 20L라서 꽤나 묵직했다. 얼떨결에 현관에 질소통을 들여다 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질소통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는데도 현관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은 전 재산을 털어 산 것이었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질소를 살 돈도 모자랄뻔했다.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시간도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마치 운명이 길을 알려주듯이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강사랑의 말처럼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개미나 모기처럼 애초에 삶에는 목적 따위는 없는지도 모른다. 모기는 귓전에서 윙윙거리다가 방심한 사이에 배부른 채로 터져 죽는다. 모기를 죽이고 하나의 생명을 꺼지게 한 것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 곳에도 연결되지 않은 삶은 그런 것이고, 개미나 모기처럼 목적도 없이 주어진 임무를 하다가 우연처럼 운명을 다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던가. 무엇이 행복하고 무엇이 슬펐던가, 그것이 의미가 있던가, 오로지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삶, 심지어 어머니와 동생의 기억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친 사람의 삶, 그것이 나의 임무였던가. 이제 나만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란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비밀을 가진 사람은 존재했던 흔적마저 사라져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어머니 말처럼 큰 욕심을 낸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 말처럼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분노해야 하는지 무엇에 행복해야 하는지 모르고 다른 이들에게 내 감정을 묻거나 다른 이들의 마음을 복제하면서 어떻게 살아하는지를 모르고 살았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어떻게 나를 증명한다는 것인지, 이제야 문제가 보인다. 처음부터 남들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적 있던가. 나로 살아온 날들이 있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열심히 응했으나, 나의 소리에 응답한 적이 있던가, 애초에 방법을 몰랐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쓰던 책은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몰라도 그날 밤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아무 대화 상대도 없기 때문인지, 글이 아니면 고백할 수 없는 비밀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써야만, 이 허무한 실패를 의미 있게 만들 것이라는 주입된 강박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글 안에서 마침내 나와 대면했다. 나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대화한 적이 있었던가, 평생을 사는 그 긴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나를 스스로 무시할 것이라면 나는 왜 나로 살았는가. 글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그 오랜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만날 수 없었던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였다.
애타게 구원자를 찾았고, 구원이 없으면 성공을, 성공이 없으면 돈을, 돈이 없으면 어디 기댈 애정이라도 찾았건만, 구원은 스스로에게 있었다. 글 안에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다 담은 낙원을 만들고, 나조차 듣기 싫어서 혼자 있을 때조차 하기 싫은 말도 시원하게 쏟아냈다. 글 안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복수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내 영혼과 내가 맡아본 가장 맛있는 음식 냄새와 내가 사랑하는 사소한 모든 것도 담았다. 마치 마지막 순간에 말끔히 집을 정리하듯이 삶을 정리할 방법이 있다면 글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반드시 책을 끝내야겠다.
지난 나흘 동안,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이제는 다시 사용할 일이 없을, 열정을 다 담아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구원한 원고를 마무리했다. 잠시, 남겨질 이들에게 편지를 남길까 고민했지만, 반길만한 사람도 없었고, 남길 사람도 없다. 책 뒤에 간단히 적은 맺음말이면 족하다. 한미숙 작가의 독촉으로 표지를 미리 만들어 둔 것이 다행이었다. 덕분에 지난 밤, 밤새워 책을 등록할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한미숙 작가에게 메일로 등록된 책 사진과 링크도 보내 두었다. 내 책을 한번 만져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서점에 수많은 책 사이에 내가 만든 세상도 마침내 진열되었다.
내 소설의 주인공은 나와 달리 친구들과 마음을 듣는 능력을 공유했고, 운 좋게도 세상과 공유할 기회도 얻었다. 마음을 듣는 능력을 백분 활용해서 마음을 들어주는 심리 상담사로 평생을 일했다. 가장 외로운 이, 곤경에 처한 사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이해해주고, 마음을 듣는 능력으로 세상을 바꿔 간다.
내가 만들어준,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주인공에게 세상도 응답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친구이자, 이웃으로 항상 함께 해주었다. 주인공은 심리상담의 경험을 책으로 쓰기로 결심하고, 세상의 모든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심심하게 끝이 난다.
[생각을 읽는 상담사], 그다지 잘 쓴 것 같지는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어설픈 첫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알게 됐다. 글을 쓰는 것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내 심장을 찾아오는 일이었다. 운명이 나를 절벽 위에 세워 교훈을 주려고 했다면, 글을 쓰는 것은 잃어버린 내 심장과 영혼을 다시 찾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무엇이 슬픈지, 기쁜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껍데기뿐이던 내 육신에 비로소 심장을 제자리에 찾아 넣고, 뜨거운 피로 가득 채웠다.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신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이었다. 나를 구원하는 것도 글이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으로 다시 살면서 겨우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을 담아서 영원하게 만들었으며, 기억하지 못하던 순간까지 꺼내서 글에 담았고, 마지막에는 내 영혼을 덜어 글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보는 것같이 시원해졌다.
