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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27. 2024

2-6 지식의 저주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 가장 쉽게 속는다고 말했다. 돈을 벌 때만큼 행복한 인간은 없다. 상승장이 오래 지속될수록 인간은 더 큰 행복을 원한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갈망하지만 또 어느 소속에 들어가길 강하게 원한다. 돈을 벌게 해주는 뛰어난 리더가 존재한다면 그를 추종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는 인상 깊은 대사가 있다. 고함한번 치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동막골 촌장은 이렇게 답했다. 

“뭐를 많이 멕여야지 뭐” 

지식의 저주


 존 메리웨더는 살로만 브라더스에서 근무했다. 채권 차익거래 팀을 이끌었고, 수 억 달러를 회사에 벌어줬다. 그는 채권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살로만 브라더스에서 단연 최고 스타였다. 존 메리웨더는 자신의 보스 존 굿프렌드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감에 의존했던 존 굿프렌드와 달리 존 메리웨더는 수학적 모형을 금융시장에 대입하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존 굿프렌드가 무능하지는 않았다. 그도 채권 트레이딩 계의 전설이다.)


 1987년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블랙 먼데이”가 발생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마비되는 패닉이 일어났다. 겪어보지 못한 충격에 금융시장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존 굿프렌드는 주식 시장이 1929년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식과 상대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채권을 대량 매수했다. 하지만 존 메리웨더는 이성적이었고 침착했다. 그는 블랙먼데이가 발생하자 30년 만기 채권을 매도하고, 그보다 3개월 전에 발행된 채권을 매수했다. 같은 30년 장기채지만 3개월 전에 발행되어 값이 상대적으로 싼 채권으로 갈아탄 것이다. 금융 시장은 곧 안정을 되찾았고 존 메리웨더는 이 투자로 1억 3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존 메리웨더는 모종의 사건으로 살로만 브라더스에서 해고됐다. 후에 살로만 브라더스는 그를 다시 불렀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1994년 살로만 브라더스에서 자신이 이끌던 팀과 롱텀 캐피탈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함께 설립한 멤버 중에는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슐즈도 있었다. 이들은 롱텀 캐피탈에 재직하던 1997년 블랙, 슐즈 모형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블랙, 슐츠 모형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주가의 수익률이 정규분포에 따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오른 것은 내리고, 내린 것은 오른다는 평균 회귀 법칙을 기반으로 한다. 


 사실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지만 그 원리는 비슷하다. 롱텀 캐피탈 거래 방식도 이 모형에 맞춰서 이뤄졌다. 상대 가치 거래에서 집중됐는데, 만기가 동일한 두 국채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수익률이 더 높은 국채를 매수하고, 수익률이 낮은 국채를 매도하는 방식이다. 국채의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국채의 가격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더 이해하기 쉽게 주가로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만약 12월 31일 주가를 맞추는 옵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주가가 떨어진 주식을 매수하고, 주가가 오른 주식은 매도했다. 시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상적인 상태로 회귀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투자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롱텀 캐피탈의 수익률은 엄청났고, 그 인기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모든 은행을 비롯한 펀드는 롱텀 캐피탈과 거래하고 싶어했다. 월가에 있는 거의 모든 주요 회사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다. 불과 4년이 흐른 1998년 롱텀 캐피탈 펀드 자금은 1천억 달러가 넘었으며, 파생상품은 1조달러가 넘었다.


 이들이 신봉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는 변동성만 리스크로 여겼다. 과도한 레버리지와 유동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변동성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어떤 금융 위기에도 롱텀 캐피탈의 거래는 안전함을 확신했다. 롱텀 캐피탈의 레버리지 비율은 1996년 이미 30배를 넘어섰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여러 국가로 전염병처럼 옮겨 다녔고 엄청난 자산들이 헐 값에 던져졌다. 통화 가치도 무너졌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는 롱텀 캐피탈은 아시아 위기로 커진 변동성을 노려 주요 시장 변동성 옵션에 공매도를 했다. 하지만 이 위기는 곧 러시아로 번졌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유가는 크게 떨어졌고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변동성은 더 크게 확대됐다. 그들은 변동성이 회귀할 것이라 확신했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 일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엄청난 레버리지 자금이 투입됐다. 러시아 경제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고, 국채는 헐 값이 됐다. 이들은 러시아 국채가 정상화되는데 투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IMF의 긴축 정책을 받아드리지 않았고 결국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러시아 국채 가치는 쓰레기로 변했다. 1996년 30배에 달했던 레버리지는 어느새 100배까지 커졌다. 이들은 가진 자산을 매각해서 증거금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말라버린 유동성 탓에 매각도 쉽지 않았다. 롱텀 캐피탈은 말 그대로 파산 직전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시장의 정상화는 롱텀 캐피탈이 파산한 뒤에나 이뤄졌다. 


