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잠들지 못하는 날에는 종종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었다. 주로 소리가 검은 배경에 바이올린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꿈이었다. 어긋난 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면 나는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일상의 평화를 깨곤 했다.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날들. 매일 달라지는 몸 상태와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이 외롭게 느껴졌다. 나는 매일 스스로 고립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마치 거울 속에 내 모습처럼.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걸어갔다. 원두가 들어있는 작은 통을 열었다. 거실까지 커피 향이 퍼진다. 공기를 타고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향들이 숨 쉴 때마다 코로 들어왔다. 원두를 갈아서 툭툭 털어 드립 머신에 쏟아부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또로록- 빗소리를 내는 머신 앞에서 잠시 쉬었다. 정신도 마음도 커피향으로 가득찼다.
수면시간이 줄어든 이후로 눈을 뜨면 커피를 마셔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커피를 반잔 정도 마시고 욕실로 갔다.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은 푸석해지고 얼굴은 수척한 여자가 서 있었다. 잠옷 사이로 앙상해진 팔목이 보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욕실을 등지고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무언가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들이 처음 나를 찾아왔던 건 햇살이 따스하게 거실 창을 통과하던 봄날이었다. 그때 나는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있었다. 오일장에서 사 온 모종을 나란히 세워두고 어떤 모종부터 심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토마토, 상추, 고추, 그리고 작은 화분들을 차례로 보살피며 한가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삭막하던 베란다에 흙을 쌓고 모종 몇 가지를 심었다. 식물이 가진 특유의 생기가 유리창을 통과해 거실까지 흘러 들어왔다.
평온하던 일상은 의외의 소리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짧게 반복되는 소리의 진동이 집안의 소음보다 크게 들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한 번 시작 된 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른 새벽에도 낮에도 난데없이 들리는 소리는 마치 환청 같았다. 계속 듣고 있으면 진짜 소리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깨져버린 일상의 고요는 다시 붙일 수 없는 유리 조각 같았다. 깊이 잠들 수 없었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나는 자주 아이들에게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내 모든 것을 어지럽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