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이 필요한 날이 있다.
결단이 필요한 날이 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오빠와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달리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면 어떡하지. 아빠가 정말 죽으면 어떡하지. 나는 어떤 얼굴로 아빠를 봐야 할까.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본가 근처의 병원으로 갔다. 내가 다시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빠는 이미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의 몸에는 온갖 기계가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맥박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잔인하게도 상주 보호자 이외에는 병실에 있을 수조차 없었다. 병원에서는 언제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라고 했다. 6개월 동안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끝이라니. 이렇게 갑자기 삶이 끝난다니. 몇십 년을 함께 살았던 아빠인데. 우리는 가족인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소화하기에 나는 너무 미숙했다. 병원에서 빠져나와 오빠 집으로 갔다. 우리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병원에서 오는 연락만 기다렸다. 오빠와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기다리는 건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밖이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너희를 찾아. 빨리 병원으로 와.”
숨이 차오르도록 달렸다. 오빠도 달리고 나도 달렸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막연하게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원 앞 편의점에 들러 콜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얼음컵도 함께. 이 콜라가 아빠의 마지막 음식이 될지도 모른다. 제발 한 모금이라도 드실 수 있기를. 아빠가 치료를 받고 입원했던 기간 동안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 매일 살이 빠지는 암 환자인데 검사 때문에 금식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검사를 해야 아빠의 상태를 알 수 있었고 그래야 아빠의 남은 시간도 가늠할 수 있었을 테니. 그렇게 굶고 또 굶다가 이제는 거즈로 입술을 적시는 정도만 허락되었다. 아빠는 극심한 암성 통증과 발열로 뜨거워진 몸을 견디고 있었다. 제발 물 좀 달라고 목이 너무 마른다고. 아무리 외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암 환자에게는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아빠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오늘이 이 세상에서 아빠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아빠에게 뭐든 주고 싶었다. 아니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나는 콜라를 들고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빠 우리 왔어요.”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오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셨다. 그때 갑자기 아빠가 입을 여셨다.
“임종 보러 왔나!”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오빠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말을 돌렸다. 그 뒤로도 알 수 없는 몇 마디 말을 더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임종이라는 두 글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빠 입으로 뱉은 임종이라는 말이 내 가슴에 낙인처럼 찍혔다. 과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오늘이 마지막일까. 아니면 내일일까. 하지만 슬픔과 충격에 빠져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나는 아빠에게 꼭 시원한 콜라를 드리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콜라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재빨리 얼음컵에 콜라를 따랐다. 빨대를 꽂아 누워계신 아빠의 입술 가까이에 가져다드렸다.
“아빠 콜라 드세요.”
아빠는 있는 힘껏 빨대로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빠는 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콜라가 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큰 얼음컵에 담겨있던 콜라 한 잔이 아빠의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병실에는 작은 기계음과 아빠가 빨대로 콜라를 마시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콜라 한잔을 다 마시고 아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맛있다!”
이 짧은 한마디가 아빠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섬망과 현실을 오가는 동안 우리는 자주 당황했고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정말 이대로 아빠와 헤어지겠구나. 나는 그날 아빠의 극심한 고통을 체감했다. 가족이기에 세포 하나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고통이 나의 눈을 통해 들어왔고 마음을 울렸고 피부로 느껴졌다. 홀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아빠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겪는 고통을 본 후에는 도저히 아빠를 이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고통 없는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아빠가 없어지겠지만 아빠는 아프지 않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족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형벌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아빠를 보내줄 때가 왔다고.
아빠는 콜라를 마시고 이틀 후 에 돌아가셨다. 그날 콜라가 목구멍을 넘어가던 소리. 아빠가 빨대를 물고 있던 입술. 그리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들의 시간. 병실과 침대. 엄마와 오빠의 표정. 나는 이제라도 작은 유리 조각처럼 흩어진 기억을 붙잡아본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자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병실에서 아빠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