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신 달

도요새

by 그레텔 그림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취소 소송이 3년 만에 1심 승소했던 날, 책상에 앉아 혼자 박수를 치다가 오랜만에 책 <문버드>를 꺼내 들었다. 문버드, 그러니까 달새는 붉은가슴도요다. 30년 전 어느 날 남아메리카 남단에서 한 수컷 도요새가 연구자들에 의해 포획되어 B95라는 표식의 발찌를 달았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네 번이나 다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 거리를 거의 완주했음을 입증했다. 사람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113그램의 몸으로. 달새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 무렵의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 우울감과 허무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삶은 그냥 살아내는 거야!라는 단순하고 박력 넘치는 메시지는 나의 무기력을 압도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도요새에게 모든 여행은 생사가 걸린 일이라고 했다. 폭풍우에 휘말리거나, 굶주린 천적을 만나거나, 제때 쉬지 못해 탈진해서 추락하거나. 혹독한 비행으로 에너지를 다 소진해 뼈만 남은 도요새들은 우리나라 서해 갯벌에 머무르며 피곤한 날개를 쉬고, 강풍에 쪼개져 너덜거리는 깃털을 가지런히 고르고, 남은 여정을 감당할 수 있는 영양분을 비축한다. 그 갯벌을 덮어 버리고 거기에 공항을 짓겠다는 인간들의 의지는 그저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수만, 수십만 생명들을 단번에 바닷속으로 쓸어 넣겠다는 작정이 되는 셈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잠잘 정도로 겁이 많다는 이 새들은, 모든 위험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떠날 때가 되면 망설임 없이 날아오른다. 이게 삶이라고, 날갯짓으로 슈욱슈욱 크게 외치며 말이다. 새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기 생명과 삶을 존중한다. 인간도 조금은 그런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10월 초, 이미 때가 늦었음을 알면서도 화성 매향리 갯벌로 향했다. 달새와 닮았을 누군가를 육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만조가 가까워 물이 찬 갯벌에 도요새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 일몰만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낮은 비명을 터뜨렸다. 어두워진 하늘에 소름이 돋을 만큼 커다란 슈퍼문이 둥실 떠 있었다.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내 얼른 눈으로 가져갔다. 달 표면의 알록달록한 무늬가 고스란히 보였다. 올해 가을이 내게 허락해 준 것은 새 대신 달이로구나. 내년 봄에는 달새를 닮은 도요새를 꼭 만날 수 있길. 수많은 새들이 동시에 날아오르며 낸다는 그 위대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길. 새들의 자기 존중을 내 피부로도 느낄 수 있길. 기다림이 생겼다. 가슴이 설레었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문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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