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이제 그대는 제일 먼저 세이렌 자매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간을 유혹하지요. 무심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사람은 아내와 자식들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세이렌 자매는 풀숲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당신을 유혹할 텐데, 자세히 보면 그들 주위엔 썩어 가는 남자들의 뼈가 무수히 흩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재빨리 그들의 곁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꿀처럼 달콤한 밀랍을 잘 이겨서 동료들의 귀를 막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세요.
그러나 그대는 원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돛대에 기대어 손발과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야 합니다. 그대가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를 듣고 동료들에게 풀어 달라고 애원을 하게 되면 더 많은 밧줄로 동여매라고 얘기해 두세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던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는 모험과 시련을 담은 대서사시다. 그가 쓴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고전 중의 하나다.
하데스의 지하세계에서 나온 오디세우스는 오케아노스 강을 따라가다 아이아이 섬에 닿았다. 그곳에서 만난 요정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선원들에게 앞으로 가장 먼저 세이렌 자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세이렌은 현재 우리가 위험을 경고할 때 듣는 "사이렌"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들의 노래는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그 유혹에 넘어간다면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에게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귀를 막아 노래를 듣지 않거나, 몸을 묶어 유혹당하지 않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고, 자신의 몸은 돛대에 단단히 묶게 했다.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혹당한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선원들은 오히려 그를 더 단단히 묶었다. 이렇게 그들은 무사히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투자자로 살다 보면 시장에서 보내오는 수많은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곤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두려움과 욕심에서 비롯된다. 두려움은 기회를 잃게 하지만, 욕심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마케팅 용어였던 이 단어는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들어 구매를 자극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투자 시장이 호황일 때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모든 종목이 상승하는 좋은 장에서 나 혼자 돈을 벌지 못한다는 소외감은 어쩌면 욕심이 아닌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이 감정은 조급함을 불러일으키고, 이성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이미 많이 오른 자산에 투자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 시장에는 “더 큰 바보 이론”이 있다. 내가 얼마에 자산을 매수하든 상관없이 나보다 더 큰 바보에게 더 높은 가격에 팔면 된다는 이론이다. FOMO에 휩싸인 투자자들은 흔히 이 이론에 의존한다.
사실 이런 감정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 인간은 집단에서 멀어질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집단에서의 소외는 곧 죽음을 의미하던 시대의 경험이 DNA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상승장에서 나만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두렵고 억울한 일이다.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워런 버핏은 "가장 큰 투자 실수는 높은 가격에 매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도 높은 가격에 사면 좋은 투자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DNA에 새겨진 FOMO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감정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키르케의 조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이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귀를 막고, 몸을 묶는 것.
실제로 귀를 막고 몸을 묶는 대신, 가장 좋은 방법은 보지 않는 것이다.
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땐 잠시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SNS와 커뮤니티가 발달한 현대 환경에서는 FOMO를 느낄 만한 자극이 많다. 정보를 선별해서 확인해야 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익 인증 글을 찾아볼 필요가 없다. 복잡한 솔루션 대신, 그저 참고 인내해야 한다.
“도음 안 되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현명한 사람과 사귀는 것과 같다.”
-알리 빈 아비 탈레브-
불교에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만의 시절인연을 기다려야 한다. 억지로 때를 만들려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인내하며 기다리면 훌륭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동시대인들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알아챌 만큼, 그러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을 만큼 독립적인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일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결국에는 끝이 난다. 가장 쉬운 투자는 가치가 싼 것에 투자하는 것이다.
비싼 가치에 이끌리고 있다면, 키르케의 조언을 되새겨보자.
귀를 막고, 몸을 묶는 것.
오디세이아 -호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