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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02. 2024

없어지기 전까지 다 할 거야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콧노래가 절로 나오면 좋았을 텐데 1월 1일을 빡빡하게 게 보냈다. 미루고 미루었던 새해맞이 대청소는 깜냥이 되지 않는다. 집에 4 식구 말고 괴생명체가 살고 있어 그것들을 소탕했다. 거실 걸레받이에 구멍이 생겼고 대수롭지 않은 구멍은 걸레받이를 모조리 갉아먹고 비닐만 남아 있었다. 이 교묘한 놈들을 모조리 박멸할 테다. 다행스럽게 먼지다듬이는 아니고 흰개미가 어디서 출몰해서 걸레받이를 뜯어내고 살충제를 도포했다. 남편의 기갈난 솜씨로 새것으로 깜쪽같이 붙이고 그동안 먼지가 쌓였던 창틀과 책장을 겸사겸사 닦아 주었다. 



흰개미를 제거하고 반들반들한 거실을 보며 뿌듯함이 밀려왔다. 가만 보자 인증숏 좀 올려볼까 찰칵찰칵 사진을 연신 찍어 올리러 들어간 인스타에 난리가 났다. 새해라고 너도 나도 계획과 독서 필사 맛집들이 올라와 있다. 첫날인데 난 겨우 청소만 한 거야 맘이 조급하다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밥을 먹고 씻어라 치우자 각자 놀아라 꽥꽥 오리 엄마가 되었다. 




베케트가 왜 바게트로 보일까.... 



자자 새해니까 고전 한번 읽자. 요즘 신구 할아버지가 연극으로 나오고 친구도 추천해 줬으니 읽기 시작했다. 어머머 연극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도 신박한데 고고와 디디 할아버지 만담은 시작과 끝이 초등학생처럼 만담을 나누고 있다. 읽는 내내 마지막은 어떻게 끝나려고 이렇게 돌림 노래일까 내 스타일이 아닌 건지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역시 고전은 어렵다며 끙끙 거리며 으흠 고전이여라 끝까지 읽었다. 찰칵찰칵 이것을 올려야겠어 가슴속 뿌듯함을 느끼며 인증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뿔싸 안 읽히는 책을 읽느라 연신 홀짝 거렸던 커피와 새해의 두려움이 겹쳐지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던 몸은 새벽 2시에 억지로 눈을 감았다. 



방학중인 아이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어렸던 그 시절은 여유라는 걸 왜 몰랐을까 격하게 더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방학때 하고 싶었던 다이소 쇼핑을 시켜주고 아이들은 2층으로 맡겨졌다. 분명히 다시 기운 내는 마음을 담아서 카페에 나왔는데 불을 켜고 들어오면 가슴이 쪼그라드는지 오늘은 얼마나 벌까 마음이 시리다. 



둘째는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첫째와 달리 많다. 그중 희망사항은 미술학원을 원 없이 다니고 싶다고 했다. 사교육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림 그리기는 꼭 실현해주고 싶다. 별거 아닌 그 학원에 마음까지 먹어야 하나 싶지만 내 상황이 그렇다. 어제의 충만한 마음을 흔드는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다독다독 거린다. 



yes24 들락 거리며 매번 도서관에 빌려 읽던 책이 없어서 부리나케 장바구니에 담고 아이책도 담아본다. 47,000원 5만 원이 조금 안된다. 에이 조금 더 채워지지 한 권 욕심부려본다. 어머 조금더는 앞자리가 많이 바뀌는구나 그냥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가님이 책을 냈다고 알려온다. 데스티니 이건 운명이다. 신께서 장바구니를 이렇게 채워주는구나 1석2조 기쁨을 주셨다. 작가님 책은 꾹꾹 눌러쓴 것처럼 좋았다. 곁에 있을 때 투닥거리면 말장난하는 소녀였는데 읽어보는 책 속에 작가님은 님은 먼 곳처럼 멀고 대단한 고전을 닮았구나 싶다. 무한함 축하를 보내고 마저 책을 읽고 있었다. 



찡찡--- 찡 --- 핸드폰에 ㅇㅇ도서관이 깜박 거린다. 내일 책 반납일인데 왜 전화가 왔지 의아했다. 안녕하세요 이민준사서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전에 말씀드린 것 부탁드린다고 말씀하셨다. 작년 다짐 중에 하나 나에게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도전하자 마음먹었다. 기회는 내가 준비될 때 찾아오지 않는다. 사서님의 말씀처럼 남보다 반발자국 더 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덥석 잡았던 기회는 두 번의 거절 없이 오케이 큐 사인이 떨어지고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갑자기 볼이 발그레 홍조가 띠며 숨이 가쁘다. 이민준사서님 추진력과 소로소로가 날린 댓츠 오케이가 만나자 시너지가 났다. 어쩌면 나보다 사서님이 더 들떠 보이기도 하고 처음 받는 제안에 어리둥절 하지만 진심으로 잘하고 싶었다. 이미 틀을 잡고 계신 사서님의 의도를 듣고 2 챕터로 1시간 30분의 강의를 하기로 했다. 날짜는 사서님이 하고 싶다는 1월에 어느 날에 시간까지 정해주셨다. 글 중에 듣고 싶은 이야는 이미 정해졌다고 했다. 구체적인 시안은 다음에 넘겨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뻘 속에 가라앉아 있던 조개가 발끝에 닿는다. 두려워 말고 조금만 손을 넣고 잡아 올리면 된다. 처음 잡는 조개는 어떤 모양일까 궁금하다면 발가락만 움직이지 말고 용기를 내 손을 넣어보자. 그토록 원했던 확언은 이제 시작이다. 


 



여러 번 잡다 보면 그 속에 반짝이는 무언가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모래알 일지 진주일지는 그때 찾아보자. 작은 시작에 주저 말고 꺾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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