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들
분명히 존재하는데 부를 이름을 찾지 못해 그저 감각으로만 간직해 온 것들이 있다. '코모레비'가 그랬다. 코모레비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의미하는 일본어다. 그림자로 인해서 더욱 선명해지는 빛. 코모레비는 언제라도 아름답지만 특히 초록이 짙어지기 전 늦봄의 연둣빛을 띈 것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만들어낸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핸드폰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벅차오르는 충동을 주체하지 못해 연신 찍어대곤 한다. 우리말에도 '볕뉘'라는 단어가 있는데 발음이 어려워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코모레비'라는 이름을 찾았다. 이름을 부르자 아스라했던 그것은 간직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코모레비에 마음을 빼앗긴다. 어디에나 있다는 흔함이 특별함을 퇴색시키지 않는다. 나는 그가 틈만 나면 나무를 올려다보며 짓던 실없는 웃음의 이유를 조금은 안다. 코모레비에 홀리면 딱 그렇게 바보처럼 입을 헤에 벌리게 되니까.
그런 삼촌을 지켜보던 어린 조카가 묻는다. 저 나무는 삼촌 친구지? 그는 아주 멋진 발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카의 말을 따라 반복한다. 그래, 저 나무는 친구 나무야. 좋아하는 선물을 매일 건네주는 존재가 친구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맛으로 치자면 나무의 빛그림자 선물에서는 달콤함을 띈 감칠맛이 난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고 죄책감도 없이 먹고 또 먹을 수 있는 맛이라 보일 때마다 먹는다. 찾아내기 어렵지도 않아 고맙다.
코모레비는 삶에 관한 정답 같은 은유이기도 하다. 삶은 필연적으로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풍경일 테니까. 내게 기쁨을 주는 빛이란 그림자가 사라진 눈부심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깜박이며 일렁이는 반짝임이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림자에 사로잡히는 때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닥쳐오긴 하지만, 시간은 반짝이는 것들을 어김없이 다시 데리고 온다는 사실을 좀더 자주 기억해 내려고 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줄곧 한 가지만을 보여준다. ‘완벽한 날들’의 완벽이란 코모레비의 그것임을. 우리는 주인공의 비밀스러운 사연조차 알 필요가 없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건 특정한 누군가의 서사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의 코모레비, 나 자신의 얼룩 역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영화의 막바지 장면에서 놀랍게도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로 코모레비를 재현해 낸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풍경을 아주 오래 바라본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퍼펙트 데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