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눈속으로 빛이 쏟아졌다. 눈 앞에 모든 것이 흐려졌다. 동공이 제 역할을 잊어버렸다.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눈알과 내눈이 마주친 상태로 정지. 숨도 쉴 수 없는 무거운 공포가 위에서 나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눈알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와글와글 거리는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점점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아래로 아래로 먼지처럼 천천히.
‘똑똑똑’ 욕실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여보 괜찮아? 남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흘러들었다. 남편의 인기척이 들리자, 눈알들은 다시 와글와글 거리더니 화장실 창밖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움직였다. 얼굴 근육에 모든 신경을 모아 눈에 힘을 주었다. 속눈썹 끝이 파르르 떨리다가 조금씩 위로 아래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본 걸까. 마음속으로 되뇌어보았지만,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몇 번의 노크에도 대답이 없자 남편은 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왔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응 잠시 어지러워서.”
“침대에 가서 좀 누워. 내가 부축해 줄게”
남편이 내 어깨를 꽉 쥐었다. 남편의 손가락이 닫자 온몸의 근육이 딱따하게 굳어갔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양쪽 발가락에 힘을 주어 걸었다. 욕실에서 침실까지 이어진 긴 복도를 걸으며 나는 연신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입술이 떨렸고 심장은 폭죽처럼 터져버릴 것 같았다. 겨우 침대에 누웠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이불을 덮고 양손을 이불 안에 넣어 주먹을 꽉 쥐었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남편은 내가 병원에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갈 수 없었다. 그곳에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피를 타고 전신을 휘젓고 다녔다.
남편이 가져다 준 알약 몇 개를 삼키고 다시 몸을 뉘었다. 뒤척일때마다 사각거리는 이불 소리가 거슬렸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약기운 때문인지 눈이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실에서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별일 없으시죠. 저희도요. 식사 잘 챙겨 드시고요. 네네. 들어가세요, 어머님.”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탁자에 있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잠든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복도를 따라 남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침실 밖에서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침실 문이 열렸고 남편은 침대 가까이에 와서 잠시 서 있었다. 남편은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올라오더니 이불을 구겨 잡은 곳이 이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는 침실 문이 딸깍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결혼생활이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