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벽돌집

by 소래토드



불어낸 입김이 도로 얼굴로 끼쳐와 속눈썹이 뿌옇게 되도록 얼어 맺히는 무시 무시한 추위였다. 오랫동안 매고 있던 가방의 얇은 끈이 로이의 어깨에 사정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거지?”


로이는 앞서 가는 켄트를 향해 소리쳤다.


켄트의 걸음걸이는 항상 정확하고 단호했다. 길 가에 서서 두리번거리거나 멈춘 채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없었다. 말도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뚝뚝하거나 인정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친절한 쪽에 가까웠다. 켄트와 함께 다니는 여정이 여태껏 쉽지는 않았지만, 로이는 늘 안전하고 즐겁다고 여겼다. 로이는 켄트가 좋았다.


드디어 켄트가 로이를 향해 돌아섰다. 그가 기진맥진한 로이의 얼굴을 보더니 가엽다는 듯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외투 오른쪽 윗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 열쇠 꾸러미를 꺼내 로이를 향해 흔들며 말했다.


“다 왔어.”


피로감으로 반쯤 감겨있던 로이의 눈이 단번에 동그래졌다. 이제 곧 편히 쉴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생각에 로이는 남아있던 힘을 모두 짜내어 켄트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켄트가 야트막한 울타리 한쪽을 넘어 빨간 벽돌집의 문을 여는 사이, 로이는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아주 조용한 마을이었다. 제법 잘 닦인 반듯한 길의 한쪽으로, 빨간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좌우 외벽이 서로 붙은 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각각의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하나씩 있었는데,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아무리 겨울이래도 그렇지, 군데군데 잔디가 움푹 파여 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꽃들이 봉오리 채로 모두 말라비틀어진 것을 보면 추운 계절이 오기도 전에 이미 생을 마친 듯했다. 로이는 불쾌한 기분을 바꾸어 보고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몹시 추웠지만 그래도 참 화창한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로이!”


켄트가 로이를 불렀다. 로이는 켄트처럼 얕은 울타리를 살포시 넘어 그 엉망진창인 정원을 재빠르게 지났다. 그리고 닫히지 않도록 켄트가 붙잡고 있는 열린 문 안쪽으로 쏙 들어갔다.


집 안은 몹시 어두웠다. 켄트가 등 뒤로 문을 닫으니 잠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가 어둠에 차차 적응하자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켄트와 로이는 함께 그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위로부터 은은한 빛이 마치 먼지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지붕에 난 작은 창에서 내려오는 빛이었다. 로이는 그 빛을 잡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공중으로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켄트는 산만한 로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켄트가 가리킨 좁은 복도 안쪽에 레몬 껍질처럼 옅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방문 두 개가 나란하게 있었다.


“오른쪽이 네 방이야. 들어가서 좀 쉬어.”


아직 오른쪽과 왼쪽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로이는 아무렇게나 한쪽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쪽이야?"


켄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다니지 말고 잠을 푹 자둬. 우린 곧 다시 떠날 거야."


로이는 투정을 부리느라 들은 체 만 체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곧장 침대로 가서 몸을 뉘었다. 춥고 고단한 여정을 마친 터라 긴장이 풀려버린 탓에 로이는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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