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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붉은 눈 08화

8화.

by 여름의푸른색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재빨리 창을 닫았다. 그리고 노트북도 덮어버렸다. 진공상태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거실 전체에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상비약 케이스를 찾아서 알약 몇 개를 털어 넣었다. 물을 마시려는데 물병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니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소매로 입을 스윽 닦았다. 그리고 거실 소파로 가서 누웠다. 약을 먹었으니 괜찮을 거야. 마음속으로 제발 이 떨림이 멈추기를 바라며 담요를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꽉 깨물고 있어도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몰아쉬며 호흡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담요를 쥐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으니 조금 전에 봤던 영상이 다시 영화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까만 눈꺼풀 안에서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는 영상들. 노인, 총, 붉은 눈동자, 검은 물체까지. 뒤죽박죽 엉켜서 정확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영상을 보며 나는 희미한 소리를 따라갔다. 그러다 소파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잠이 들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똑. 똑. 똑.'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간을 찌푸리며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나는 소리에 예민해지고 있었다. 1시간 만이라도 머릿속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쉬고 싶었다. 그러나 물소리는 담요 안으로도 흘러 들어왔다. 아주 작고 천천히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그 소리가 나를 미치게 했다. 귓가를 울리는 물소리에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담요를 두 발로 걷어차고 소파에 앉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몽롱한 상태로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흐릿하게 보이는 거실 풍경과 진동과 함께 느껴지는 물소리의 진동. 나는 나를 자극하는 소리를 찾아야 했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한발씩 천천히 걸어갔다. 숨을 참기도 내쉬기도 하면서 최소한의 소리만 남긴 채 움직였다. 발가락 끝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욕실이었다.


집안에서 물을 쓰는 곳은 주방과 욕실 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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