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힘은 건전한 인격과 공고한 단결에서 #4/10

4화. 제1차 세계대전과 만주 소식

by 은명

4화. 제1차 세계대전과 만주 소식


이제 흥사단 약법을 제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약법기초위원은 안창호, 강영대, 곽림대 3인이다. 이들은 클레어몬트학생양성소에서 7일간 합숙하면서 약법제정에 열정을 쏟았다. 강영대(1886~)는 강영소의 맏형이다. 『신한민보』의 주필이며, 국민회북미지방총회 학무원이다. 공립협회가 하와이 합성협회와 국민회로 통합할 때 공립협회 대표로 나섰다. 그는 또 클레어몬트 학생양성소 감독이다. 곽림대(1884~1973)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북 선천에 있는 신성학교에서 정주 출신 선우혁과 같이 교편생활을 했다. 신성학교는 미북장로교 선교회가 설립한 중등과정 사립학교이다. 곽림대와 선우혁은 1909년 선천지역 청년학우회 발기에 참여했다. 곽림대는 105인 사건에서 고초를 겪고 2년 만에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그리고 1913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마침 1913년 7월에 국민회중앙총회가 자치정부임을 선포하면서 일본의 간섭을 배격했고, 미 당국 브라이언 국무장관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유학생들의 입국이 수월해졌을 때이다. 안창호는 청년학우회에서 만난 회원들의 미국 유학을 환영했다. 이후 조병옥을 비롯하여 백낙준, 최희송, 정일형, 장리욱, 이대위(1896-1934 동명이인), 오정수, 정인과, 한승인, 김려식, 김여제, 최윤호, 송창근, 황희찬, 신현모 등 유학생 청년들이 무비자로 도미하여 안창호와 만났고 흥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안창호는 곽림대를 중앙총회 총무로 임명했다. 곽림대는 1920년 캔터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윌로스 비행학교 초대 감독이 된다.


흥사단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틀을 잡아 나가고 있을 때, 유럽은 예견대로 전쟁에 휩싸였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총소리’가 그 신호탄이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병합하고 세르비아를 지배했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대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제국에 저항했다. 총을 쏜 청년 프린치프는 세르비아계 대학생이었다. 청년은 2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3년 만에 골결핵에 걸려 옥사했다.

오스트리아는 즉시 세르비아에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7월 28일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했다. 인접국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후,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잠재웠던 피의 일요일 사건 이래 혁명의 내부 진통을 겪던 중, 1914년 7월 29일 보호국 세르비아를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를 경계하던 독일이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 포고했다. 이틀 후에는 러시아와 동맹국이던 프랑스에도 선전 포고했다. 주변국은 제국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국과 연합국으로 갈라져서 참전했다. 동맹국은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투르크, 불가리아이고 연합국은 세르비아,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영국, 일본, 이탈리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미국, 중국 등 15개국이다. 이들이 유럽에서 벌인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안창호는 일본에 주목했다. 영국과 동맹 관계였던 일본은 영국이 독일을 공격하자 이를 기회로 1914년 11월 중국의 독일 조차지 청도와 산동성 전역에서 독일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관심은 러일전쟁으로 얻은 만주 이권 확보에 쏠려있었다. 이에 중국이 일본군 철수를 요구하자, 일본은 거꾸로 1915년 1월 원세개의 황제야망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21개조 요구안’을 제시했다. “산동성의 독일 이권을 일본에 할양할 것, 여순과 대련의 조차 기간과 만주 이권을 99년간 연장하고 남만주와 몽골의 일본토지 소유권을 인정할 것, 일본인 고문과 경찰관을 채용하고, 일본 무기를 구매할 것, 광산채굴권, 철도부설권 등을 일본에 넘길 것” 등의 내용이다.

중국의 완강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원세개가 일본에 굴복했다. 이것으로 일본은 중국의 정치, 군사, 치안의 권한을 모두 손안에 넣었다. 중국은 일본과 적대국이 되었다. 일본과 함께 연합국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러시아는 1914년 9월, 러시아 내 모든 한인 단체의 해산령을 내렸고, 『대한인정교보』는 폐간 조치 되었다.


