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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Sep 18. 2024

아빠를 닮은 딸, 쩐내까지 사랑해!

관심받고 싶었던 아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학원을 못 가겠다는 아이, 아침이면 밥 한 공기 뚝딱 맛있게 먹고 등교한 아이가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전화가 걸려 온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그냥 참고 버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당연히 학원도 쉬어야겠지.


학원이라고는 수학학원이 전부인데, 아이는 말한다. 엄마, 누구는 10시 넘어 집에 들어가고 누구는 주말에 학원 가야 해서 만날 수가 없데, "응, 딸 뭐 느끼는 건 없고" "너무 하잖아. 만약에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강요하면 집 나갈 거야" "난 공부 잘하고 싶은 마음 없거든, 대학도 안 가고 싶어" 깊은 공감은 때로는 무한 방목과

혼돈의 회오리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딸은 소파에서 꿀잠을 자고 있다. 세상 힘든 일은 혼자 다 하는 거처럼 퀭한 얼굴을 하고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잠이 든다. 궁금하다 저렇게 자고 새벽에도 잠을 자는 걸까? 새벽에는 내가 잠을 깊이 자고 있기에 알 길이 없다. 다행인 건 아침형 인간인 딸은 그나마 늦잠을 자거나 지각을 하진 않는다. 문제라면 학교를 너무 일찍 간다는 게 문제다. 아마 전날 못한 숙제 때문에 일찍 학교에 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딸의 생활방식은 뭔가 묘하게 꼬여 있다. 그날은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나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불안감이 몰려오는 전화벨 소리. "엄마 나 학원 안 갈래"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려 그냥 안 갈래" 아프다고 하기엔 너무 명랑하고 옥구슬 같은 밝은 목소리. 허락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딸의 당돌함.




내 속은 부글부글 성난 부대찌개처럼 끓게 해놓고 천연덕스럽게 별님이는 꿀잠을 자고 있었다. 별님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 준비해서 밥을 먹였다.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아픈 아이가 아닌 씩씩하고 밥 잘 잘 먹는 아이였다. 별님이가 밥을 다 먹는 걸 보고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왜 학원 가기 싫었던 거야?" "그래도 엄마는 학원 갔을 거로 생각했는데 기분이 썩 좋진 않네"

"그냥 가기 싫었어, 안 다니면 안 돼?" 다짜고짜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선방을 날리는 딸.


"엄마도 너랑 학원 때문에 실랑이하는 거 싫은데, 너를 못 믿는 게 아니고 엄마를 못 믿겠어, 엄마가 이래도 될까? 엄마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 "내 딸 별님이는 믿는데 엄마한테 믿음이 없어 자꾸 화를 낼 것도 같아, 힘들더라도 작은 습관 하나는 가지고 가자" 응? "진짜 싫은데."




그렇게 별님 이와의 대화는 끝난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요즘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냐는 질문에 별님이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버럭 화를 내며 잊고 있던 감정이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씩씩거리는가 하면 깊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동안 혼자 감당해야 했던 마음고생을 양파껍질 까듯 꺼내놓고 있었다. 침착하게 들어 보기로 했다.


학교 축제 준비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친구들과의 마찰로 상처받고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다시 축제 준비에 몰입한 아이가 되어 진행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아니 그 친구는 왜 그랬어, 힘들었지, 지금은 어때, 왜 혼자 그 힘든 걸 도맡아서 해"

"엄마가 너무 속상해, 네가 좋아서 하는 건 알지만, 친구한테 그런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화가나"

"그래서 내가 말을 안 한 거야, 엄마 알면 속만 상하지, 괜찮아 내가 해결할 있어"

"도와주지 않을 거면 딴지도 걸지 말라고 통보했어." "모든 친구가 만족할 순 없잖아."


(사실 저번 주 학부모 면담 때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별님이가 학교 축제 준비로 고생하고 있지만, 워낙 리더쉽과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 잘하고 있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셔서 그저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쌓여가는 이알림(학교 알림톡) 오전에 별님이 알림톡을 확인하고 있는데 '헉, 중간고사' 중간고사라니, 기말고사를 본다고 하지 않았나! 부랴부랴 시험과목을 확인하고 점심시간에 서점으로 향했다. 필요했으면 벌써 사달라고 했을 별님이. '혹 문제집을 전해주면 싫다고 짜증 내려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문제집 구매 후 생각 하기로 했다.


또박또박 정성스레 별님이에게 편지까지 썼지만, 막상 퇴근해서 누워있는 별님이를 보니 문제집 사 왔다는 말이 입속에서만 뱅그르르 돌고 사라졌다. (문제집은 일단 안방으로)


저녁을 먹고 굳게 닫혀 있는 별님이 문 앞에서 문제집을 가슴에 안고 "똑똑"

"딸, 중간고사 본다며, 이거 참고서랑 문제집 엄마가 사 왔는데 풀어볼 테야"

"응, 알았어" 아무런 반응 없이 알겠다고 문제집을 받아 책상에 앉는다. (짜증 낼 줄 알았는데, 순조롭다)


"똑똑" "엄마 잘 건데 인사하자" 다시 문을 열어준 별님이 "엄마 사회가 너무 어려운데"

"뭐야, 문제집 풀고 있었어?" "응, 와 대박 사회 너무 어려워, 근데 엄마 영어도 문제집 있지 않아?"

"어어, 있었지, 너 영어 질색해서 안 사 왔어, 필요해?" "그럼 내일 사 올까?"

 "응, 나 좀 더 풀다 잘게 먼저 자"


(당차게 뭐든지 알아서 척척 했던 별님이를 내가 너무 일찍 독립시켰나 보다. 그동안 관심이 고팠던 걸까?)


그동안 '노터치'를 외치던 별님이가 안아달라며 내 품을 파고들고 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누굴 닮아 척척 하고 살더니 엄마의 작은 관심에 사춘기 안에 똘똘 감춰뒀던 사랑스러움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학교 축제 당일 급하게 오전 업무를 하는 둥 마는 둥, 별님이 학교를 향해 질주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녀올 심산이었지만, 늦을 것 같은 조바심에 심장이 터질 듯 뜀박질을 했다.


별님이가 어제 늦게까지 준비한 부스 앞으로 향했지만 대기 줄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행히 나를 알아본 별님이 친구가 별님 이는 지금 부스 안에서 게임 규칙 설명으로 바빠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살짝 문이 열리는 찰나 스치듯 별님이 얼굴이 보여 만세 하며 손을 흔들어 댔다. 금세 나를 알아보고 밖으로 나온 딸.


"엄마" 한 마디에 느껴지는 별님이 감정. 송골송골 얼굴에 맺혀 있는 땀방울, 땀으로 축축해진 머리, 별님이를 힘껏 안아줬다. "딸 머리는 감아야겠다"

"아, 엄마 바빠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래" 

"알아, 사랑스러운 우리 딸 쩐내"


"뭐래, 얘들아, 인사해 우리 엄마야"

 

급하게 인사하고 다시 부랴부랴 뜀박질로 회사 복귀. 다행이고 감사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뿌듯했다. 오늘은 학원을 쉬라고 해야겠다. 



PS

학부모 면담 시 담임선생님 말씀 : 별님이가 공부에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어머님이 공부는 그냥 기본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엄마가 자기를 너무 믿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주신 건 정말 잘하셨는데 공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관심과 신경과 믿음의 적절한 배분 앞으로 내가 해결해 가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별님이가 준비한 축제 부스 (제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한 줄 요약 : 여보, 별님이 너무 터치 안 하는 거 아냐? 자기야, 별님이 누구 닮았어? "아, 나 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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