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봉 Jul 10. 2024

벌레 잘 잡아주는 오빠

'남편과 왜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성, 재력, 유머, 외모, 직업, 자라온 환경 등.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마음을 움직여 누군가와 백년해로할 결정을 해버리고 마는 것일 테다.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에는 없지만 나에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벌레 잡는 능력’이다. 이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혀를 차는 친정아빠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잠시 잊기로 한다.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다. 그들과 우리는 지구 안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고, 때로는 인간이 그들이 소중한 공간을 침해하고 들어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며칠 전 남편이 저녁 약속이 있어 직장 근처에서 자고 오는 날이었다. 저녁 먹고 홀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나갔다. 아파트 단지 내 나무가 유난히 우거진 곳을 걷는데 무언가 빛의 속도로 나에게 돌진하더니 어깨를 툭 소리 나게 치고 지나갔다. 분명 이건 벌레였다. 양손에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던 터라 손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흡사 벨리댄스와 비슷한 몸부림을 치며 어딘가에 붙었을 벌레를 떼내려고 애썼다. 살이 사방으로 흔들리는 엄청난 진동에 나가떨어지기를. 행인들 눈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서야 나는 댄스를 멈췄다. 이 정도면 떨어져 나갔겠지. 흡족한 얼굴로 재활용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다. 거울을 보며 세찬 바람에 2:8 가로마가 된 앞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왼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왼팔 소매 끝단에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께감이 상당했던 그것의 머리는 정확히 옷소매 안 내 겨드랑이를 향해있었다. 자칫하면 소매의 넓은 통을 따라 겨드랑이로 돌진할 수 있었다. 그 일만은 막아야 했다. '내 겨를 지켜!!' 속으로 외치며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게 엘리베이터 옆 벽면에 꽂힌 전단지를 한 장 뽑아 녀석을 쳐냈다. 멀리 날아가는 것을 봐야 속 시원할 터인데 벌레는 종적을 감추었다.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땀일 거라 긍정회로를 돌리며 또다시 엘베 앞 춤판을 벌였다. 탭댄스, 벨리 댄스, 라틴댄스 닥치는 대로 몸뚱이를 움직였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어 확인했다. 다행히 녀석은 사라졌지만 가슴은 여전히 뛰었다. 남편이 실로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때로는 벌레 하나에 유난인 내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또 맘대로 안 되는 걸 어쩌랴. 벌레 중에 가장 싫어하는 녀석은 노린재, 일명 방귀벌레이다. 노린재라는 진지한 이름이 있는 건 결혼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는 작은 산과 맞닿아 있었다. 특정 층의 비상구 문을 열면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펼쳐졌다. 한 살 터울 오빠와 산 초입에서 각종 곤충과 벌레를 탐닉하며 여름방학 숙제였던 곤충 채집도 야무지게 해 갔던 나였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고 곤충들과 잠시 소원해진 그때였다.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위해 옷장에서 새로 산 멜빵 원피스를 꺼내 갈아입었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책상에 앉아 있는데 잠시 후 엉덩이 부근에서 몹시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까끌한 거 같기도 하고 축축하기도 한 것 같은 그것. 어떤 이물질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귀찮았던 나는 엉덩이를 요리조리 움직여가며 불편함을 해소하려 했다. 아무리 움직여봐도 느낌이 사라지지 않자 손을 넣어 휘저었다. 손이 그것에 닿은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생물’이라는 것을!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그대로 탈의해 보니 내 엉덩이에 처참히 깔려 비명도 못 지르고 죽은 갈색 방귀벌레가 고약한 방귀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소리를 꾸엑꾸엑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손 끝에 나는 묘한 비린 방귀 냄새는 가실 줄을 몰랐다. 죄 없는 엉덩이도 피가 나도록 박박 씻었다. 아끼고 아끼다 처음 입은 원피스를 조심스레 들어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당연히 방귀벌레의 향이 깊게 배어 있었다.


노린재 트라우마 이후 날개 달린 곤충만 보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내가 너무 호들갑 떤다며 한 마디씩 했다. 그래, 제법 유난스러워 보일 법도 하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벌레만 보면 진상 떠는 내게 핀잔 한 번 준 적이 없다. ”오빠, 벌레!!! 하고 방으로 숨어버리면 군말 없이 잡거나 내쫓아 준다. 언젠가 강원도 산속 펜션으로 놀러 갔을 때 사람

얼굴만 한 나방을 마주했을 때도, 집에 거대 꼽등이가 들어왔을 때도 그는 얼마나 용감하고 늠름했던가.


긴 겨울을 보내느라 잊고 있었다. 남편의 벌레 잡기 능력은 만능 살림꾼 자질이나 돈 버는 능력보다 더 귀하다.  그에 대한 흉이 절로 나오는 남편 탐구 생활이었는데 7회 차에 그의 최대 장점을 깨달았다.


밥 잘 사주는 오빠보다 벌레 잘 잡아주는 오빠가 최고다.

이전 06화 숙취를 풀어드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