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괜찮은 어른일 순 없었나요?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회사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일들은 가까이서 겪는 사람들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그저 우습고 황당하고, 때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기도 하고, 재미있다가도 또 문득 이곳에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일어나는 일들을 피식 웃어넘기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마음은 먹었어도, 막상 본인에게 닥쳤거나 누군가에게 생긴 일들을 들었을 때는 '대응이 아닌 반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S사장의 괴롭힘은 참으로 쪼잔스럽기도 했다.


영업 매출이 시원찮다고 생각한 회장이 전체 영업 워크숍을 하자고 하여 하루 종일 붙들려 있다가 저녁 회식을 하던 날, 본인이 소개한 에이전트와의 계약에 대해 회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S사장은 혼날 것이 예상되었었나 보다. 지혜에게 보고를 하라는 눈치를 주었으나, 지혜는 S사장이 직접 보고하겠다고 하여 이미 2주 전에 보고 자료까지 만들어 주었고 본인이 보고할 내용도 아니었다.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저녁 식사 자리까지 끝나자 술을 한 잔 한 S사장은 지혜를 한쪽 구석으로 불렀다.


“내가 아까 열받았는게, 김차장이 적극적으로 이게 필요하다고, 에이전트 얘기를 해야 하는데, 왜 자신감있게 말을 안 해?”


본인이 수정해서 보고하겠다더니?!

“사장님, 그건 이미 2주 전에 보고하신다고 하셔서 협업 모델 제안할 거 만들어 드렸고, 이미 경영팀 상무한테 자료도 다 보낸 건데, 다시 제가 얘기하면 2주 전에 보고하신 거랑 중복이 될텐데요”

“어쨌든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하는데, 안 해서 많이 실망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반말은 물론이고 '야', '너'가 기본이 된다.

"회의 전에 사장님께서 이야기하신다고 하셔서 아무 말씀 안 드렸습니다."

"야, 그래도 내가 아무 말 안 하면 니가 얘기해야지"


비겁하다. 지혜가 보고를 했다면, 왜 너가 보고를 하냐고 화를 내지 않았을까? 본인이 할 이야기와 말단 직원이 할 이야기 구분도 못하고, 혼나기 싫으니 중요한 문제에 대한 보고도 지혜에게 하라고 하는 것인지, 술 한 잔 먹은 김에 없는 구실이라도 만들어 괴롭히고 싶은 심산인지 알 수가 없어 지혜는 그저

"예"

하고 대답했다. 딱히 더 다른 할 말도 없었다.



부서장 회의에 더 이상 지혜가 들어가지 않자 S사장은 영업 전체 회의에 들어와 그야말로 갈구기도 했다. J이사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상의해서 일을 하라고 했다가, 시킨 업무에 대해 J이사가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고 지혜가 대답하자 S사장은 눈을 치켜뜨고 지혜에게 쏘아붙였다.

"김차장, J이사랑 나 이렇게 둘 중에 누가 더 윗사람입니까?"


영업 회의가 있는 날, 아빠 생신이라 연차를 미리 올리고 결재를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최종 승인을 S사장 본인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S사장은 영업 회의에 들어와서 지혜가 없다며 노발대발했다고 했다. 회의 있는 날 연차 쓰지 말라고. 아마도, 갈굴 상대가 없어서 퍽이나 심심했었나 보다며 지혜는 다음 날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넘겼다.


이 회사 상사들의 기본 태도의 베이스는 늘 짜증이었다. 언제나 기분이 태도가 되었고 그건 회장과 하는 회의를 제외하곤 모든 자리에서 동일했다(회장과 하는 회의에서는 회장의 기분이 태도가 되고 그 기분을 맞추기 위해 모두가 눈치 게임만 하느라 피곤하다고 했다).


J이사의 출장으로 지혜가 부서장 회의에 대신 들어가자 S사장은 왜 원가절감 방안을 안 내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J이사에게 이번 회의에서는 원가절감 방안을 안 내기로 했다고, S사장에게도 미리 말해두었다고 전달받은 지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들은 대로 이야기를 해도

“그래도 대신 회의에 들어오면 다 파악해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차장은 왜 책임감이 없습니까?”

며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했고, 사장이 다른 부서에 가 지혜가 일을 못한다는 소문을 내고, 밑도 끝도 없는 조사를 시키기도 했다가, 내일까지 보고를 하라고 했다가, 오늘까지 보고를 하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서가 바뀌기 전 매출 계획을 이야기하며 지혜가

"A고객사 매출과 B고객사 매출을 합하면 100억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고 하자, S사장은

"김차장은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나는 김차장이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듭니다. '이렇게 됩니다' 하지 말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하여 지혜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적도 있었다.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데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어느 날 또 지혜에게 다가와

"김차장 스트레스 많이 받지?"