1915년 여름, 안창호가 클레어몬트 학생양성소 건물 한쪽에서 강영대, 곽림대와 합숙을 하면서 흥사단 약법과 제 규정에 대해 토론하는 도중, 홍언이 이탁의 편지를 들고 왔다. 이탁이 서간도 소식과 함께 안부를 전해 왔다. 반가웠다. 이탁은 서간도로 망명한 김동삼과 결합하고 백서농장과 신흥강습소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창호는 그렇지 않아도 서간도 기지개척 사업 진행이 무척 궁금했다. ‘안동에서 김동삼 일행이 통화로 이주한 모양이군.’ 안창호는 생각했다.

강영대가 물었다. “아주 반가운 편지인가 봅니다. 표정이 밝으십니다.”

“그렇다오. 서간도 기지 개척 소식이오. 무척 궁금했던 소식이랍니다.” 안창호가 소년처럼 기뻐하며 말을 받았다.

“이탁이라면 혹시 대성학교 제자 아닙니까? 그때 평북 선천에서 청년학우회 발기 때 선생님이 자랑하던.... 그때 오동진이란 학생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하.” 곽림대가 옛 생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랬소? 내가 자랑을 했단 말이지요? 허허.” 안창호가 계면쩍게 웃었다.

“서간도 기지 개척 사업도 신민회 사업의 한 줄기인데 저희도 궁금합니다.” 곽림대가 말했다.

안창호는 편지를 보면서 말했다. “신민회 동지들은 망명 장소로 일단 유하현 삼원보로 모여드는가 봅니다. 이회영 선생 일가도, 안동 출신 이상룡 선생과 김동삼도 또 내 친구 필순이도 삼원보로 갔다가 통화로 이동했다고 했소. 이 편지를 쓴 이탁은 내가 병합 전에 기지 물색하라고 간도로 보냈는데 국가상실 소식을 듣고 삼원보에 눌러앉은 모양이오.”

“그랬군요. 각 처 어르신들과 의병 청년들이 망명하여 황무지를 개척했다면 그 성과도 궁금해집니다.”

“흉년이 들어 헛고생했답니다. 그래서 다시 개척 장소를 통화로 이동했답니다. 다행히 통화는 강이 있어 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합니하에 신흥강습소를 설립했고...” 안창호는 편지를 보면서 그 내용을 소개하듯 말했다.

“오, 다행입니다. 그런데 형님도 알고 계시지요? 일본이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얻으려고 간도를 마음대로 청국에 넘기고(1909.9.4.) 간도특설대를 설치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번엔 유럽 대전을 빌미로 연해주 한인 추방령을 내려(1914.9) 『권업신문』 발행을 중지시키고 권업회를 해체했답니다. 조선의 씨를 말리자는 간교함이죠. 그러니 괜찮을까요?” 홍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동지들은 나라 찾겠다고 여기저기서 독립전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데....” 안창호는 시무룩해졌다.

곽림대가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간도를 농락하고 연해주 교민을 추방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소. 머지않아 시베리아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강영대가 말했다. “일본도 끝이 있을 것입니다. 유럽 전쟁은 걷잡기 힘든 소용돌이로 휘말려 가는 듯합니다. 일본이 영국을 앞세워 중국 관내 독일을 공격하고 미국은 아직 망설이나 봅니다.”

“동맹관계란 어차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동하니까 또 모르지요. 청일전쟁 때 일본의 요동 진출을 강력히 막은 것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였죠. 지금은 독일과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고, 프랑스가 영국과 연합하여 독일과 대치하고 있고.” 홍언은 신한민보 주필답게 국제정세에 해박함을 드러냈다.

군사학에 관심이 많은 곽림대가 말했다. “앞으로 전세는 공군력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겁니다. 제국주의 앞잡이들은 군국주의로 권력을 장악하고 폭격기로 무장할 테죠.”

안창호는 이러한 통찰과 분석력을 갖춘 후배 동지들이 든든했다. “동감이오. 미국은 분명히 공군력을 앞세워 종전을 명분으로 유럽전에 개입할 것입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 한복판으로. 그러나 아직은 미국의 때는 아닐 테고....”

홍언이 긴장한 표정으로 안창호의 말을 이었다. “그리고 평화를 위장하여 휴전협정을 중재할 테지요. 독일의 군사 기술이 제일 앞서있다고 해도, 미국이 개입한다면 어찌 보면 연합국에서 러시아를 견제할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강영대는 향후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전망이 걱정되었다. “유럽 대전으로 희생이 가장 큰 것은 예상컨대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우리나라지요. 일본은 대전을 틈타 허약한 중국을 농락해 들어 올 테고 우리의 기지 개척 사업의 명분도 좁아지겠지요. 놈들은 분명히 육, 해, 공군의 군사력 증강을 기회로 삼고 혈안이 될 것입니다.”