책을 완성해서 뿌듯한 마음을 덮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 집에서 나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현관에 며칠째 서 있는 액화 질소도 보였다.
책 등록을 마치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정오 무렵이 된 것도 몰랐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쓰는 내내 1/3쯤 식탁 위에 남아있던 위스키를 한 잔 들이켜고, 마지막으로 집을 정리했다. 이미 몇 차례나 정리했던 집이라서 사소한 쓰레기 말고는 정리할 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완전히 비우고, 쓰레기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처리하려고 가지고 나왔다.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이사가고 몇 남지 않은 다른 주민과 마주쳤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젊은 회사원이었는데, 처음부터 똑똑하게 잘 대처해서 이미 이사를 나간 줄로만 알았다. 뭔가 말을 건네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황급히 지나가는 바람에 소리 내서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이사 준비하느라 바빠죽겠네, 그나저나 나는 보험이라도 받았는데, 저 아저씨는 보험도 안 들었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사 준비하는 건가?’
내게 건네려던 말을 들었는데, 방법을 찾았다니 다행이었다. 다들 그렇게 위기를 넘기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한낮의 햇빛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어올 때도 신축이었던 집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처음 계약할 때처럼 세련된 취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삐이--------- 하는 이명만 없었더라면, 처음 이 집에 들어오던 날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식탁 위에 마지막 남은 위스키 한 병을 꺼내 놓고, 그 옆에 작성한 원고를 가지런히 내려두었다. 마지막으로 집안 곳곳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위스키병과 잔을 하나 들고 질소통을 가져다 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의 틈을 막고 액화 질소를 구석구석 나눠 뿌리고, 세면대에도 가득 부어주고, 나머지는 바닥에 전부 쏟아부었다. 질소 연기로 좁은 화장실이 차가워지면서 질소 연기가 바닥부터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챙겨서 욕조에 누웠다. 팔아서 얼마라도 생활비에 보태려던 마지막 위스키가 책 등록 기념 축배가 되었다. 하얀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혼자 드는 축배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마침내, 목적이 없는 삶의 이유를 찾았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찮은 개미들이 그저 살아가는 것처럼, 남들 사는 것처럼 그냥 살아갈 수도 있었다. 글이 아니었다면, 몰라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목적지, 헤매다 소멸했을지 모르는 여정에서 길을 찾았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항해가 멈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항해가 조금 빨리 끝난 것뿐이다. 험난한 여정의 끝에 무사히 돌아와 축배를 드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나는 축배를 든다.
이내 하얀 연기는 조금씩 차올라서 욕조 안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면서 넘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기로 가득 찬 욕조에 누워 마시는 위스키는 환상적이었다. 차가워진 공기 덕분에 차가워진 위스키는 더 뜨겁고, 더 찌르르하게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하얀 연기가 욕조안으로 넘치기 시작하면서 내 몸도 기체 사이로 녹아들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흰 기체가 가득한 욕실은 구름 안에 누워있는 듯 아름답기까지 했다.
글을 쓰게 된 덕분에 누군가 내 마음에 들어줄 것을 생각하니, 마음조차 홀가분해 지면서, 둥둥 떠오를 수 있도록 차가워지고 있었다. 연기는 이제 어깨까지 차올라서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연기로 장난을 좀 하다 보니, 이내 차갑고 기분 좋은 하얀 기체가 천장까지 가득 찼다.
마지막 위스키를 보기 위해서는 헤엄치듯 연기를 좀 걷어내고, 코앞에까지 잔을 가져와야 했다. 차가운 기운이 상쾌해서, 구름 위에 둥둥 떠 오른 것 같았다. 연기를 헤치고 들여다본 컵 안에는 위스키와 섞여 신비해보였다. 위스키로 마지막 숨을 데워 가득 찬 연기 사이로 후~~ 불어 넣는 장난을 쳤다. 연기가 살짝 걷히는 듯하다가, 그만 나 자신이 달콤 쌉쌀한 향만 남은 하얀 연기가 되었다.
욕조 한켠에 세워두었던 위스키는 바닥부터 차갑게 굳으면서 얼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듣다
각인된 만년필 - 10번째 수업
어김없이 목요일이 돌아와서 다시 책 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이제 날씨가 너무 덥죠? 이렇게 더운데도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처음으로 책을 등록한 작가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제 기억에는 다음 주부터 안 오신다고 하는것 같았는데, 이번 주에도 안 오셨네요. 혹시 다른 분들 이야기 못 들으셨나요?”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던데, 별말씀은 없으셨어요.”
