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옳다"고 정해진 규칙, "좋다"고 평가받는 기준, 그리고 "성공"이라 불리는 결과물까지 모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 부모님의 기대, 학교의 규율, 사회의 시선은 우리를 둘러싸며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지 속삭인다. 그러나 그 속삭임은 언제부턴가 덫이 된다.
나는 유소년 시절을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경험한 학창 시절은 엄격한 규율과 높은 기준의 연속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수학 시간, 선생님이 무작위로 이름을 불러 문제를 풀게 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비춰질 것이라는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교실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고, 나는 언제나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며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방학 동안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잠시 머물렀던 학교에서의 첫 수업은 낯설면서도 따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곳에서는 답을 맞추는 것보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 집중했다. 내가 틀려도 선생님은 기다려주었고, 친구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숨이 막혀 있던 덫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 쉬는 느낌을 주었다. 그곳에서는 실수조차 성장의 일부로 여겨졌고, 이는 나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안겨주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물으셨다. “유학 가고 싶니?”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유학 가고 싶어. 미국 선생님들은 나에게 기회를 주잖아.”
그 경험은 나로 하여금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선물해 주었다. 물론 유학이 옳은 선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 꿈에 도전하려 하는지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 나가는 과정이다.
타인의 기준은 보이지 않는 철창처럼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가둔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스스로 묻기 전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학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평범한 삶의 궤적'은 모두가 따르는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종종 묻는다. "나는 이 삶에 만족하는가?"
그 질문은 덫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처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꿈꾸며, 무엇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그 답은 쉽지 않다. 이미 오랫동안 타인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덫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때로는 외로움을, 때로는 불확실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삶은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더 깊은 만족과 기쁨을 준다.
타인의 기준이라는 덫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이다. 그 너머에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갈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