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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08. 2024

내 천 원 내놔

어제 퇴근 후, 둘째 아이를 데리러 발레 학원에 갔다. 나를 본 아이의 첫마디는 '엄마, 나 오늘 새벽에 일어나야 해'였다. 9살 꼬맹이가 왜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인지 영문을 몰라 물어보니 학교에서 어버이날 선물을 만들었는데 산타 할아버지처럼 새벽에 몰래 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어버이날 서프라이즈 계획을 이렇게 세운 모양이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더 반가워하는 둘째가 어여뻤다. 새벽에 자다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 테니 엄마 먼저 자러 들어가고 그 후에 선물을 놓자고 약속했다. 


자기 전 살구빛 상기된 볼로 옷 안에 선물을 숨기며 돌아다녔으나 한껏 부푼 아이의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도 미리 보지 말고 아침에 보라며 신신당부하고 안방 문에 무엇인가 붙이는 듯했다. 아이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잠을 뒤척였다. 고운 손으로 열심히 칠한 카네이션과 편지일 것으로 이미 상상은 되었지만 아이의 보들보들한 마음에 나까지 설레었다.


아침이 밝았다. 안방에서 같이 잠든 둘째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이가 자기 전에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었다. 눈을 비비며 꿈틀거리는 아이에게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엄마 이제 선물 확인할게. 기대된다!” 

짠 하고 방문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몰래카메라인가. 깜짝 놀라 아무것도 없다 하니 잠에 취해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정말이었다. 선물은 온데간데없었다. 둘째가 출근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아빠가 선물 다 뜯어갔냐고. 남편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선물 잘 받았다며 농담을 던졌으나 이미 눈이 붉어진 둘째는 힘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나마 카네이션이 그려진 카드는 아이 방에 놓고 갔다고 해서 서둘러 확인했다.



엄마 글자가 안 보이는가

“내가 편지지에 엄마, 아빠 표시해서 천 원씩 어버이날 용돈을 주려고 방문에 붙여놨어. 그런데 아빠가 보지도 않고 돈을 혼자 욕심쟁이처럼 다 가져가 버렸어.” 훌쩍이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남편이 놓고 간 카네이션 카드를 흔들며 대신 엄마가 카드 가질게 엄마는 이게 너무 좋아라고 달랬으나 아이의 서운한 마음은 쉽게 옅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큰일(?)을 치른 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에 대한 탐구에 정진하여 다음엔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겠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출근하자마자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좋은 말 할 때 내 천 원 내놓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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