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라는 세계

검은지빠귀와 검은 고양이

by 그레텔 그림



그는 자신의 작품이 처음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을 자신의 영혼이 준 선물로 여겼다. 그것에 답하는 자신의 행동이란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영혼과 소년에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창작의 영감을 ‘선물’로 풀이한 문장을 읽다가 문득 누군가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그릴까. 작품이 시작되려는 간질거림이 선물이라면, 그 선물을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선물이 필요했다. 나는 종종 그런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어떤 것은 금세 그림이 되었고, 어떤 것은 결국 잊혔으며,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오래전 찍어둔 한 장의 사진이 발견되었다. 검은 고양이. 저절로 새어 나온 낮은 탄성에는 반가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잠시 빌렸다가 깜빡 잊고 돌려주지 못한 물건을 찾은 기분이었다.



빨간 리본을 목에 달고, 눈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나를 한참 노려보던 녀석의 이름은 럼이. 럼주의 럼이다. 럼이의 집사인 제이는 열렬한 애주가이자 고양이 애호가였다. 그리고 선물 같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선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제이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항상 먼저 베풀었고, 줄 때는 아낌이 없었다. 내 그림을 깊이 사랑해 주었고, 경계심 많은 나에게 타인과의 협업이 순전한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의 풍성함을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선물 인간'은 나누어지려는 본성을 따라 흘러갔다.



7년 간 타향에서 일하다 그리워하던 바닷가 고향으로 돌아간 제이의 평온한 얼굴이 보고 싶어 찾아갔던 건 작년 봄이었다. 오래된 동네에 자리한 고즈넉한 단층 주택이었다. 낡은 목재를 그대로 보전한 제이의 거실에서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세 마리 고양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제이가 내어준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밀린 수다를 나누던 중이었다. 럼이가 테이블 위로 고양이답게 사뿐히 올라와 앉았다. 내 눈은 그의 호박빛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다. 그 순간은 선물 세계의 대선배에게 바칠 답례를 위해 주어진 재료였음을. 나는 기꺼이 순종하기로 했다.



선물이란 물건이나 사람뿐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한 나는 그 세계에 온전히 속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창작이란 다가온 선물을 받아 그것을 또 다른 선물로 돌려보내는 순환의 과정이라는 저 아름다운 주장에 동의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그 너그러운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보물은 사라지고, 독차지하려는 욕심은 뱃속을 휘젓는 고통으로 변해버리는 마법의 세계. 그림을 그릴 근사한 이유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 나는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 다시 그 바닷가 도시로 향할 날을 기다린다.



* <선물>, 루이스 하이드, 전병근 옮김, 유유, 2022,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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