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Feb 08. 2024

한 여름밤 비번날 마주한 교통사고 4

숨겨진 그 날의 이야기

https://brunch.co.kr/@kiii-reng-ee/187

https://brunch.co.kr/@kiii-reng-ee/189

https://brunch.co.kr/@kiii-reng-ee/190




그날의 비화(祕話)


한문철 TV까지 소개되었던 이번 사고는 단속을 피하려던 오토바이가 도주하던 중 승용차를 피하려다 일어난 것이었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인원 중 한 명은 보행자와 부딪힌 것으로 추정되고 보행자가 크게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경찰관 분들이 현장에 바로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그 현장을 볼 때마다 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말끔히 정리되었지만 간혹 그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나물을 판매하시는 할머님 세 분을 보면 위험하다고 이야기해드리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부상을 당한 아저씨는 동네 주민분께 근황을 여쭤보니 수술은 잘 끝났는데 여전히 몸이 불편하셔 고생하고 계신다고 한다.


(이 글을 보지 못하시겠지만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한 여름밤 비번날 교통사고를 경험하며 겪게 된 변화


1. 응급처치 가방을 구매했다.

하룻밤 사이에 두 건의 사고현장을 그것도 비번날 경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평생에 두 번 다시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날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응급처치 가방을 사는 것이었다. 사명감만 가지고는 현장에서 역할을 쉬이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실천한 것이 응급처치 가방을 구매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트렁크에 항상 넣어 다니고 있다.

내 가방도 빨간색...


요즘 하은이가 '응급처치 프린세스'라는 영상을 참 즐겨 본다. '로라'라는 여자아이가 각종 재난 및 응급상황에서 '응급처치 프린세스'로 변신 후 상황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응급처치 프린세스'가 메고 있는 가방을 보니 나도 가방을 바꾸고 싶어진...ㄷ...

2. 현장과 관련된 자격증 취득 목표가 생겼다.

내근직이라고 부르는 행정은 별개로 현장은 크게 화재, 구조, 구급으로 나뉜다. 일반공개채용으로 임용되면 필요와 경우에 따라 모든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전문성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요구되기도 한다.


나 역시 공개채용으로 임용되어 화재와 관련된 자격증만 소지하고 있다. 임용 초부터 지금까지 현장에 강한 소방관이 되기 위해 응급구조사 자격증 취득도 마음에 늘 두고 있었는데, 번번이 좌절되었다. 요즘 모두가 기피하는 내근직에 나를 집어가기 위해 윗선에서 교육을 두 차례나 뺀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문을 두드렸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다음주가 되면 드디어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으러 떠난다.(교육 전체 인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임용된 지 가장 오래되었다...)


3. 키랭이, 지역 방송국에 가다.

일전에,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손사래 치는 인터뷰를 보면 속으로 '에이~ 대단한 일 해놓고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하네'라며 '혹시 방송국에서 저런 멘트를 가르쳐주나?' 싶었다.


하지만 쭈뼛쭈뼛 통나무처럼 스튜디오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하던 나 역시도


'소방관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멘트가 돌진해 버렸다. 필터 따윈 없었다. 머리에서 출력되는 대로 날 것 그대로의 멘트였다.

이 멘트 하나로 향후 3개월간 놀림을 받게 된다.

사람을 살린 것도,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연에 응했고, 나름 귀한 경험이 되었다.


다만 내가 한 것에 비해 너무 크게 부풀려지지 않았나 싶어 한 동안 이불속에서 나오질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좌) 단독사고 (우)차대오토바이 및 보행자 사고

그리고 인터뷰 이후로 다이어트를 결심했으나 실패하고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 방송에 나와보겠나싶어 존경하는 아버지도 살짝 언급해보았다.


https://brunch.co.kr/@kiii-reng-ee/115




우연인지 뭔지 다음 해 관서를 옮기게 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그 구급대장 선배와 같은 사무실에서 1년간 근무했고, 작년부터는 사고가 났던 관할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지금도 고통 속에 있을 수 있는 부상자 분들의 마음이다. 혹여나, 정말 혹여나 이 글로 인해 다시 한번 그날의 기억이 상기되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을 한 내가 이 글을 혹시나 상황을 미화하고, 나를 영웅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걱정이다. 비번날 물속에 빠진 아이를 7명씩 구해내는 소방관이 있는가 하면, 소화기 한 대 딸랑 들고 가서 불을 끄고 나오는 시민도 있다. 출근길 터널에서 발생한 차량화재를 발견하고 옥내소화전을 이용해 불을 끄는 소방관이 있는가 하면 찜질방에 붙은 화재를 진압해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방지한 비번 소방관도 있다. 커피 한 잔 하다가 쓰러진 시민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경찰이 있는가 하면, 편의점에서 쓰러진 시민에게 밀도 잇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소생시킨 예비 간호사도 있다.


세상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멋진 일을 해내는 귀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미어캣 정도밖에 안 된다.(미어캣 죄송합니다)


해서 이 글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다. 위험한 사고나 재난을 발견하면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안전을 철저히 확보한 후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의 어둠이 빛이 될 때까지,
아마도 나는 글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여름밤 비번날 마주한 교통사고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