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부모와 자식때문에 머리가 아픈 마지막 세대가 되기를
이렇게 더웠던 추석 명절이 있었을까?
추석명절이 기억나는 시점은 언제부터 였을까?
아마도 명확한 기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는 고등학생 때 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여렴풋이 기억이 있기는 하다.
엄마 손을 잡고 갔던 동네 시장 (그때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장을 도깨비 시장이라고 했다),
좀 더 큰 곳은 지금도 있을텐데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우림시장인데 그곳도 기억이 난다.
순대를 먹었고 운좋으면 같은 반 친구 어머니가 했던 작은 포장마차에 핫도그도 먹을 수 있었다.
포장마차 핫도그 번외 이야기를 하자면,
그 포장마차 핫도그 집 친구도 아직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한테 학교에서 자기 엄마가 시장에서 핫도그 파는거 이야기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고, 난 맛있는 핫도를 매일 먹을 수 있는데 왜 그러지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보다 내가 정말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 이후 겨울이 막 시작될 무렵 불우이웃 돕기를 했었는데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은 그 친구를 불러 모인 성금을 전달하며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반 아이들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증후군 같은 것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담임이 조용히 불러 줬으면 아니면 애한테 돈을 맡기기 불안했다면 그 친구 어머님을 불러서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담임이 우리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돈의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그렇게 믿을 수는 없지만.
명절은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꼬까옷, 명절 때만 탈 수 있었던 택시 (그 택시를 타고 큰 집에 갔다),
그리고 또래의 친적들을 만나 뛰어놀았던 기억, 무엇보다 소고기 산적, 화려하고 윤끼나는 전의 색생들,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매번 외국에 돈 벌러 나가신 아버지가 없는 명절이기는 했는데 그 기억이 가슴속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걸 보니 난 태생적으로 불효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명절은 자본주의다. 나의 기억에서 명절이 또렷히 기억나는 시점이 고등학생 때라는 것이다.
그 전까지 친척들이 주는 돈은 엄마의 몫이였고 그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그 몫이 나에게 온전히 전달된 시점이 바로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명절이 되면 나에게 예상되는 수입과 그 수입에 따른 지출이 머리속에 떠오른 시점이다.
그 이후로도 명절은 불행보다는 행복이었다.
대학교 때까지도 용돈을 받았고 입사 초기에는 몇일 푹쉴 수 있었고
(현대 있을 때는 금강산 사업 때문에 국감기간 전 추석은 매일 출근했기는 하지만)
신문, 뉴스에서 명절에 나오는 끔찍한 이혼, 가족간 다툼, 교통혼잡 귀성 같은 것도 없었다.
결혼하고도 명절은 불행보다는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다.
약간 집사람과의 다툼이 있기는 했는데 기억 속에는 좋은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어릴 적 명절에 행복했었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고 어느 집도 불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추석은 몇 해전부터 온전한 명절이 되지 못하기 시작했다.
애들 중간고사로 인해 가족 모두가 함께 하지 못하는 추석이 반복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사시면 얼마나 사실 것이고 앞으로 추석 명절을 맞이하면 몇 번이나 맞아하겠냐,
그리고 하루 이틀 공부 안해서 시험을 망칠 것 같으면, 그런 실력이면 공부로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항변해 봤지만 엄마들과 아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추석 명절, 가뜩이나 더워 명절 같지도 않은데
양가 부모님 모두 아프시다. 처가 쪽은 폐차할 만큼 심각한 교통사고로 입원을 우리 집은 어머님이
오른쪽 다리 신경에 문제가 있어 걷지를 못하신다.
큰 애는 고 3이고 둘째는 중 3이고 둘 다 입시다.
명절이 고통이다.
부모님은 아프시고 아이들은 입시인 올해 머리가 아프다.
속상하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해도 답이 없다.
종합병원 응급실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의료 대란에 이 정부에 대한 적개심이 더 커진다.
의료선진국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이제 아파도 운이 좋아야 하고 운이 좋아도 생명은 항상 불안한 상황이다.
이번 명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소고시, 택시, 꼬까옷 이런 행복을 지금은 다 쉽게 가질 수 있는데
불행하기만 하다. 다 가지고도 불행한 명절. 앞으로 명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