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 BGM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몇 해 전,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소방청에서 바꿔준 Classic BGM이다.
지령서상으로 봤을 땐 크게 위급해 보이지 않았다. '다리 부상, ○○공장', 사이렌을 힘차게 울리며 차고지를 빠져나갔다.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을 뚫고 가기 위해 사이렌 볼륨을 조금 더 키우고, 메인보다 훨씬 큰 보조 사이렌까지 동원해 천천히 차체를 움직였다.
광장(교차로)의 3분의 1 즈음을 빠져나가던 그 순간 은색 승용차가 구급차 앞 범퍼에서 겨우 멈췄다. 잠시 주춤하던 순간을 놓칠세라 횡단보도 위에 서 있던 시민들은 황급히 뛰어 보도 위에서의 남은 보행을 마친다. 마치 골목길 중간 어귀에서 차를 만나면 물러나지 않고 차량 앞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것에 관해 한 심리학자가 말씀해주신 것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난다.
간신히 교차로를 빠져나온 나는 다시 한번 힘차게 내달렸다. 가벼운 부상이든 큰 부상이든 현장으로 달려가는 속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에 도착해 만난 환자의 첫인상은,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변형이 관찰되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골절이 의심되었다. 주처치를 하는 대원들을 보조하며 주변상황을 살펴보니, 하역장에서 커다란 구조물이 쓰러져 남자를 덮친 상황이었다.
환자를 최대한 안심시키며 손상부위를 고정한 후 들 것 위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현장에 나가면 보호자와 환자에 집중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2차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현장안전을 담당해 줄 필요가 있다.
'주들것'을 끌어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약 20여 미터 정도 되는 거리라 덜컹거리는 환자의 신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런데 몇 미터 못 가 코너를 돌기 위에 주들것과 함께 몸을 돌리는 순간, 커다란 짐수레가 내 앞을 막아섰다.
'분명히 없었던 건데...'
짐수레를 옮기자니 여의치 않았고, 살짝 피해 몸을 틀면 이동이 가능할 것 같았다. "잠시만! 앞에 짐수레! 천천히 갈게!" "네 반장님!" "자~ 천천히, 천천히"
"악!!!!!!!!!!!!"
그만... 100kg가 넘는, 사람까지 타고 있는 주들것의 바퀴 하나가 내 발가락을 올라타고 말았다.
안전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100번 조심해도 한 번 날 수 있는 것이 안전사고다. 잠시 멈추고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몇 초 안 되어 통증은 가라앉았고 환자 이송도 별 탈없이 마무리되었다.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고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보니, 구린 냄새와는 다르게 나의 발가락은 매우 양호해 보였다.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게 꼬시다고 놀리는 것 같았지만, 다행이다!
사이렌을 끄고, 조용히 센터로 복귀하는 길에 오늘의 잔상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시 멈춤
그래, 바로 잠시 멈춤이다.
교차로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피해서 통과하려고 하기보다는 멈추는 것이 안전하다. 이러한 작은 실천은 자신의 교통사고 예방은 물론 위급한 환자의 골든 타임을 지켜줄 수 있다.
작업장 내 사고 시에도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책임자는 즉각 일대의 모든 작업을 중단시키고, 2차 사고 방지에 나서야 한다. 또한 빠른 처치와 이송을 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공장에서, 가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 뭇매를 맞았던 사례가 있다. 안전사고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다.
나 역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발가락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더 조심, 또 조심이다. (독백이지만... 없다가 생긴 짐수레를 탓하지 말자...)
'잠시 멈춤', 쉽지만 참 어려운 네 글자.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지만, 우린 모두 쉼표가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 같다.
빨간 불빛과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주변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꼭 이 단어를 떠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