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와 다람쥐
‘다람쥐 등 야생동물 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공원 내 밤, 도토리 불법채취 단속을 강화합니다.’
공원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재작년쯤부터 보이기 시작한 것 같은데, 어쩌면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맘때가 되면 산책길을 벗어난 숲속에서 땅바닥을 뒤지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어떤 이들은 가방까지 챙겨 와 열매들을 야무지게 담느라 여념이 없다. 9월에서 10월로 이어지는 시기의 산책길 바닥에는 빈 밤송이와 도토리 모자만 잔뜩 굴러다닌다. 열매들의 대부분이 어디로 갔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수막을 본 후로 나는 길에 떨어진 열매들을 몇 개씩 주워오던 행동에서 낭만을 찾지 못했다. 대개 시각적 소음이라고 여겼던 그 물건이 좀 더 많이 걸렸으면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처음이었다.
탐욕이란 다른 존재에게 돌아가야 할 몫마저 내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의 것을 채 가서 득템 했다고 낄낄거리는 끔찍한 기쁨이다. 공원 채집인들을 향한 불편감이 산책길 위 빈 껍데기들과 함께 뒹굴렀다. 인간들아, 제발! 다람쥐의 것은 다람쥐에게로, 새의 것은 새에게로! 당신들에게는 밤과 도토리 아니어도 먹을거리가 넘쳐나잖아?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에게 채집인들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자 그가 말했다. “그걸 탐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일 뿐이지. 아니면 훨씬 더 오래전에 유전자에 남겨진 채집 본능이거나.” 습관, 유전자 그리고 본능이라니 일단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또 너무 성급하게 혐오감을 끌어올렸던 걸까? 아무튼 미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다.
아침 숲 산책 중에 길 옆으로 알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드물도록 굵은 밤. 부드럽고 우아한 브라운의 깊은 색감. 그림으로 그리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다. 나는 그 밤을 손에 꼭 쥐고 한참 걸었다. 탐욕인지 본능인지 분간하지 못할 마음으로 가득 찬 채로. 그러나 내가 그 알밤에 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 행동은, 채집 인간에게 넘겨주지 않는 일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주먹을 펴 밤을 쳐다보다가 다시 쥐었다. 밤 한 톨이 뭐라고, 아쉬움이 끈적거렸다. 주변을 살폈다. 팔에 힘을 실어 가능한 한 멀리 던졌다.
그 밤이 숲에서 겨울나기를 준비할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그 밤을 갖게 될 작은 주인이 곧 다가올 이번 겨울에 사라지지 말고 잘 버티기를 바라며.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