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 톤 추억은 내게 없지만

by 그리다 살랑

그녀를 만난 건 2020 KB 그룹 탁상 캘린더였다.


피아노 연주 2018 이수희 작가 작품


파스텔톤 색연필 질감이 봄날의 햇살에 눈이 부시다.

은은한 햇살과 들꽃향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설거지를 막 마치고 나온 엄마가 피아노 앞에 앉으신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대충 문지르고 물기 어린 손을 펴 건반 위에, 자줏빛 도톰한 양말이 덧입힌 발은 페달 위에 얹는다. 단정하게 그러모은 반머리는 차분히 핀으로 꼽아두고 양갈래 개구지게 머리를 땋은 딸과 함께 나란히 건반을 두드린다. 띵띵띵 똥똥똥, 젓가락 행진곡이 행진을 시작하면 피아노를 뒤덮은 들꽃들이 음표를 따라 넘실거리고 꽃술이 흔들리며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댄다. 숲의 정령이 사슴이 되어 기웃거리는 꿈속 한 자락, 빛바랜 추억의 한 장면이 아련히 멀어지는....


에이, 멀어질 추억도 없잖아, 현실에 이런 게 어딨어.

이런 엄마도, 그런 추억도 가져본 적 없는 부러움에 괜스레 입만 샐죽거린다. 너무 아름답게 그렸잖아, 이런 따뜻함이 어딨어, 현실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아. 눈치 없이 자꾸만 뭉클해지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자꾸만 눈이 간다.

누구지 이런 색감과 이런 질감 그려내는 사람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이수희 작가라.. 일명 '초록담쟁이' 그녀가 궁금하다. (이름을 보니 여자겠지?)

그녀는 이런 시절을 보낸 걸까. 이런 감성을 가진 그녀가 또 그걸 표현해 낸 것이 부럽다. 그림이 부러운 걸까 추억이 부러운 걸까. 이 그림들은 그녀의 추억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왠지 추억일 것만 같아 또 입을 삐죽거린다. 참 못났다.


'이런 엄마'는 없지만, 나의 엄마는 있었다.

그림과는 다른, 삶에 지친 우울한 엄마였지만 내게 엄마라는 존재로 있어준 나의 엄마.

파스텔 톤의 엄마를 그리고 싶지만 떠오르는 건 무채색 엄마.

언젠가 무채색의 엄마를 있는 모습 그대로 '나만의 엄마'로 그리고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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