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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붉은 눈 01화

1화.

by 여름의푸른색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작은 소리에도 눈길이 갔다. 1시간 만이라도 머릿속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쉬고 싶었다. 그러나 떨어지는 물소리는 담요 안으로도 거침없이 흘러 들었다. 아주 작고 천천히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그 소리가 나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귓가를 울리는 물소리에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담요를 두 발로 걷어차고 소파에 앉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몽롱한 상태로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흐릿하게 보이는 거실 책장과 달리 귓가에 울리는 물소리는 선명했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에 대충 발을 구겨넣고 일어섰다.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숨을 참기도 내쉬기도 하면서 최소한의 소리만 남긴 채 점점 또렷해지는 소리를 따라갔다. 물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욕실이었다. 집안에서 물을 쓰는 곳은 주방과 욕실 둘뿐이었다.


욕실 앞으로 다가가 욕실 문에 뺨을 대고 귀로 소리를 모았다. 숨죽이며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욕실 안의 소리를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들리던 규칙적인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욕실이 아닌가?’ 나는 욕실 불을 켜고 가로로 길게 생긴 욕실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힘을 주어 밀어냈다.



끼이익-



잡음을 내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 세면대 수전 가까이 얼굴을 대고 수전을 살폈다. 두 번째 손가락으로 수전을 두어번 톡톡 두드려서 물기가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수전도 세면대도 물이 바싹 말라 있었다. ‘수전이 아니네. 그럼..’ 욕실 안에 다른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욕실에서 나와 욕실 문을 닫으려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뒤돌아서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똑-하며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물소리야, 분명해. 혹시.. 샤워부스?’ 나는 욕실 문을 열어젖히고 샤워부스가 있는 곳까지 뛰어 들어갔다. 샤워부스 아래 약간의 물기가 퍼져있었다. 나는 샤워기를 들고 물을 틀었다가 다시 잠갔다. 샤워기가 고장난 줄 알았지만 마지막 한 방울을 톡 떨어뜨리고는 깔끔하게 멈췄다. 손으로 샤워기 헤드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그러나 물이 새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거치대에 다시 샤워기를 올려두니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다시 잠갔으니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 욕실에는 나 혼자다. 어떤 소리도 끼어들지 못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 공간에는 어떤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결론에 이르자 온몸에 털이 조금씩 서기 시작했다. 샤워기가 아니라면...


나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 붉은 눈이 여러 개 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고개는 계속 천장을 보고 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 개의 눈 중에 하나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붉은 눈물 한 방울이 내 오른쪽 안구에 정확히 떨어졌다.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