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_다자이 오사무
너무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려니 어색하다.
최근 두 세달 간 글태기가 왔다. 글을 읽고 싶지도, 글을 쓰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 놓였다.
'일하고 밥먹고 자고'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다시 색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책과 영화가 답이었다.
돌고돌아 다시 책의 세계로 넘어오니 읽고 싶은 책 목록 자체를 잊어버렸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추천을 받았다.
인간 실격이다.
이 짤은 유명하다.
더불어 이 책 또한 유명하다.
그럼에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많이 들었다.
그 이야기도 천천히 써보겠다.
그 유명한 첫 구절을 드디어 처음 읽었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다자이 오사무 본인의 이야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스스로 저 폐인의 문장을 내뱉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더 커졌다.
"양자택일의 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후년에 이르러, 마침내 소위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의 중대한 원인이 되는 버릇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돈은 고향에서 보내주기로 했다고, 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은 것일까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자신 없는 말투로 화가라는 길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 자신이 없었기에 넙치의 말과 행동이 어둡게 보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상 요조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양자택일의 힘조차 없었다고 하지만, 언제나 요조는 선택을 해왔다. 결국 자신의 삶을 끝낸 것도 본인의 선택에 의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결여된 부분이 있는 모양입니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그저 끊임없이 인간 생활에서 달아나고만 있는 바보 같은 저 혼자만 완전히 남겨져."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상태는 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에게도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게 힘든 일이다.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은 본인은 인간 생활에서 달아나는 상황을 어떻게든 만든다. 도망다닌다. 언젠가는 완전히 혼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당시에는 충격이었지만, 나의 선택에 맞는 결과다. 글 속에서 '세상이란 개인이 아닌가'하는 문장이 나온다. 요조는 이 생각을 품고 다소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 비참하게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라는 걸까.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어 실격된 상태를 모두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격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일 수 있구나.
그렇다면 삶은 과연 비극(트레)일까 희극(코미)일까.
요조는 자신의 글 마지막 부분에 "저의 불행은 거부의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라고 말을 내뱉는다.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충분히 요조는 거부의 능력을 행했던 자라고 생각한다.
집도 나와서 생활헀었고, 그림도 그려봤고, 결혼 비슷한 생활도 해봤고, 자살 시도도 했던 화려한 전적들을 보고 우리는 거부의 능력이 없는 자의 삶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세상은 개인이기에 남의 생애를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권리도 없지만 내 삶이었다면, 나는 충분히 거부와 선택의 능력을 가진 삶을 살았다는 평을 스스로 내릴 것 같다.
전부 다 읽고 나서는 짜증이 났다.
오바 요조를 너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바 요조가 나구나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답답하지만 결국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그래왔고, 앞으로 그랬던 것처럼.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앞으로 캐나다 기준으로 토요일마다 올릴 예정이라, 한국 시간으로는 일요일에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한국어로 읽는 책들은 전부 e-book으로 읽어서 당분간 인용된 문구가 나온 페이지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긴 비어있는 시간동안 잘 쉬었으니 쉬지 않고 2편도 가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