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남편이 달라졌다.
그는 짜증을 잘 내는 편은 아니었다. 삐치면 툭 튀어나온 이마뼈가 더 도드라져 보이긴 했지만 짜증을 육성으로 내게 내뱉은 적은 많지 않다.
또, 내가 뭘 사도 눈치채는 법이 없었다. 미용실에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웨이브파마를 하고 와도, 새로운 원피스나 가방을 사도 내 몸에 걸치는 물건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물건 살 때 눈치가 전혀 안 보이는 큰 장점이 있었다.
최근 남편과 나는 아들이 점점 책을 멀리하자 주말에 다 같이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한가로운 주말 어느 날, 외출한 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쉬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고 나자 허리가 아파 거실 매트 위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운동부 코치처럼 박수를 치며 이제 "책 읽는 시간~"이라고 외쳤다. 아무도 책 읽으러 움직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한쪽 다리를 흔들던 그는 점점 끈기를 잃어갔다.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화를 돋웠다. “이따 하면 안 돼? 나 계속 책 읽다가 방금 누웠단 말이야.” 이 말에 남편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소리 나게 툭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도 기분이 좀 상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꿀 같은 단잠에 빠졌다. 일어나 저녁 준비하려고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던 그때, 소리 없이 나타난 그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우리 얘기 좀 해."
등골이 오싹했다. 저 멘트는 보통 내 입에서 나오던 그것이 아닌가. 저녁 준비에 바쁘다고 하는데도 기어이 나를 붙잡고 왜 자기 계획에 협조를 안 하냐고 따지는 그가 낯설었다.
얼마 전, 가방 하나를 샀다. 무난한 모양과 색깔의 가방이었기에 카멜레온처럼 우리 집에 자연스레 녹여질터였다. 교회에 가려고 새로 산 가방을 꺼내 들고나가려는데, 남편이 불러 세웠다.
“샀니?”
한여름 납량 특집인가.
“어어, 하나 장만했어. 싼 거야.”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자리를 피했다. 뭐 잘못한 것도 없건만 태어나 처음 그에게 듣는 말이라 그런지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굳이 싼 거라고 비굴하게 덧붙여야 했을까.
그래, 생각해 보니 이제 남편도 6개월 후면 반백살의 나이가 된다.
변화가 이상하지는 않을 나이. 그의 다소 예민하고 섬세해진 감성에 적응해 보자.
언제가 이런 글제목을 지나치며 읽은 기억이 난다.
'터프해진 중년 여성, 잘 우는 중년 남성'
어쩐지 목소리도 커지고 부쩍 씩씩거리며 팔을 휘젓고 다니는 우리 집 중년 여성이 떠오른다.
남편도 혹시 나의 변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훌쩍훌쩍 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