 러시아 모라토리움은 예측 불가능 했던 블랙스완이다. 블랙스완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롱텀 캐피탈은 무너졌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블랙스완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다. 그들이 만든 수학적 모형에 지나친 확신을 가졌던 점, 레버리지와 유동성은 무시한 채 변동성 계산에만 의존했던 점 등 그들이 가진 지식이 잘못된 확신을 불렀고, 이는 곧 파산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이어졌다. 롱텀 캐피탈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롱텀캐피탈이 파산하고 나서도 경영진은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롱텀 캐피탈의 설립자였던 존 메리웨더는 롱텀 캐피탈 파산 후 JWM파트너스 펀드를 설립했고 롱텀 캐피탈에서 했던 방식의 투자를 똑같이 했다.  2009년 서브프라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그의 이름을 딴 JWM파트너스는  파산했다.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는 <<스킨인더게임>>에서 테일리스크에 관해 언급했다. 테일리스크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일리스크란 정규분포의 끝자락 즉 꼬리 쪽에 위치한 리스크로 거의 일어나지 않는 변수를 뜻한다. 롱텀 캐피탈은 정규분포에 따른 평균회귀 법칙을 이용해 거래했고, 테일리스크를 무시했다.  


 롱텀캐피탈의 사례는 아무리 어려운 수학 모형을 사용해서 최적의 거래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확신을 가지면 얼마나 큰 대가가 치러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꼭 학자들만 이 같은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우매함에 봉우리라 불리는 더닝 크루거 효과가 그렇다. 많이 알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알게 되지만, 어설프게 알수록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과 뜻이 같다. 


상승장에서 버블장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너도나도 전문가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주식 시장에서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더 전문가에 걸맞은 자격조건이 뭐가 있겠는가? 상승장에서는 누구나 돈을 잘 벌기 때문에 모든 이가 그때만큼은 전문가가 되는 게 꼭 틀린 말은 아니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던 뛰어난 언론인 윌터 배젓은 배젓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가치의 담보를 보유중인 은행에 자유롭게 대출을 허가하고, 징벌적 이자율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 가장 쉽게 속는다고 말했다. 돈을 벌 때만큼 행복한 인간은 없다. 상승장이 오래 지속될수록 인간은 더 큰 행복을 원한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갈망하지만 또 어느 소속에 들어가길 강하게 원한다. 돈을 벌게 해주는 뛰어난 리더가 존재한다면 그를 추종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는 인상 깊은 대사가 있다. 고함한번 치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동막골 촌장은 이렇게 답했다. 


“뭐를 많이 멕여야지 뭐” 


 리더십을 논할 때 이만큼 알맞은 정답이 또 있을까 싶다. 상승장에는 촌장과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여러 곳에서 수익을 인증하고, 주식 종목을 적당한 이유를 붙여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상승장에서는 이들의 말이 대부분 맞아 들어간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만, 적중률이 높으면 추종하게 된다. 이제 추종자들은 자신을 리더에게 투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집단화가 되면 더 이상 개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자신의 저서 군중의 망상에서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이 눈앞의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깊이 간직한 신념이 사실과 다르면, 그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럴 때, 새로 입력된 정보를 받아들여 고통받기보다는 그것을 배척하는 편리한 방식을 택한다. 페스팅거가 말했듯, "그 신념 체계가 옳다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으려면, 결국 그것은 옳아야만 한다.”


하이먼 민스키는 인간이 대체로 보잘것없는 통계적 직관을 가졌다고 말한다. 전문가도 예외 없이 말이다. 합리성보다 합리화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누군가 리더로 나서 자신을 이끌어 준다면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19세기에 군중심리를 저술한 귀스타브 르봉이 말했다. 


“군중은 사상가가 아닌 행동가에게 끌린다”

 

 주식 시장에 관해 바른 말을 하는 대가들은 결국 사상가다. 당장 자신의 처지에 대입하기 어려운 투자 방식은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는 이가 있다면, 비록 그 방식이 옳지 않거나, 다소 과격하고 충동적이라 해도 군중은 그를 따른다.  그들에게 리더의 생각이 곧 자신의 생각이 된다. 즉 자신이 추종하는 자의 이론이나 가설이 무너지면 그들도 무너진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의 신념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그들은 어느 순간 한 종목에 매몰된다. 리더는 점점 더 자신의 역할에 몰입된다. 더 높은 수익률, 더 빠른 급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리더는 알지 못한다. 세상이 좋았을 뿐이고, 단지 운이 좋아 좋은 시기를 만났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시절에 많이 벌었다고 하더라도 쌓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급변하는 시장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리더는 잘못된 확신 때문에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경험도, 실력도, 지식도, 내공도 부족했던 리더는 단 한 종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도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종목에 잘못 투자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다.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승장에서 리더와 같이 행동했던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물론 시기가 좋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그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 수익률 대비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수익을 거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과정이 좋지 않았던 좋은 결과는 결국 허상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기 혐의로 구속됐던 이희진은 비상장 주식을 대상으로 사람들에게 사기행위를 벌였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사기에 이용했던 종목 중에 상장해서 크게 오른 종목도 있다. 결과가 좋았다고 그에게 감사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이론에 매몰되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추종할 때 반드시 과정을 살피고, 나의 이론도, 내가 추종하는 사람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재미있는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의 내용은 이렇다.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 신을 믿는다면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신이 존재하는데 신을 믿는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 신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는데 신을 믿지 않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블레즈 파스칼은 신을 믿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투자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얻는 정보가 사실일 때 그 정보를 믿는다면 이득이 될 수 있다. 또 믿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반대로 정보가 거짓일 때 정보를 믿는 것은 손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정보를 믿지 않는다면 손해 볼 것이 없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타인이 주는 정보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나의 첫번째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컴퓨터나 거울, 아니면 침대 옆, 혹은 자주 다니는 장소에 다음 문구를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을 갖자. 분명 도움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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