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힘껏 도망치고 싶었다. 도무지 마주할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장례 절차가 생경했다. 장례식은 지금껏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세계였다. 이제 그 문을 열었을 뿐인데 어떤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고 아빠의 장례식만 아니라면 평생 모르고 싶은 일이었다. 입관식을 하던 날, 나는 나를 벼랑 끝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말기 암이었다. 여명이 6개월 정도 라고 했지만 결국 5개월 만에 돌아가신 아빠. 나는 아빠의 마지막을 보러 이곳에 왔다. 슬픔 같은 건 없었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장례 절차와 조문객을 맞으면서도 나는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러보긴 했지만 내가 직접 조문객을 맞는 건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공포가 시시때때로 나를 흔들었다. 있는 힘껏 피하고 싶은데 물러설 곳이 없었다. 다만 이승에 남은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단정하게 묶어주고 싶었다. 영정사진 앞에서 아빠를 올려다본다. 아빠와 나는 가족의 연이 닿아 긴 시간을 함께 지냈겠지. 한순간에 이별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이 문신처럼 남아있었다. 조문객을 맞으면서 귀에 있는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시각적으로만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들. 늘어지는 테이프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영정사진을 보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입을 막고 있는 사람들,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아빠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는 사람들. 나는 어느샌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 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이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가만히 있고 나를 스쳐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실감 없는 모습들이 연달아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까만 상복을 입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내 시계는 아빠의 시계와 함께 멈춰버렸다.
입관식을 하던 날.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 순간이 두려웠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에도 몇 번 이고 도망치고 싶었다. 온기가 사라져 버린 아빠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빠를 다시 만나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아빠라서 괜찮을지 아니면 아빠라서 더 무서울지. 나는 수많은 생각들에 짓눌려 심장이 조여왔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죽었다면 나는 절대 입관식은 보지 않겠다고 뒤돌아서 나왔겠지만, 아빠라서 그럴 수조차 없었다. 내 두 눈으로 마지막을 봐야 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살아있는 아빠와 돌아가신 아빠는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까.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봐야 하는 딸과 보고 싶지 않은 내가 수없이 부딪히고 있었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을 마지막 순간조차 피하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었다. 장례지도사가 입관식을 알리러 왔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영정사진을 뒤로하고 나와 신발을 신었다. 가족들과 함께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저항이 느껴졌다. 인생에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시간을 멈춰주길 바랐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질질 끌려가며 복도 끝까지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눈앞에 아빠가 있었다.
딱딱한 나무 받침대 위에 아빠가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 직접 보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숨과 온기가 빠져나간 후에 사람은 이렇게 되는구나. 너무나도 작았다. 풍채가 좋았던 아빠는 암이 발견되고 10킬로 이상 빠지더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서서히 말라갔다. 내가 기억하던 예전의 아빠에 비해 겨우 3분의 1 정도 되었다. 거기다 아빠를 천으로 꽁꽁 묶어두었으니 더 왜소해 보였다. 아빠가 이렇게 작았었나? 항상 내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던 아빠는 어디로 간 걸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빠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차갑게 굳어버린 아빠의 몸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심장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솟아 나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잡았던 아빠의 손 근처에 내 손을 올렸다. 아빠의 온기는 이미 사라졌고 내가 알던 아빠도 그곳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잡을 수조차 없이 얼어버린 손 언저리를 어루만지며 나는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고 나는 여전히 그곳을 뛰쳐나오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 여전히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 끝났어, 자, 확인해 봐. 만져봐. 끝났지?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라고 누군가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을 계속 확인시켜 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입관식을 끝내고 내 안에 두려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저앉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장례 절차라는 건 나름대로 순서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빠른 속도로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는 허들의 연속이었다. 조금만 천천히 아빠를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충분히 아쉬워하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면 좋을 텐데. 대답 없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면 답답한 마음들이 내 안에서 켜켜이 쌓였다. 그 사이로 마음속에 굳게 닫혀있던 작은 상자 하나가 열렸다. 밤이 되면 상자 안에 있던 질문들이 두서없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사람의 마지막이 이럴 수 있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린다고? 이게 진짜 끝이라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아빠의 마지막 손에는 공기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지 못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선명했다. 이제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아빠가 사라졌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아직도 손끝을 만지작거리면 딱딱하고 차갑게 굳은 아빠가 남아있다.
그 감각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