강사랑이 대답했다.
“그런가요? 어쨌거나 조금 일찍 책을 완성하기로 저랑 약속하셨었는데, 책을 완성하셨다고 메일을 보내주셨더라고요. 제목은 [마음을 읽는 상담사]라고 하고요. 소설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재밌겠죠? 오늘은 안 계시지만 출간 축하드립니다.”
한미숙 작가가 가볍게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면서 함께 박수를 쳤다. 부러움과 응원이 섞인 진심 어린 동료애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다른 분들도 궁금하시면 부크크 서점에 등록되어 있으니까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사셔도 되고요. 부러우니까 저희도 빨리 마무리해서 책 등록하도록 하죠”
“먼저 표지 마무리하실 때는….”
책을 완성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질문도 많고, 수업도 길어지고 있었다.
책 등록을 하는 마지막 주가 되자, 원래 도서관으로 자주 글을 쓰러 왔던 이순자 아주머니와 이명수 강사랑 외에도 다른 수강생들도 매일같이 도서관에 나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책을 등록했다니까 다행인데, 왜 말도 없이 안 나온대요? 사랑씨는 연락돼요? 같이 모여서 책도 쓰고 기사도 쓰고 하면서 정들었는데, 갑자기 안 보이니까 걱정되네.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카톡 보내봤는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원래도 카톡 잘 안 보시는 것 같기는 했는데, 아예 답을 하신 적은 없어서 걱정되더라고요. 그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했으니까 경황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연락 오면 말씀드릴게요. 다들 걱정하고 계시다고요.”
몇차례 책만 완성해두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작가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다들 일상과 책 쓰기를 병행하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순자 아주머니는 장마가 끝날 무렵 비 온 뒤 무성하게 자란 잡초제거며, 약치기, 가지치기 등 농사일이 다시 쉴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함께 책도 쓰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더 이상은 혼자 밥 먹으면서 눈물을 훔치는 일도 적어졌다. 이명수는 아이들과 더 자주 도서관으로 저녁 산책을 왔고, 강사랑은 출판사와 계약 후 여러 차례 교정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8월에 마지막 주에 끝까지 책을 완성한 사람 열 명 정도가 모여서 책을 등록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2주 후에 뒤풀이 모임을 가질까 해요. 이 책 쓰기 과정을 마치면, 개인별로 책을 구매해서 드리기로 했잖아요. 배정된 예산으로 구매하는거라서 직접 오셔서 받아가셔야 합니다. 오늘 책을 등록했으니까 바로 주문해도 받는 시간이 있으니까 2주 후에 다시 만나서 간단히 책을 낸 후기 이야기도 하면서 뒤풀이 모임을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이때 못 오시는 분들은 이후에 사무실에 들러서 책 받아가시면 됩니다. 3달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책을 등록한 사람들 마음에 뜨거운 감동 같은 것이 올라오는 듯했지만, 한미숙 작가답게 뜻뜨미지근하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아쉬운 듯이 마지막 시간을 마쳤다. 다른 날과 같이 서먹하지만, 조금 긴, “고생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전하면서 이제 막 작가가 되어 가슴이 벅찬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어두워진 도서관 주차장을 나가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덧 9월이 되어 선선해진 오후에 도서관 직원들은 세미나실 책상을 가운데에 길게 배치하고, 배송받은 책들과 준비한 선물들을 각자의 자리에 배치하고 있었다. 도서관 로비에는 작가들이 쓴 책을 열권 남짓 「90일 작가 되기」플랜카드와 함께 전시 해두었다.
이명수가 쓴 동화책 [무지개 안경], 이순자 아주머니가 쓴 [아버지, 막내딸이에요.]가 진열되어 있었고, 강사랑의 책, [반려견 통역사, 강사랑입니다.]도 그 사이 출간해서 같이 전시되고 있었다. [마음을 읽는 상담사]도 그 옆에 자리를 차지했다. 한미숙 작가도 여느 때 보다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완성된 책들을 보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미숙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저는 시청에서 시민기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주무관입니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신 분 중에 시민기자 활동을 함께 하신 분이 계세요, 저희도 어쩌다 알게 되었는데요….”
한미숙 작가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황급히 둘은 도서관 밖으로 나가 입구에 서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들뜬 마음으로 이제 막 책을 낸 작가들이 속속 도착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시된 책을 펴보기도 하다가 마지막 시간이 시작되었다. 책을 낸 소감을 나누고, 박수도 이어졌다. 도서관에서 선물로 준비한 각자의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 선물을 건네주면서 축하도 이어졌다.
