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인간을 매뉴얼에 따라 간단한 기계적 반응을 보이는 세탁기처럼 취급하는 현대 생활의 한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만들어낸 용어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사물로부터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체계적으로 제거해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모든 것들이 편안함, 편리함, 효율성을 위해서 진행된다.
나심니콜라스 탈레브는 자신의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자신이 만든 신조어 몇 개를 소개한다. 이 장의 주제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역시 그가 만든 신조어다.
발음하기는 어렵지만 풀이하기는 쉽다.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여행전에 모든 상황을 통제아래 두기 위해서 사소한 것까지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을 가기 위해 그곳의 정보를 세세하게 공부하듯이 알아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고 이는 곧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실패가 없고 대단히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에서는 일찍이 이를 상품화하여 패키지로 내놓았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세세하게 미리 알아보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대단히 상식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굳이 이를 신조어로 만든 것이 이 책의 제목이 안티프래질이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 역시 저자가 만든 신조어인데, 쉽게 풀이하자면 스트레스에 내성을 가져 쉽게 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일정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사람보다 스트레스에 내성이 있다는 의미다.
죽지 않을 만큼의 독을 소량 꾸준하게 섭취하면 독에 내성이 생기는 만독불침도 일종의 안티프래질이다.
PTSD로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최근 널리 알려졌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심리학적 반응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어봤다. 실패가 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너무나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완벽한 계획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긴다면 작은 균열이 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에 내성이 적기 때문이다.
낯선 여행지를 여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맛집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서 왔고,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곳부터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여행지에서 집단 파업이 일어났고, 주요 식당 모두가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가고자 했던 식당이 문을 닫게 됐다.
계획을 틀어졌을 때 스트레스에 내성이 없는 사람은 멘탈이 붕괴되어 다음 행동을 쉽게 이어가지 못한다. 세세한 계획이 없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응 하지만, 계획을 세세하게 세웠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예시를 보고 비약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세세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어떤 불멸의 조건을 충족하려는 것과 같다. 즉 계획에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여행에 진정한 재미를 일정부분 포기하면서 대신 안정성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저점을 높이고 고점을 낮추는 안정형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다소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하향 평준화와 같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극도로 꺼리고, 이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필연적으로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사람과, 극도로 꺼리며 애써 무시했던 사람은 불확실성을 마주했을 때 대응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스템적으로 이를 개입해 막으려고 하지 말고, 예측에 의존해서 행동하지 않으며 일정한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팬이다. 번역되어 한국에 출간된 그의 모든 저서를 여러 번 읽었다. 지금도 가끔 혹시 신간이 출간됐는지 확인하려고 그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그의 모든 책이 나의 투자관을 관통하지만 특히나 안티프래질은 나의 투자관 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삶에도 울림을 주었다. 그가 말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나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앞서 포스팅한 글에서 말했지만 나는 투자를 책으로 배웠다. 투자 관련 도서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책에서 투자를 배웠다. 어떤 것을 읽어도 공통되는 맥락이 있었고, 그것이 나의 투자 철학을 세우는데 도움을 줬다. 이 공통된 맥락이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어느 곳에 접목을 해도 들어맞았다. 그것이 투자든 인생이든 말이다.
나는 투자를 배우면서 인생도 배웠지만 어쩐지 투자에서는 쉬웠던 것이 인생에서는 쉽지 않았다.
투자자인 나와 현실속의 나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현실속의 내가 저자가 말한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모습일지라도 쉽게 바꾸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곳을 방문하기전에 충분히 조사를 하고 계획한 뒤에 행동할 것 같다. 하지만 투자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이 주제에 적극 공감한다.
내가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 나는 투자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종목을 발굴하는 공식을 찾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공식은 언제 대입하든 같은 결과값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한 방법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어느 때에는 꽤 잘 들어맞더라도 틀릴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투자에서 계속 정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결국 투자 시장은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고, 이제는 정답을 찾기 보다는 대응을 하기로 했다.
결국 더 많은 것을 벌기보다는 더 적은 것을 잃기 위한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인생도 투자도 계획한대로, 내가 짠 시나리오대로 되지는 않는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형 투자자는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시장의 변덕에 내성이 적다. 좀더 열린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