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망태 남편은 겉모습만 보면 뜨거운 국물을 그릇째 벌컥벌컥 들이키고 매운 고추를 웃으면서 씹어 먹을 것처럼 생겼다. 모이 칸(짧은 머리)에 그보다 더 강한 어투 하지만 남편은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한 김 식히고서야 숟가락을 드는 점잖은 사람이다. 청양고추는 냄새만 맡아도 질색하고 먹음직스러운 김치는 총총 썰어 한입에 쏙 먹을 수 있어야 거부감 없이 먹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하고 , 얼큰하고 알싸한 매운 맛이 느껴져야 온몸에 엔돌핀이 피어난다. 김치는 쭉 찢어 김이 모락 모락한 밥에 척 얹어 먹어야 하는데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면 그 기분을 잠시 접어 두고 총총 한입 크기 김치로 만족해야 한다.
종종 우리 부부는 늦은 나이에 만나 서로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서로의 이상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조금만 젊었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넌 내 이상형이 아니었어"란 말을 한다.
남편과의 첫 만남은 포장마차, 눈에 띄는 빨간색 배드민턴 가방을 들러업고 헐렁한 추리닝에 발꼬락이 휑하니 내밀고 있는 쪼리 신발을 질질 끌고 포장마차에 있던 우리를 보고 아니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친구를 보고 포장마차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야, 뭐하냐, 둘이 왜 술을 마셔?" 예의도 없이 불쑥 한마디 던지더니 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이 늦게 온 거처럼 동근란 의자를 끌어당겨 덥석 주저앉는다.
'불쾌했다'
몇 번 좋지 않았던 사건들. 그의 무대 포식 행동이 언짢아 얼굴을 찌푸리고 싫은 내색을 했지만, 눈치가 없는건지 안주를 낼름 입속으로 가져가더니 목이 탄다며 맥주까지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시원하다" "왜 그래요 얼른 드셔" 멍하니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나를 보고서는 얼른 드시란다. 어이없는 상황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필시 내가 남의 술자리에 낀 거마냥 주객이 전도 되었다.
그의 등장으로 조곤조곤했던 분위기는 금세 대환장 파티처럼 왁자지껄하게 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싱글벙글 신나게 웃고 있는 이상한 남자.
"형 인사해 내 친구야, 회사에서 몇 번 보긴 했지?" "아 너랑 친구야, 그럼 나랑도 친구지"
(친구의 의미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우리 몇 번 봤어, 주차장에서 잡상인인 줄 알고 내가 차 빼라고 했지, 혹시 기억하세요?"
"네" (퉁명스럽고 짧게 대답했다.)
"그땐 미안했어요, 그곳에 주차하면 A/S 차량 진입이 힘들거든요"
"수시로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 주차해서 어쨌거나 상황 설명 없이 무턱대고 차를 빼라고 해서 미안했어요." 깜빡이 없이 들어온 그의 사과에 그날의 무례함이 다시 밀려왔다. 더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넉살로 인해 나는 주저앉아 있었고 점차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는 나의 속삭임에 그는 언제 가면 좋겠냐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사람 묘하게 끌린다.
몇 달 후 겨울 바다를 보러 가자며 걸려 온 그의 전화, 우린 겨울 바다를 향해 떠났다. 그날 그는 헐렁한 추리닝에 발꼬락이 날름거리는 쪼리가 아닌 번듯한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향해 미소를 쏘아대고 있었다.
식성도 좋아하는 음악도, 옷 입는 취향도 뭐 하나 닮지 않았던 우리는 어느 순간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닮아가고 있었다. 살다 보니 천생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