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부자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듯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용의 머리가 되고 싶은데 뱀의 머리에 머물러 있다는 갑갑함을 느끼는 것 같다. 철지난 감세 만능론에 매달리는 것이 그 작은 단서다.
실제로 우리나라 부자는 미국이나 대만 부자에 비해 가난하다. 통계에 따라서는 미국인의 절반도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심리는 누구나 갖고 있으니, 중위층이 상위층을 보며 빈곤감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나라 상위층도 해외 상위층을 보며 빈곤감을 느낄 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자는 유럽과 일본 부자보다 잘 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상위 1%, 0.1% 이상 계층이 가져간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재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는 곳이라, 세후 소득으로 봐도 우리나라 부자가 유럽 부자보다 부유하다.
흔히 고소득층이 소득세 세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두고 불공정하다며 이야기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애초에 소득세를 그렇게 낼 수 있는 사람이 소수 고소득층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소득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노인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부자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줄이려 한다. 그런 부자들이 바라는 유토피아는 미국이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소득세와 상속세를 내면서 드넓은 저택과 질 좋은 교육을 독점하듯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돈이 인정받는 나라를 바란다. 그 미국에서 최고 보험사 CEO가 살해당했음에도.
우리나라 부자는 절대 혼자만의 노력으로 부유해지지 않았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인이 버리고 간 자산을 값싸게 민영화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사람을 수출해서 부족한 자본을 끌어왔고, 이를 활용해서 만든 국영기업들을 꾸준히 민영화했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기업인의 희생도 많았지만, 적어도 당시 대기업 경영자는 노동자와 다르게 너무 많은 보상을 받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소수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 구조에 갇혀 있고, 가난한 아이들과 부유한 자제들로 분열되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총기 소지에 관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 영국 보수당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