“다들 고생하셨고요,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미숙 작가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마음을 읽는 상담사]를 쓴 작가님이 사망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떻게 전해드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껏 들떠있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다들 충격을 받은 채로 위로를 건네기도, 고인의 명복을 빌기도 하다가 하나둘 돌아갔다.
한미숙 작가는 마지막까지 남아 이순자 아주머니와 이명수 강사랑과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마음을 읽는 상담사] 앞에 그의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을 두고 갔다. 전시가 끝나는 주에 한미숙 작가가 도서관으로 돌아와 가지고 있던 [마음을 읽는 상담사] 책 다섯 권을 도서관 열람실 서가로 들고 가서, 눈에 잘 띌 만한 여러 섹션에 나눠 꽂아 두고, 마지막 한 권은 신간 코너에 꽂아 두고 나왔다.
아직까지 도서관 로비에 전시되고 있던 작가들의 책을 찬찬히 한 권씩 둘러본 다음 [마음을 읽는 상담사]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책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마음을 듣는 것 같았어요’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나서, 여전히 놓여 있던 작가의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을 들고 돌아갔다.
에필로그
[반려견 통역사, 강사랑입니다.]라는 책이 출판사를 통해서 나왔다. 책을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출간하고도 여전히 조바심이 났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어서, 출간된 책을 직접 사들고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찾아다녔다. 책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기로 했다.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책을 드리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여성 훈련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의 작가입니다. 강사랑 훈련사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개는 훌륭하다」 프로그램 알고 계신가요?”
“그럼요. 잘 알죠.”
“훈련사님을 저희 프로그램에 섭외하고 싶어서요. 훈련사님이 쓰신 책이랑 출연하신 유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여자 훈련사님과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려고 준비 중인데요. 분리불안이 있는 강아지나, 문제행동 교정 프로그램을 훈련사님과 2회분 정도 촬영하고 싶어서요.”
“정말요? 저는 너무 좋죠.”
“그러면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전달드리고, 사전 미팅 일자는요…….”
정신이 아득해 지면서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꿈꾸던 일이 일어났다. 책을 다시 쓰라면, 글쎄..... 적성에 맞는 일은 아지니만, 강아지 훈련이라면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
방송사 쪽에서는 여성 훈련사라서 소형견이나 문제 행동이 심하지 않은 경우를 준비해 줬지만, 스무 살부터 강아지 외에 기댈 곳이 없던 나는, 사람보다 강아지가 편하고 잘 통한다. 준비된 두 편이 방송되고 좋은 반응을 얻자, 내가 먼저 대형견이나 공격성을 가진 문제견을 교정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어서 책 제목처럼 반려견 통역사를 자청했다. 이제 상담이 예약이 몇 년이나 밀려 있고, 다른 방송 프로그램도 여러 개 출연하게 됐다.
가끔 외국책을 베껴 쓴 것이 들킬까 두려운 생각이 들다가, 책을 쓰던 절박했던 시기에 성산시의 작은 도서관과 그때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기도 한다. 근처에 촬영하러 가서 만난 이순자 아주머니는 [아버지, 막내딸이에요.]라는 직접 쓴 책을 들고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셨다고 왈칵 눈물을 쏟으며,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을 했다고 하셨다. 텔레비전만 틀면 내가 나온다면서, 연신 축하의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이명수씨는[무지개 안경]이라는 동화책을 쓰고 딸에게 밤마다 읽어준다며 한동안 자랑을 했는데, 사람이 수완이 좋아서 별 특별한 것도 없는 책을 많이도 팔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마음을 읽는 상담사]책은 나중에 사서 읽었다. 10년 전에 잠깐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을 글을 쓰면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대기업 출신에 잘생긴 엘리트라서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 자주 만나고, 썸을 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확신이 들었다. 그림같이 살고 싶으면, 필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살아가는데는 어려움이 많을 텐데, 돈이라도 넉넉해야 다른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난다. 그래서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만 방송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작가로 기회를 얻었지만, 작가로 살 생각은 없다. 마음을 다 담아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진심은 좀 덜어 놓고, 영리하게 살아야 한다. 이제 겨우 남들처럼 살게 되었는데, 한미숙 작가님 말처럼 마음으로 쓰는 글은 이 세상에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을 썼기 때문에, 유명해질 기회를 얻었고, 책을 쓰면서, (내가 다 쓴 것은 아니지만,) 공부가 많이 됐다. 책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