이렇게 말하는 S사장을 보며, 지혜는 진지하게

'저 정도면 정신병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S사장은 지혜에게 대하는 것을 제외하곤 공적인 자리에선 꽤나 괜찮은 대기업 출신 임원임을 자처하였지만, 사악한 행동도 몰래 많이 했다. 회사가 어려울 땐, 크게 문제 삼지 못할 형편에 있는 직원들 - 외국 출신 현지 채용자 - 을 최우선으로, 아무 조건도 없이 권고사직을 시키기도 했고, J이사의 행태를 더 이상 못 참고 퇴사하려는 직원을 불러다가

“넌 큰 회사 물어온 것도 없으면서 퇴사를 하려고 하냐”

며 비난하기도 했다. 본인에게 있는 권력을 이용해 직원들을 가스라이팅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J이사는 S사장과 또 다른 양상으로 직원들을 괴롭혔다. 언제나 그랬듯 별 계획도 없이 갔다가 별 성과 없이 돌아와야 하는 해외 출장길에 코로나에 걸리자 그렇게 본인이 영어를 잘한다고 할 땐 언제고, 갑자기 코로나가 입으로 걸렸는지 영어를 못하겠다면서 데리고 갔던 직원 하나를 본인과 함께 미국에서 자가 격리를 하게 했다. 설마 했으나 역시나 S사장은 J이사에게 아무 말도 못 했고, J이사와 함께 뜻하지 않은 체류를 하게 된 직원은 약과 먹을 것을 사다주며 몸종 노릇을 하며 어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크게 증상도 없었던 J이사의 수발을 들며 일주일을 해외에서 더 머물러야 했다.


J이사는 모든 기회를 독점했다. 밑에 직원들을 키울 생각도 가르칠 생각도 없었고(물론, 가르치는 것도 본인이 무언가를 더 낫게 해야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전시회나 고객사 연락의 모든 기회를 본인 혼자서만 가지려고 했고, 그 모든 정보들을 보안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다.

기회가 없는 부하 직원들을 시키는 허드렛 일만 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J이사는 타 부서에는 부하직원들이 일을 못한다고 소문을 냈다. 그걸 다 믿는 사람들도 찾기 힘들긴 했지만, J이사가 맡고 있는 부서는 끊임없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여 프로젝트 이력조차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많았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여도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 했던가, 출퇴근이 가장 자유롭고 업무 시간에도, 고객과의 회의 시간에도 게임을 틀어놓고 하다가 고객사에게 담당자를 바꿔 달라는 요청도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J이사는 다른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규정을 어기는 건 못 넘겼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몇 번 양치를 하러 가는 지혜를 유심히 지켜보던 J이사는 S사장에게 고자질을 하고, S사장은 경영지원팀에 점심 식사 시간 후 양치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실명을 공지하겠다 엄포를 놓았다. 또 6시 정각에 가방을 메고 퇴근하는 직원들을 본 J이사가 또 S사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을 한 이후로 출퇴근 시간을 관리하겠다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필요할 때만 S사장에게 달려가 친한 척을 하곤 했지만, J이사는 돌아서서는 능력 없는 S사장은 더 받았는데 본인은 성과급을 천만 원밖에 못 받았다며 투덜거렸고, 출근 후 S사장의 방에 가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와서는 개념이 없다며 흉을 보기도 하고, 모든 직원들이 보는 자리에서 J이사가 S사장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거나 짜증을 내다가 벽을 치기도 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는 직원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둘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직원들에게는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하는 대환장 파트너였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특히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너무 많은 인상 깊은 장면들 속에서도 드라마가 나온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지혜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장면이었다. 은탁의 졸업식 날, 홀로 있는 은탁에게 빨간색 수트를 입고 온 이엘 삼신할매가 은탁에게 꽃다발을 주고 나서 은탁의 담임에게 가 이렇게 말한다.


"아가, 더 나은 선생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수는 없었어?"


그 말을 들은 은탁의 담임은, 가정 형편에 따라 자기 반 학생들을 차별하며 공평하게 대하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은 울음을 터뜨린다. 곧 담임선생은 왜 울음이 터지는지조차 모르고 당황하여 황급히 눈물을 닦아 낸다.



지혜는 S사장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그 드라마의 장면이 떠올랐다.


"좀, 더, 괜찮은 어른일 수는 없으셨나요?"


드라마에서 삼신할매는 은탁을 점지할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까? 지혜는 분명 모든 아이들을 점지할 때 삼신할매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신할매는 못돼 처먹은 은탁의 담임에게도 분명 '아가'라고 불렀다. '너'도 아닌 '아가'라고..


지혜는 삼신 할매가 이야기한 귀함과 소중함은, 우리 모두가 그 부모에겐 귀한 자식인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