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Sep 04. 2024

행복을 닮아간다

느끼는 삶 

제2의 인생을 너무 빨리 맞이한 그대 정신 차리시게!!


"화낼 거 있으면 빨리 화내봐"

무슨 이런 황당한 소리, 듣고 있던 내 귀를 의심하고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 남자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잦은 회식으로 귀가 시간이 늦어진 남편에게 오랜만에 점심은 먹었는지 안부 전화했다. 점심은 복숭아 한 개와 과자로 대충 때울 거라는 남편 말에 그래도 날이 더운데 잘 챙겨 먹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다이어트 중이라는 말에 속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와 한마디 했다.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잔치잖아?"


"화낼 거 있으면 빨리 화내, 내가 다 받아줄게."


뭐 낀 놈이 성낸다고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물었다. 역시나 남편의 대답은 똑같았다. 볼멘소리 할 거라는걸 알고 있었다는 듯 맹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쳇' 할 말 많지만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가족의 일상이 달라지면서 긴 시간 정지되어 있던 나의 미래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심동체, 바늘 가면 실하고 아빠 가면 엄마 가고 부모와 아이들의 행동 범위가 항상 같아야 했던 함께하는 가족이었다.


남편의 지방 발령과 딸의 중학교 입학. 중학생이 되기 몇 달 전 취침 독립을 시작한 딸, 아마도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의 실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 같다.  


꾸깃꾸깃 한방에 옹기종기 모여 잤던 작년 여름이 그리워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침대에서 매미처럼 내 팔에 붙어 있던 아들도 예전에 안방에서 이불 깔고 온 가족이 같이 잤던 기억이 좋았다며 종종 거실에서 함께 잤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딸은 이미 혼자 시간을 만취 상태로 즐기고 있어 불가능한 일이다.


"아빠, 엄마, 누나 다 같이 잤을 때 기억나, 재미있었어."

아직 어린 아들은 특유의 막둥이 애교로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지만 스르르 변해가는 가족의 일상이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채워가리란걸 믿어본다.




남편은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맛나 활어처럼 비상하고 있다. (금방 내려와야 할 텐데 ~)


서울에 있을 때는 운동을 제외하고 집돌이, 가족 울타리 안에 있었던 남편은 특유의 재취와 입담으로 이런저런 모임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저돌적인 추진력에 모터까지 달고서는 즐거움 한도 초과 직전이다.


기억을 거슬러 신혼 초 남편은 차고 넘치는 지인들로 항상 분주했고, 약속이 많았다. 그 많은 약속에 매번 나와 아이들을 데려갔고, 불편한 자리에서 나의 유일한 구세주는 아이들이었다. (그때 나는 왜 따라나섰을까?)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남편은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차츰 개인적인 약속도 뜸해졌다. 운동 외에 개인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다. 야근이 많은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생활방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십여 년 가까이 서울에서 숨 고르기 하던 남편의 활력 에너지는 지방 발령이 촉매제가 되어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새벽 수영을 포기할 만큼 수다 삼매경에 빠져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남편, 종종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했으면 좋으련만, 남편의 시간은 다른 일정으로 꽉 채워져 있다.

마침, 오늘 한마디 하려 했더니 냅다 눈치채고 줄행랑을 친다. 그것도 여유 있게 뒤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15년 결혼생활 남편도 나만큼 노력했고, 나만큼 외로웠을 테다. 언젠가 "만날 사람이 없어"라고 했던 남편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쓸쓸한 그 말이 떠올랐던 건 요즘 남편 목소리에 톡톡 튀는 에너지가 느껴지면서 신혼 초 그때의 그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동떨어지게 즐거워하는 모습에 골이 나서 볼멘소리를 봉지 봉지 쌓았다가 버렸다.


남편은 마치 지금 제2의 인생을 맞이한 것 같다. 남편의 일상 변화가 나에게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오늘만 살 것처럼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계획도 없던 내가 남편을 배제하고 나의 미래를 꿈꾸며 일상을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몰랐던 운동 재미에 빠져 있는 걸 보면 행복도 닮아 가는가 보다. 남편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 운동에 최선이었던 이유를 조금을 알 것 같다. 멀어지니 깨닫게 되는 닮아가는 행복.



한 줄 요약 : 근데 당신 지금 총각 아니다. 적당히~ 적당히~ 지켜보고 있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남편#행복#운동#





이전 13화 꽃보다 멋진 아버지 칠순 잔치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