안창호가 동감을 표시했다. “종국에는 일본이 중국, 러시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해 올 것입니다.”

홍언도 그렇게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과거 전쟁에서 모두 일본에 패배당한 경험이 있고, 미국이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일본인에게 토지 매매를 금지한 일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벼른다고 하니, 참으로 기고만장한 일입니다.”

곽림대가 탄식했다.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첨단 군사력의 힘을 가져야 하는데. 땅도 빼앗기고 해외 기지 개척이 무력해지면, 대한의 독립은... 아, 절망입니다....”

세계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안창호는 독립의 길이 멀고 먼 꿈처럼 여겨졌다. 기운이 빠졌다. 일본 군국주의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우리는 머나먼 타국에서 어떻게 전쟁 준비를 해야 하는가? 이탁이 보내온 서간도 독립운동 소식은 비현실로 느껴졌다. 안창호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차렸다.

“이 보오, 우리 민족은 5천 년 역사를 지닌 지혜로운 민족이오. 지금 잠깐 땅을 빼앗겼지만, 민족정신과 혼은 그대로요. 어떻게든 때가 오면 강대국과 연합해서 독립을 모색해야 하오. 불가능하지 않소. 서간도나 북간도나 동지들이 무장하고 지혜를 발휘하고 통합해서 일본의 기를 꺾는 투쟁을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홍언이 미소를 되찾고 안창호를 격려하고 나섰다.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세대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역사적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유길준 선생처럼 말이죠. 『서유견문』 으로 역사적 삶을 사셨고 우리는 『서유견문』 에 취해 꿈을 키운 것이 아닙니까? 미국까지 와서요.”

안창호는 탄식했다. “그렇습니다. 동경에서 만난 때가 어제 일 같은데.... 유길준 선생은 우리의 스승이시오. 흥사단! 우리의 흥사단 명칭 계승은 그분께 올리는 선물인 셈이오.”

홍언이 안창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서간도와 연해주 동지들 소식을 신문에 실어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힘이 될 것입니다.”

안창호도 다시 표정을 바꾸며 화답했다. “만주와 연해주, 시베리아 소식을 더 모아 봅시다. 서간도는 이탁이 더 자세한 사항을 전해줄 것입니다.”


마침내 1915년 8월, 흥사단 약법이 제정되었다. 이때 흥사단 약법 제2조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제2조 (목적) 본 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남여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며 덕, 체, 지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지으며 신성한 단체를 이루어 우리 민족 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

안창호가 그린 독립운동방략의 기초단계는 흥사단 운동이다. 안창호는 내내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주 일대를 돌아보면서 청년 동지들을 흥사단으로 불러들였다. 흥사단에 모여든 사람들은 조국광복의 그 날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해야 한다. 힘을 모아 9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처럼! 이를 위해서는 인격훈련과 단결훈련에 힘써야 한다. ‘힘은 건전한 인격과 공고한 단결에서 난다.’ 그 힘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부문에서 꽃을 피운다. 흥사단 청년들은 장차 독립 조국에서 국가 인재로 등용될 인격체, 자유 민주 시민이 된다. 정치와 경제 분야 전문가, 과학 기술 분야의 전문가, 교육과 문화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흥사단 기초훈련은 공동체주의로 시작된다. 개인과 단체의 조화다. 안창호는 조직이 위임한 전권을 가지고 정성껏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안창호와 ‘만남’을 가진 청년들은 행운아였다. 격의 없는 토론과 문답을 통과해야만 흥사단에 들어올 수 있었다.

“모진 돌이나 둥근 돌이나 다 쓰이는 장 처가 있는 법이니, 다른 사람의 성격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하여 나무랄 것이 아니다.”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흥사단은 1915년 8월에 약법이 완성되었다. 1917년 5월에 의사부, 이사부, 검사부로 조직의 3부 체제를 갖추었다. 흥사단은 서북미지역과 시카고, 뉴욕, 하와이, 멕시코, 쿠바까지 뻗어 나갔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상해, 남경, 북경, 천진, 광주, 서울, 평양으로 확장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을 훌쩍 지나 현재에도 처음처럼 그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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