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Oct 02. 2024

나는 갱년기를 임테기로 확인했다.

설렘만으로 행복했다.

며칠째 소화가 안 되더니 헛구역질까지 한다. 옷깃만 스쳐도 욱신거리며 찌릿찌릿한 가슴 통증이 느껴지는가 하면 아랫배가 거북하게 딱딱하다.


"여보, 나 좀 이상해, 꼭 임신한 것 같아"

"에이, 무슨 소리야"

"진짜야, 임신 초기 증상이랑 똑같아!"

"...."

"왜 말이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임신 초기에 느껴지던 몸의 이상 신호에 살짝 긴장과 설렘 걱정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지금 셋째를 낳는다면? 우리 부부는 얼토당토않은 미래가 현실이된 거처럼 셋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임신이면 어떨 거 같냐는 질문에 남편은 로또를 사야겠다며 씰룩씰룩 얄밉게 웃는다. 아이는 우리에게 축복이었지만, 육아 전쟁은 쉽지 않은 시간과 체력 싸움이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냐는 질문에 남편은 그때는 경험도 여유도 없었기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며칠이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던 몸은 여전히 찌릿한 통증을 동반했고 얼굴이며 발이 퉁퉁 부어 마치 살이 토실토실 오른 사람 같았다.




주말 아침잠을 설쳤다는 남편은 임신테스터기를 사 오자고 성화다. 당신 꽤 자신 있나 봐? 

서로 멋쩍은 웃음을 뒤로하고 집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0%의 가능성도 없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왜 그리 설레 던지, 우리 부부는 신혼부부처럼 두 손 꼭 잡고 약국으로 향했다. 더벅머리 청춘남녀가 되어 쑥스러움에 까끌까끌한 말투로 임신테스터기를 달라고 했다.


손에 결과지를 들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한참 머뭇거렸다. 용기도 없으면서 선물을 원했던 걸까? 솜털 같은 우리 바람은 상상으로 끝이 났지만, 남편은 잠시 행복했다고 한다. 둘째를 낳고 일과 육아로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나와 달리 철부지 남편은 셋째를 원했었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에 남편도 포기했었다. 집 근처에 친정 식구건 시댁 식구건 급할 때 육아를 부탁할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었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셋째를 낳았을지 모른다. 


"여보, 별님이랑 달님이 잘 키우자!"




임신이 아닌 걸 확인하고 가까운 산부인과에 갔다. 잦은 헛구역질과 가슴 통증, 이유를 알기위해 내키지 않았지만,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의사는 알 수 없는 능선이 그려진 지수 그래프를 가리키며 꽤 높은 수치의 갱년기란다. 아직 나는 풋풋한 소녀 감성인데 몸은 늙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몰려왔다. 며칠 전까지 설렜던 마음이 얄궂게도 서글픔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크게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멍청이'


꽤 오래 지속되었던 몸의 작은 변화와 증상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예민함과 저질 체력을 탓했던 나의 무지 속에서 피어났던 작은 설렘은,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게 했었다. 지금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예쁠까?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멍청이'


"여보, 그래도 난 여전히 당신이 사랑스러워 당신이 나한테는 막내딸이야."

"운동 더 열심히 하자"


갱년기를 운동으로 극복하자는 남편이 얄밉지만, 건강하고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줄 요약 : 갱년기는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생각한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갱년기#임신#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