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당신 진짜 미운데, 아버님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용서와 이해란 걸 해보려 해. 남편의 주특기인 화술에 여러 번 농락당했다.
사건의 시작
몇 달 후면 아버님 칠순인데 어떻게 할 거예요?
가까운 친지분들 모시고 잔치로 진행할 건지 가족들만 보여서 간단히 식사로 마무리할 건지 방향을 빨리 잡아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3개월 전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냥 가까운 친지분들 모셔서 간단하게 식사 한 끼 하자, 잔치는 무슨 잔치야.
음, 아버님 서운하실 수 있으니 그래도 한번 여쭤봐요?
남편의 호기로운 장담으로 부모님 계시는 경기도 양수리 근처 한정식집을 찾아다녔다. 주말에 시간을 쪼개 몇 군데 음식을 맛보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차분하게 장소 섭외를 하고 사전 예약을 진행하려는 찰나!
가까운 친지의 범위는 확대되었고 결국 2주에 걸쳐 두 팀으로 나누어 식사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의견.
이건 또 무슨 소리~ 남편은 며칠째 혼자 손님들 명단을 확인하고 인원수 체크를 하며 관심 없는 듯한 나에게 몇 마디 질문을 한다. 여보! 여기 어때 너무 멀까? 그래서 전화는 해봤어? 아니 아직 해봐야지
그렇게 며칠 뭔가를 알아보는 듯하더니 결국 뷔페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툭 한마디 던진다. 그때까지 의견을 보태지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제각각 다른 생각과 의견이 남편의 생각을 뒤흔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운하겠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여보, 오늘 나 마중 나올 수 있어?" "왜?" "OO 호텔 뷔페 가서 음식 맛도 보고 예약도 확인하자"
그렇게 금요일 남편 도착할 시간에 OO 호텔뷔페로 향했다.
들떠 있는 남편 "여보 여기가 여름에 한시적으로 행사 진행을 하는 것 같아, 음식은 맛있어야지"
상기된 남편과 달리 다운된 나는 분위기와 직원들의 성향을 살폈다. 음식 맛을 보는 남편은 예약해야겠다며 매니저에게 예약 상담을 요청했다. 들뜬 남편의 목소리와 달리 사무적이고 딱딱한 매니저는 정확한 인원수와 자리 배치를 설명했고 칠순이고 어르신들이 많으니 안쪽 별도 자리 세팅을 제안한 남편.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매니저. 창가 쪽은 다른 손님이 이용할 수 있도록 왼쪽 벽을 중심으로 중앙까지 세팅해야 한다는 그녀(매니저)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창가 쪽은 다 비워두고 벽 쪽으로 세팅하면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홀 절반을 구분해서 세팅하면 될 것 같은데요" 이해가 되지 않아 의견을 제시했으나 그녀는 완강했다. 창가 쪽을 선호하는 손님이 있어 그건 안 되는 답변만 하고 있었다. 잔뜩 열이 오르기 시작한 남편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추후 연락하겠다고 남편의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의 볼멘소리에 그저 침묵했다.
"비싼 저녁 먹었네" 내 한마디에 철없는 남편 "강남지점도 있던데 거기도 가볼까?"
"꼭 호텔에서 해야 해?" "아니 뭐 그냥 당신도 안 알아보고 딱히 마땅한 곳도 없고, 음식은 괜찮으니까"
"확실히 뷔페에서 하기로 결정된 거야?"
"그럼 잔치가 되는데 상차림 뭐 그런 건 준비 안 할 거야?"
"에이, 그런 걸 왜 해 그냥 간단히 식사만 한다니까, 한정식보다는 뷔페에서 한 번에 끝내자, 그래야 당신도 편하잖아" (뭐냐 갑자기 뜬금 표 그 멘트는 뭐냐, 뭐냐)
그러나, 그 이후 남편은 잠잠했고 더 이상 장소 예약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주말 "여보 뷔페 알아봤어." (내 이럴 줄 알았지, 남편에 대한 예상은 100점 만점에 매번 만점이다)
"오늘 두 군데 방문 예약했어, 음식 맛은 못 볼 거야 그냥 위치, 분위기만 확인할 수 있어"
"뭐야, 음식 맛은 봐야지~" (이 인간을 그냥 죽여야 하나, 일단 참자)
주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뷔페 집으로 향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남편.
뚜벅이가 되어 장소를 찾아 나섰다. 보슬거리던 비는 심한 바람을 동반했고 화가 옆으로 쏠린 사람처럼 비스듬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동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분위기 괜찮은 곳을 찾았고, 적극적으로 예약 상담을 했다.
