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Sep 21. 2023

나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기에

베풀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참으로 애틋하게 마음 가는 동생이 한 명 있다. 수험기간 첫 해에 체력학원에서 만난 그는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학원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꽤 강렬했다. 항상 밝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어색함 없이 대하는 MBTI로 치자면 극 E의 성향을 가진 친구였다. 나도 E이지만 소위 말하는 내가 그의 앞에 서면 '기가 빨릴' 정도였다. 특유의 밝고 매력 있는 그 친구가 나는 쏙 마음에 들었고, 마지막 시험까지 함께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운동하러 가기가 참 싫다. 나도 그런 마음이 수 천 번은 더 들었다. 하지만 합격이 너무도 간절했기에 무엇 하나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늘 동생 집 앞으로 차를 끌고 가 체력학원에 같이 다녔다. 나는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둘은 다음 해 상반기 시험 1차에서 떨어졌고, 그 해 하반기 시험에서 나 홀로 붙고 말았다.


괜히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조금 더 단단히 잡아줘야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필기 1차 합격 후 동생이 전화가 왔다.


"행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거의 평생을 키워주시다시피 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 뭐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동생은 울면서 내게 말했다.


"아...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할머니께 합격하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행님 말 들을걸... 후회됩니다 형님..."


같은 수험생활을 할 때 나도 잘 못하지만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줬다. 필기합격 이후로도 조언을 했지만 그때는 잘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를 잘 모시고 돌아온 동생이 내게 바로 찾아왔다.


"행님, 행님 공부법 다 알리주이소. 제가 똑같이 딱 따라 해 볼께예"


"그래, 잘 생각했다. 시험까지 넉 달정도 남았으니까, 꼭 될끼다. 해보자"


그 길로 바로 집으로 가 메모장과 펜을 들고 왔다.


두 시간 정도에 걸쳐 대부분의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이후로도 계속 전화통화를 하며 중간중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다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의 소방학교 입학 이후 치러진 필기시험에서 동생은 무사히 통과해 합격했고, 공교롭게도 나와 비슷한 점수를 받아내었다. 


면접을 준비하던 그의 밝은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동생은 면접을 조금 알려줄 수 없냐며 스터디룸에 나를 초대했고, 그곳에는 많은 수험생들이 있었다.


"야... 이렇게나 많이... 되겠냐?"


"예, 행님, 한 번 시원하게 말씀 좀 해주이소"


"어... 어..."


면접 공부를 한 지가 조금 지나 제대로 알려줄 수 있겠나 싶었는데, 다행히 약간의 팁을 알려주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마 내가 준비할 당시 너무 어렵게 준비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후 이 동생은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고 내가 근무하는 소방서로 발령받아 왔다. 집도 우리 집 옆동에 얻어 마주칠 때마다 커피 한 잔이라도 꼭 사며 이런 말을 한다.


"행님, 수험생 때 행님도 힘든데, 대리운전 해가면서 저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다 했자나예, 이제 제가 많이 사드릴게요"


이렇게 말한 지 벌써 5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한 결 같다.


그리고 여담으로 면접 때 도움을 주었던 수험생들이 소방관이 되어 기억도 안 나지만 가끔 인사를 해 준다. 그럴 때마다 참 뿌듯하다.





나는 늘 살면서 내 인생이 내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것조차도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베풀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꺼지지 않는 불을 찾아다니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불을 꺼 보려고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않고 손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 25화 수능 8등급, 8등으로 소방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