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기

마음, 세상과 나를 잇다

by 하우주

지금을 일깨운 순간들

삶은 언제나 ‘지금’이다. 당신 삶의 모든 것이 이 끝없는 ‘지금’에서 펼쳐지고 있다. 과거나 미래의 순간들도 당신이 기억하거나 기대할 때만 존재하며, 그것도 유일하게 존재하는 순간인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가능하다.
–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中’


몇 해 전 이름 봄이었다, 아직 차갑게 스치는 공기에 코끝이 시렸지만, 주말 아침 아지와 함께 뒷산에 올랐다. 흙냄새, 새싹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아지는 연신 킁킁대며 정신없이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계절을 먼저 알리는 건 산이었다. 전 주에 꽃망울만 맺혔던 진달래가 일주일 만에 활짝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이 폈네’라고 생각하며 한 송이를 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코끝이 찡해지더니 갑자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좀 우습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진달래가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 어떤 생각도 끼어들지 못한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고 풍경은 마음속에 사진처럼 선명히 새겨졌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지금’을 온전히 살아본 게 아닐까.


그 뒤로 나는 뒷산을 오르며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을 비워내고, 그저 눈앞의 자연을 바라보았다. 봄이면 조금씩 올라오는 연초록의 새잎과 꽃봉오리들이 피어나는 것을,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잎이 만들어주는 그늘을, 가을이며 새벽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겨울이면 겨울이면 소복하게 쌓인 눈을.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한 숲이 내게 ‘지금 이 순간’을 가르쳐 주었다.



이후 일상에서도 작은 순간들이 선물이 되었다.

5월의 퇴근길,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자 바람이 바닷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흐르던 감각.

달마다 찾아오는 탐스러운 보름달의 환한 빛을 멈춰 서서 바라보던 밤.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그루밍을 하다가 어느새 식빵을 굽는 냥이.

풍성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아지의 뒷모습.

좋아하는 카페에서 마시는 라떼의 적당히 단단하고 부드러운 거품.

그리고 부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나눈 담소.

그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머물러 보니, 역설적이게도 나는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뿌리내릴 때, 삶이 더 깊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만든 불안

산에서 ‘지금’에 잠시 닿았던 마음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세 과거와 미래 사이로 흔들린다. 그 사이 갈라진 틈에서 불안과 초조가 자라난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한다.

스트레스는 ‘여기’에 있으면서도 ‘저기’에 있고 싶어 할 때,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면서도 미래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지금의 현실이 아닌 다른 상황을 원하는 내면의 갈등이 커질 때 그 분열된 상태를 스트레스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스트레스는 ‘지금’으로부터 멀어진 마음이 만들어낸 내적 분열의 결과입니다.
과거는 그저 기억 회로 속에서 떠오른 장면일 뿐입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도 결국은 그때의 ‘지금’ 안에서 펼쳐집니다.
- 『붙잡지 않는 삶』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많은 불안과 스트레스는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원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과거의 후회,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미래의 두려움이 오늘의 숨을 짧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과거도, 미래도 실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기억 속의 편집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자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면 과거는 자연스럽게 놓이고, 미래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신뢰로 다가온다. 진달래를 바라보다 눈물이 났던 그날처럼, 아주 단순한 순간이 내 삶의 깊이를 바꾼다. 할 일 사이에 10초라도 숨을 길게 들이켜고 내쉬기, 창밖의 빛과 그림자를 한 번 따라가 보기, 손에 쥔 머그컵의 온기를 느껴 보기.. 이 작은 머묾들이 마음을 ‘지금’으로 귀환시킨다. 그 안에서 삶은 생각보다 충분하다.




지금, 나에게 머물기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고,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 박노해


박노해 시인의 『경계』라는 시의 일부이다. 네 줄짜리 이 시를 수첩이나 일기에 자주 적는다.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만 있다. 내가 딛는 발걸음, 내가 마시는 한 호흡, 내 앞에 서 있는 사람과 풍경. 그것이 곧 삶이고, 곧 나다.


그러니 오늘을 허비하지 말자. 지금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자.

그렇게 정성스레 디딘 발걸음이 내일의 나를 만들고, 그 발걸음들이 모여 결국 내 삶 전체를 빛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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