여기서 잠깐,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남편은 밥만 먹자고 했으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남편은 '툭' '툭' 지나가는 말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할 테니까.
예약 면담을 하면서 상차림, 현수막, 답례품에 대해 문의하는 나를 향해 남편은 "그런 거 안 한다니까 왜 물어봐, 아 저희 그냥 식사만 할 거라 인원수만 맞춰주세요."
"여보, 왜 그래, 그냥 편하게 할 거라고" (이상하게, 금방이라도 야~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푹 꺼진다)
"여보, 행사처럼 하면 노래도 부르고 다 해야 하는데 그거 당신이 할 거야?"
(와, 진짜 이 남자 한 대 치고 싶다.)
집에 돌아와 조금은 심난한 나와 달리 장소 예약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느끼는 남편의 편안한 모습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엄마, 근데 왜 엄마는 걱정이 많아 보여" 다행히 아빠를 닮지 않은 별님이 질문에 씩 웃어 보이며남편이 들을 수 있게 "할아버지 칠순 생일잔치에 손님 모시는데 이것저것 고민할 게 많지, 할아버지 서운하게 하는 잔치는 안 하는 게 좋지, 이왕 할 거면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모습 보고 싶어서 그래"
룰루랄라 남편은 초대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툭' 한마디 던지고 나를 쳐다본다.
"그거 있잖아. 초대장 보면 장소 링크 걸어서 확인할 수 있고" (그래서 뭐~~~)
그렇게 나는 몇 주 앞으로 다가온 아버님 칠순 잔치를 위해 맨땅에 헤딩하며, 전전긍긍이었다. 며칠 동안 밤낮으로 사진첩을 뒤져서 초대장을 만들고 동영상 제작을 하고 (실력은 없지만, 흉내라도 내고 싶은 욕심에) 주말에 올라온 남편에게 사진을 고르라고 했더니 제다 동영상만 보내고 있다. (고구마 몇 개 꾸역꾸역 삼킨 기분)
"여보 그런 거 안 만들어도 돼, 그리고 고생스럽게 왜 직접 해 그냥 업체에 맡겨"
(업체에 맡기는 것도 사진을 골라야 하고 시간이 없어! 이 남자야, 그냥 밥만 먹는다며, 말해 뭐 해!)
"당신 그냥 조용히 해주면 안 돼,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내버려둬"
(할 말 많아 보이는 남편은 웬일로 조용히 소파에 가서 앉는다. 눈치가 영 없진 않네!)
그러나 이어진 남편의 한마디
"여보, 우리 답례품도 하나, 알아봤어" (그냥 팰까?)
"수건으로 알아봤어"
"고급스러운 걸로 해, 수건도 종류 엄청 많은 거 알지 이왕 할 거면 좋은 거, 뭐가 좋은지 모르면 집 근처 OO타월 점 한번 갔다 와 점심때 시간 되잖아"
(어떡하지!! ㅜㅜ)
그렇게 남편의 생각 없는 말 잔치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번 주말 아버님 칠순 잔치가 끝나면,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입을 막아버려야겠다.
3주에 걸쳐 남편과 상관없이 소소하게 이것저것 준비하며 나는 행복했다. 좋아하는 아버님 칠순 잔치를 손수 준비하며 좋아하실 아버님 모습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우리 며느리 생일은 언제야? 다른 사람 생일은 다 챙겨주는데 왜 며느리 생일은 안 챙기는 거냐, 니들은"
언젠가 아버님이 가족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내 생일도 시댁 식구들에게 챙겨야 할 날이 되었다.
챙김을 받아서 좋은 게 아니라 그저 그 마음이 난 좋았더랬다.
꽃보다 멋진 아버님 칠순 잔치 준비 사항
- 장소 예약 완료 (인원수 체크, 음식 체크)
- 초대장 제작 (모바일 초대장 앱을 통해서 손쉽게 가능!!)
- 상차림 완료 (까다롭고 신중하게 업체 선정 ^^)
- 현수막 제작 완료 (여것도 앱을 통해 손쉽지 않게 진행)
- 동영상 제작 완료 (미흡하지만, 어쩔 수 없음, 사진 고르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림)
- 떡 케이크 주문 완료 (당일날 오전 픽업)
- 답례품 준비 완료 (자수 놓고 케이스 맞추고 완벽해 ^^)
마지막으로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 완료 ~
불량 맏며느리가 요 며칠 아버님을 위해 좌충우돌 동분서주 생일 잔치 준비했답니다. 아버님 좋아하는 모습을 그리며 열심히 준비했어요~ 장손에장남 아드님이 참 명랑해요. 아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